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태리우스 Sep 20. 2024

인생의 불꽃

FORM FOLLOW FUNCTION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라는 말이 있다.


건축기능주의자 루이스 설리반이 1896년에 한말이다. 디자인과 형태의 구성요소는 구조적이고 기능적인 역할에서 기인한다는 의미이다. 인간의 신체를 보면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는 말을 이해할 수 있다. 신체요소가 각 기능을 하기 위해 얼마나 고도로 완벽한 형태로 만들어져 있는지 우린 알고 있다. 귀에 물이 들어가지 않기 위한 귓바퀴의 형태, 이물질로부터 눈을 보호하기 위해 머리, 눈썹, 속눈썹, 눈물의 구조, 팔과 다리의 각도, 뼈와 뼈의 연결, 신경, 혈관의 형태는 우주만큼 섬세하고 복잡하고 기능적으로 완벽하다.


인간이 만들어낸 제품디자인을 봐도 그 말의 뜻을 알 수 있다. 청소기는 청소기능을 위해 청소기 형태로 디자인되어 있다. 밥솥, 냉장고, 자동차, 이어폰, 주전자, 운동화 모든 제품의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 이러한 물리적 제품의 형태는 물리적 기능을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디자인된다.


물리적 기능뿐만 아니라 심리적, 정신적 기능을 위한 눈에 보이지 않는 형태들도 있다. 예를 들어, 온도계 같은 사람이 있고 온도조절계 같은 사람이 있다. 온도계는 진공의 유리관에 붉은 수은이 온도에 맞춰 높낮이를 알려주기만 하면 된다. 반면 온도조절계는 온도계와 차원이 다르다. 온도조절계는 공기를 흡수하는 실외기, 공기의 온도를 컨트롤하는 공조시스템, 온도를 측정하는 센서, 인버터 시스템, 전기 시스템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온도계처럼 화가 나면 곧바로 화를 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화가 났을 때도 심리적 공조시스템이 가동하여 평정심을 유지하는 사람이 있다. 회사, 집안 분위기가 안 좋으면 분위기에 휩쓸리거나 압도되는 사람이 있고, 누군가는 어떤 상황에도 자신의 온도를 유지하고 지키는 사람들이 있다. 동일한 상황과 환경에서 A는 단순한 과정을 거쳐 심플한 반응을 보이지만 B는 복잡한 과정을 거쳐 효율적인 반응을 만들어낸다. 어디서 차이가 있는 것일까?


사회적 기능에 따른 형태도 있다. 어떤 사람은 대통령의 기능을 하고, 누군가는 요리사의 기능을 한다. 변호사의 기능, 소방수의 기능, 디자이너의 기능, 교사의 기능 같은 직업적 기능부터, 엄마, 친구, 아들, 부부 같은 관계적 기능까지. 이처럼 여러 기능에 따라 물리적, 심리적, 관계적, 사회적 다양한 형태를 취한다. 각자 어떤 기능을 하는지를 보면 어떤 형태를 갖고 있는지 쉽게 파악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형태와 기능의 불일치에서 온다. 내 형태는 회사원인데 회사의 수익을 내는 기능을 수행하지 못할 때, 내 형태는 아빠인데 아빠의 기능을 잘 수행하지 못할 때, 나는 사람들과 함께 살아야 하는데 화를 참는 기능, 대화하는 기능, 배려하는 기능들이 잘 되지 않을 때, 모두가 힘들어진다. 나는 혼자 일하기가 편한 기능을 갖고 있는데 여럿이서 함께 일하는 형태의 회사의 구성원이라면 문제가 된다. 빠르게 형태를 바꾸거나 형태를 바꿀 수 없다면 혼자 일할 수 있는 기능을 살릴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


그래서 사람은 자신이 어떤 기능을 잘하는지 알아야 한다. 거기에 맞춰서 형태를 디자인해야 한다. 형태를 조절할 수 없다면 기능을 디자인해야 한다. 한마디로 자신에게 맞는 형태와 기능을 디자인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그 능력을 생각과 의지라고 말하고 싶다. 벽에 걸려있는 온도계와 온도조절계가 겉으로 보기에는 비슷해 보인다. 하지만 그 내부를 들여다보면 차이가 있는 것처럼 생각의 차원과 의지의 강도에 따라 더 복잡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의 형태와 기능을 정확히 파악하고 잘 수행할 때 인생은 원만한 게 흘러간다. 그렇지 않은 인생은 여기저기 부딪혀서 망가지게 된다.





내가 해보고 싶은 일들은 국제변호사, 의사, 디자이너, 모델, 작가, 배우, 시설관리, 제빵사, 파티시에, 유튜버다. 작년에는 신학을 공부하고 싶어서 신학대학원에 가고 싶었다. 담임 목사님을 만나 상담을 했지만 목회에는 뜻이 없던 나에게 신학교를 굳이 할 필요 없다고 말씀해 주셨다. 올해에도 고민을 하고 말씀을 드렸지만 신학교에 대한 정확한 확신이 없었다.


나의 은사는 무엇일까?

나의 인생의 열매는 무엇일까?

나는 어떤 기능을 하는 사람일까?

나는 왜 태어났고 왜 세상에 존재하는가?

오직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음악가가 연주를 하거나 운동선수가 경기에 몰입하는 영역이 있다. 인간의 기본 욕구를 넘어서는 일, 배가 고파도 잠이 와도 계속하는 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하는 몰입하는 일이 은사라고 생각한다. 영화 소울에서 말하는 인생의 불꽃이 그런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불꽃은 뭘까?"


소울에서 22번은 마지막 불꽃을 찾지 못해 지구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었다. 22번은 불꽃이 있어야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22번의 멘토 조 가드너는 22번에게 말해준다.


"불꽃은 삶의 목적이 아니야. 네가 살 준비가 되면 마지막 칸은 알아서 채워져."


나의 불꽃은 디자인과 글쓰기라고 생각했다. 디자인과 글쓰기를 하면 앉은자리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빠져든다. 더 멋진 디자인을 하기 위해 더 글을 잘 쓰기 위해 빠져든다. 그런데 문제는 내 불꽃으로 돈을 벌지 못한다는 것이다. 직장을 다닐 때는 봉급을 받았다. 하지만 직장을 나와 프리랜서로 디자인을 하고 글을 쓰고 책을 만들고 있는 지금은 생활을 할 수 있는 수입이 안된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불꽃과 돈의 괴리에서 오는 현실의 간극을 어떻게든 처리해야 한다.  


공무원을 그만두고 벌써 11개월의 시간이 흘렀다. 출판사에서 일도 하고, 프리랜서 디자이너로 일을 하고, 한여름 땡볕에서 자전거 배달을 하고, 출판사를 차리고, 전자책을 출간하는 등 여러 일을 했지만 앞으로 무슨 일을 해야 할지 알 수가 없다. 길을 잃고 버려진 듯한 기분, 실패한 인생을 어떻게 만회해야 하나 싶은 생각, 500군데 넘게 이력서를 넣었지만 면접기회조차 얻지 못할 때 무기력함을 느낀다.


내 불꽃은 디자인과 글쓰기인데, 이 일을 해야 하나? 저 일을 해야 하나? 고민만 하면서 허송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디자인과 글쓰기가 나의 불꽃이 아니었다. 내 인생 자체가 불꽃이었다. 불꽃은 불꽃이고 인생은 인생이다. 돈을 벌고 살아내야 한다. 내 삶을 살아내야 한다. 삶을 살아내야 할 22번에게 조 가드너는 말한다.


"너 그거 알아? 너는 이미 재즈스러워!"


너는 이미 재즈스러워라는 말의 의미를 알기가 어려워 Chat GPT에게 물어봤다.
 

"영화 소울에서 마지막에 조 가드너가 22번에게 "너는 이미 재즈스러워"라고 한 말의 의미가 뭐야?"


GPT : 여기서 "너는 이미 재즈스러워"는 간단하게 음악의 즉흥성을 넘어서, 삶을 실제로 받아들이고 매 순간을 특별하게 느끼는 즐거움을 의미합니다. 22번이 삶의 작은 순간들에서 즐거움을 발견하고, 삶을 즐겁게 준비하는 것을 조 가드너는 알아차린 것입니다. 그래서 "너는 이미 재즈스러워."이라는 말은, 22번이 더 이상 특별한 "목적"을 버리고, 이미 삶을 살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을 표현한 다는 것입니다. 이 대사는 우리가 특별한 목표나 목적이 없이도, 단순히 그 자체로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다는 것을 담습니다.


Thanks GPT! 삶을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다. 22번의 멘토링을 훌륭하게 수행한 조 가드너에게 삶을 살 수 있는 기회가 한 번 더 주어진다. 제리가 가드너에게 말한다.


"한번 더 기회를 주려고요. 이제 어떻게 할 거예요? 앞으로 어떻게 살 거죠?"


새로운 삶의 기회를 얻은 가드너는 세상밖으로 한걸음 내딛으며 말한다.


"잘 모르겠어요. 그래도 이건 알죠. 모든 순간을 즐기며 살 거라는 거"




가드너는 그토록 바라던 윌리엄스와 공연 후 다음날도 똑같은 공연을 해야 한다는 사실에 멈춰 선다. 무슨 일을 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무슨 일을 어떻게 하느냐도 그렇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삶을 살아가는 거 자체가 중요하다. 돈을 벌고 일을 하고 사랑하는 게 중요하다. 불꽃이 있어서 불꽃으로 살아가는 게 아니라 살아가는 것 자체가 불꽃이라는 것, 불꽃 때문에 즐거운 게 아니라 살아가는 거 자체가 즐거운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FORM FOLLOW FUCTION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는 사실 형태와 기능은 하나라는 말이다.

마찬가지로 인생의 불꽃이란 말은 인생은 그 자체로 불꽃이라고 말하고 싶다.


필리핀 활화산 스타벅스 히라야에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