착한 사람이 되려다 보니 말을 삼키게 되었습니다.
"그런 말 하는 거 아니야 듣는 사람이 얼마나 기분 나쁘겠어.
때로는 해야 할 말도 삼킬 수 있어야 한단다."
어린 시절 마음에 들지 않는 친구나 어른에게 한마디 하려 했을 때였다. 엄마와 아빠는 때로는 말을 하지 않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는 가르침을 주고 싶었을까. 싫은 소리를 하려 하면 자애롭게 넘기라고 하던 그 생각을 뜻하지 않게 오랜 세월 간직하고 살아가고 있다.
한 문장, 한 마디의 말을 상대에게 건네는 행위는 굉장히 위험하고도 어려운 일이다. 관계에 있어 사이가 멀어질 수도 혹은 가까워질 수 있는 끈과 같은 역할을 해주는 것이 바로 말이다. 이 말이란 건 상당히 예민해서 전한 말의 의도에 대한 오해가 생기는 날도 있고 상대의 생각이나 가치관이 바뀌는 결과까지 일어날 수 있으니. 우리가 흔히 하는 말로 개복치와 같은 예민함을 가졌다. 말의 중요성을 아는 사람이라면 엄마와 아빠가 이야기했듯이 해야 할 말 하지 말아야 할 말을 잘 가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쯤엔 공감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다만, 그 경계가 너무 어려워 때로는 해야 할 말을 하지 못하고 삼키는 순간이 찾아오기도 한다. 그 순간이 찾아오는 순간 우리는 모두 경계하여야 한다. 자칫 그 순간이 습관이 되어 자기를 옭아매는 자승자박의 끈이 되어버릴지도 모르니까.
'착한 사람'
최근 들었을 때 가장 기쁨과 자괴감의 갭이 크게 공존하는 단어다. 착한 사람의 본질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말을 잘 듣는 사람? 거슬리지 않는 사람? 아니면 모든 것을 다 해 줄 것 같은 사람? '솔직한 사람'과 '착한 사람' 은 분명히 다르다. 연애를 해오면서, 혹은 누군가들과의 관계 속에서 '착한 사람'이라는 수식어가 여행가방에 붙은 네임택 마냥 나를 따라다녔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나는 그들에게 거슬릴 것 없는 사람이라 그런 수식어가 붙지 않았나 싶었다. 하지 말아야 할 말은 안 하는 것과 동시에 해야 할 말 조차 하지 않아 자신의 의견이라는 것을 능동이 아닌 수동으로 비난받지 않을 환경이 주어졌을 때에만 피력해 보는 사람이었다.
사람은 홀로 살아가는 생명이 아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주변에 영향을 주고받고 하는 생명들이다. 제 아무리 홀로 늙어 죽어간다고 할 지라도 우리는 알게 모르게 일방적 소통이 아닌 쌍방적 소통을 하게 되는 것이다. 물건을 살 때에도, 대중교통으로 이동할 때에도 하물며 길을 걷는 그 순간 까지도. 괜히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타인의 눈길에 영향을 받고 눈치를 보게 되며 타인의 시선에서 당당하고 싶은 사람이 되고 싶어 할 수밖에 없다. 이는 어쩌면 자행해왔던 나의 '착한 사람'인 척에 대한 합리화 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나는 그러고 싶었다. 나에게 네임택처럼 붙어 버린 '착한 사람'이라는 타이틀을 버릴 수 없었고 유지하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말을 삼키는 것이 습관이 되어버렸고. 그 습관에 묶였다.
"네가 착하네. 대단하다"
착한 척하느라 뒤통수를 맞는 일도, 정작 내 실속 하나 챙기지 못하는 일도 허다했다. 거기서 오는 회환과 실망감들은 타인의 한마디에 녹아내렸었다. 잘못된 칭찬들이었다. 비판을 해주었어야 했다. 하긴, 그러니 그런 칭찬을 해준 이들 역시 가까운 관계에 머물지 못하고 떠나갔겠지. 잘못된 칭찬에 한번, 두 번, 세 번 그리고 여러 번 나는 마음에 위안을 삼아 넘겨 내었다. 넘겨 내기 힘들 일일 지라도 '그럴 수 있지'라는 책임감 하나 없는 말로 스스로를 다독이고 버텨내게 도왔다.
'착한 사람보단 솔직한 사람이 되고 싶다.'
화를 참으면 화병이 난다고들 한다. 말을 할 줄 아는데 말을 하지 않으면 꼭 벙어리가 되어 버릴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어쩌면 '솔직'이 우선시되었어야 했고 '착함'은 부수적이었어야 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정 반대로 살아왔다. 반대로 살아왔다며 스스로를 멍청하다고 책망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과정을 겪었으니 솔직함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되었다고 스스로를 위안해 본다.
삶에서 어느 것 하나를 깨닫는 데 있어 한 순간이라는 것은 없다. 쌓이고 쌓여 터져 나오는 계기만 있을 뿐. 사랑을 표현하지 않으면 상대는 사랑을 받고 있는 줄 모른다. 반대로 힘듦을 표현하지 않으면 상대는 내가 힘들어하고 있는지 모른다. 때문에 힘듦을 표현하지 않은 나는 무심코 상대가 뱉은 말에 상처 받고는 괜히 혼자 위축되고 왜 상대가 나에게 왜 이럴까 하는 물음표를 띄우기도 한다. 신을 싣는 것을 잊어버리고 맨발로 길을 걷다 혼자 돌부리에 걸려놓고 돌부리가 왜 여기 있을까 하는 것과 같다.
솔직함이 최고의 무기라고들 한다. 30이 넘은 지금 에서야 나는 그 말을 실감한다. 솔직함은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최선의 그리고 최후의 수단이라는 것을. 온갖 미사여구와 감언이설로 착한 사람이고 싶었던 나는 미련하게도 이제야 깨달았다. 착한 사람이기 전에 솔직한 사람이었어야 한다는 것을. 그랬다면 나도, 너도 모두 다치지 않았을 수 있는 기회들이 있었다는 것을.
입버릇처럼 뱉는 말이 있다. 자주 뱉다 보면 나도 그럴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리고 그렇게 되고 싶어서.
"솔직하고 단단한 사람이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