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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형 Feb 25. 2021

생경한 풍경  - 응급실 1

옆 침대 환자


(현재의 코로나 사태로 인한 응급실 부족 사태 등이 가볍게 다가오지 않는다. 과거에도 대형 병원의 응급실 베드를 배정받기 위해선 차가운 복도 한 쪽에 누워서 기다려야했다.

당시 몸과 마음은 레테의 강 어두운 언덕에

버려진 느낌이었다.)




올림픽대로를 끼고 한강변에 위치한 대형 종합 병원의 응급실은 만원이었다. 베드는 환자들로 꽉 찼고 뒤늦게 들어온 환자는 대기실 의자에 널브러져 있거나 복도 바닥 한편에 누워 있어야만 했다. 일부 환자는 겉보기엔 그저 숨만 남은 산송장 같았다. 그들 모두는 더 이상 다른 병원으로 갈 수 없는 막다른 상황에 처한 환자들이었다. 그 병원은 유독 교통 접근성이 용이해서 전국 각지의 환자들로 붐비었다. 응급실에 발을 들여놓은 그들은 신음소리조차 팔도 억양으로 조금씩 결을 달리했다.



난 통증을 참다가 금요일 오후에 입원 절차를 밟고 보니 아무 곳에도 몸을 뉘일 수가 없었다. 젊은 레지던트는 검사를 한답시고 물 한 모금도 허락하지 않았다. 그리고 베드 문의엔 대꾸도 하지 않았다. 피검사 등 간단한 것 외는 별다른 조치 없이 하루를 의자에서 견디었다.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차라리 집에 가서 누웠다가 일요일 저녁이나 월요일 아침에 다시 들어오겠다고 했다. 그러자 주치의 선생님이 아시면 큰일 난다고 버럭 소리를 높였다.  

아니, 이 사람은 환자를 걱정하는 거야 아님 선배 의사의 책망을 걱정하는 거야?... 근데 내게 주치의가 배정되었다고?


주말이니 근 삼일 동안은 주치의 얼굴을 못 볼 것이 뻔했다.



나는 주말 내내 의자에 매달려 초주검이 되었다. 원인을 알아보고 치료를 받으려고 왔지만 일단의 진료 과정이 진행되기도 전에 병세가 깊어지며 정말로 중환자가 되고 말았다. 목구멍 안쪽이 말라서 쩍쩍 달라붙어 숨을 못 쉬는데도 물은 무조건 안된다는 새파란 의대 졸업생을 한 대 갈겨주고 싶었다. 그러나 그것도 생각뿐 손가락 하나 들 힘이 없었다. 잠시 후 한 나이 든 간호사로부터 물 적신 거즈를 건네받고 나서야 간신히 마른 입을 추길 수 있었다.


의식이 가물가물해지고 발은 자꾸 땅속으로 들어가는 것 같은데 의지할 수 있는 것은 플라스틱 백에 담긴 수액뿐이었다. 그때 갑자기 앰뷸런스 소리로 응급실 밖이 소란스러워졌다. 간호사들이 급히 뛰어나가더니 곧이어 이동식 베드에 피투성이의 중년 남성이 실려 들어왔다.

교통사고 환자였다.
- 세상에, 저렇게도 신체형편없이 

망가지기도 하는구나...
힘없이 앉은 내 앞을 부서져 피범벅이 

두 다리가 지나갔다.



일요일 저녁이 되어서야 응급실 맨 구석 베드를 할당받았다. 간신히 베드 하나를 차지하고 누운 것만으로도 살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베드와 베드 사이에는 커튼 칸막이가 있었지만 대부분의 커튼을 걷어놓아서 환자들이 서로의 신음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물론 그런 광경을 제대로 눈에 담는 사람은 없었다.

모두가 중환자들이었으니까.


입원하기 이삼 년 전에 연수 프로그램에 의해 서대문 형무소를 탐방한 적이 있었다. 좁은 방과 고문 도구들은 현장감보다는 생경감을 불러일으켰다. 그 도구들이 유발하는 고통과 공포가 구체적으로 감각되지 않았다. 일제가 행한 고문 중에는 잠 안 재우기, 물 안 주기, 움직이지 못하게 하기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날 비로소 애국지사들이 겪었던 고초를 생각하며 거친 침대에라도 한번 누워볼 수 있다는 사실이 그토록 소중할 수 있다는 것을 가슴이 저리도록 실감했다.



침대에 누운 지 세 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옆 침대에 누웠던 환자가 고함을 지르며 벌떡 일어났다. 그가 달고 있던 심장박동기 소리가 갑자기 초고속으로 삐비빅거리며 빨라진 직후였다. 환자는 이십 대 후반으로 보이는 젊은 남자였다.

그가 외친 것은 단 한마디.


살려줘!


갑자기 그의 입에서는 선혈이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간호사들의 비명소리가 잇따랐다. 그는 시뻘건 피로 물든 시트 위에 그대로 쓰러졌다. 그의 침대가 급히 집중치료실로 들어갔고 끝내 다시는 제자리로 돌아오지 않았다.


높고 낮은 신음소리가 울리던 응급실엔 순간적으로 적막이 흘렀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자

여기저기서 조금씩 신음소리가 

다시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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