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lessing in Disguise
첫 수업 시간이었다. 외국인과 영어로 진행하는 수업은 처음이라 설레기도 하고 긴장되기도 했다. 우리 반의 학생은 7~8명 정도였다. 대부분이 대학생이었지만 40대 아저씨도 한 명 있었다. 첫 시간이니 먼저 자기소개부터 했다. 이름과 하는 일, 왜 영어 공부를 시작하게 됐는지, 목표가 무엇인지 등을 간단하게 말하면 되었다. 하지만 우리는 1단계 학생들. 간단한 자기소개조차 쉽지 않았다. 이름과 직업, 나이까지는 자신 있게 말했지만 영어공부의 동기와 목표를 말할 때는 다들 더듬거리기 시작했다.
“I… go… to America.”
“I… want to….. travel.”
“I like….. English.”
네 단어를 넘기지 않는 선에서, 더듬긴 했지만 그래도 모두들 어떻게든 영어공부를 하게 된 동기를 얘기했다. 그런데 본인의 이름과 직업 소개에서부터 막히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40대 아저씨였다. 간신히 이름만 말한 후에 우리말로 무슨 일을 하는지, 그리고 자신은 영어를 너무 못하니까 좀 도와 달라며 소개를 마쳤다.
지금의 나라면 40대의 직장인이 출근 전에 영어 학원에 들러 공부를 하는 것만으로도 대단하다, 기특하다 여기고 가능한 도와주려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스물한 살의 어린 학생에게 그런 이해심은 없었다. 더욱이 1단계 결과를 받고 화가 나서 6단계를 향해 달릴 준비가 되어 있는 학생에게는 말이다.
‘저런 사람과 내가 같은 등급인 거란 말이야???’
다시 한번 테스트 결과를 믿을 수 없었고 기분이 더욱 나빠졌다. 하지만 선생님은 이런 상황이 익숙했는지 웃으며 넘겼고, 본격적인 수업이 시작됐다.
수업은 먼저 선생님과 함께 교재에 있는 회화를 배우고 옆사람과 짝을 이루어 연습하는 순서로 진행되었다. 사실 교재의 내용은 너무 쉬워서 새로 배우고 말 것도 없었다. 대부분의 학생들에게 중요한 건 알고 있는 걸 말로 내뱉고 연습하는 거였다. 한두 번 연습한 후에는 책에 나온 내용을 자신의 사정에 맞게 바꿔서 말하는 센스도 필요했다. 너무 쉬웠지만 짝을 맞춰 연습한다는 것 자체가 재미있었다. 우리는 다들 비슷한 수준이었고 동질감을 느꼈다. 하루하루 조금씩 느는 걸 보며 서로 격려도 하고 친해졌다. 단 한 명, 40대 아저씨만 빼고... 아저씨는 그 쉬운 것도 못할 뿐 아니라 꾸벅꾸벅 졸기까지 했다.
곧 아저씨는 우리 반의 폭탄 같은 존재가 되었다. 다들 아저씨와 파트너가 되는 걸 꺼렸다. 파트너가 아니더라도 옆에 앉으면 선생님의 말을 통역해 주거나, 조느라 못 들은 걸 알려줘야 했기 때문에 옆자리에 앉는 걸 싫어했다. 아저씨는 매일 가장 늦게 왔는데, 늘 두 번째로 늦었던 나는 그와 자주 파트너가 되었다. 스물한 살의 나는 이해심은 없었지만 모질지는 않았다. 선생님의 말을 통역해 주고, 연습을 제대로 못해서 짜증이 났지만 뭐라 말도 못 하고 스트레스만 받았다. 결국 그의 옆자리를 피하는 방법은 단 한 가지. 일찍 오는 거였다. 그다음시간부터는 가장 일찍 도착했다. 덕분에 지각 한 번 없이 1단계 수업을 마칠 수 있었으니... 이런 걸 바로 "A Blessing in Disguise"라고 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