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의 코로나 사태로 인한 응급실 부족 사태 등이 가볍게 다가오지 않는다. 과거에도 대형 병원의 응급실 베드를 배정받기 위해선 차가운 복도한 쪽에 누워서 기다려야했다.
당시몸과 마음은 레테의 강 어두운 언덕에
버려진 느낌이었다.)
올림픽대로를 끼고 한강변에 위치한 대형 종합 병원의 응급실은 만원이었다. 베드는 환자들로 꽉 찼고 뒤늦게 들어온 환자는 대기실 의자에 널브러져 있거나 복도 바닥 한편에 누워 있어야만 했다. 일부 환자는 겉보기엔 그저 숨만 남은 산송장 같았다. 그들 모두는 더 이상 다른 병원으로 갈 수 없는 막다른 상황에 처한 환자들이었다. 그 병원은 유독 교통 접근성이 용이해서 전국 각지의 환자들로 붐비었다. 응급실에 발을 들여놓은 그들은 신음소리조차 팔도 억양으로 조금씩 결을 달리했다.
난 통증을 참다가 금요일 오후에 입원 절차를 밟고 보니 아무 곳에도 몸을 뉘일 수가 없었다. 젊은 레지던트는 검사를 한답시고 물 한 모금도 허락하지 않았다. 그리고 베드 문의엔 대꾸도 하지 않았다. 피검사 등 간단한 것 외는 별다른 조치 없이 하루를 의자에서 견디었다.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차라리 집에 가서 누웠다가 일요일 저녁이나 월요일 아침에 다시 들어오겠다고 했다. 그러자 주치의 선생님이 아시면 큰일 난다고 버럭 소리를 높였다.
아니, 이 사람은 환자를 걱정하는 거야 아님 선배 의사의 책망을 걱정하는 거야?... 근데 내게 주치의가 배정되었다고?
주말이니 근 삼일 동안은 주치의 얼굴을 못 볼 것이 뻔했다.
나는 주말 내내 의자에 매달려 초주검이 되었다. 원인을 알아보고 치료를 받으려고 왔지만 일단의 진료 과정이 진행되기도 전에 병세가 깊어지며 정말로 중환자가 되고 말았다. 목구멍 안쪽이 말라서 쩍쩍 달라붙어 숨을 못 쉬는데도 물은 무조건 안된다는 새파란 의대 졸업생을 한 대 갈겨주고 싶었다. 그러나 그것도 생각뿐 손가락 하나 들 힘이 없었다. 잠시 후 한 나이 든 간호사로부터 물 적신 거즈를 건네받고 나서야 간신히 마른 입을 추길 수 있었다.
의식이 가물가물해지고 발은 자꾸 땅속으로 들어가는 것 같은데 의지할 수 있는 것은 플라스틱 백에 담긴 수액뿐이었다. 그때 갑자기 앰뷸런스 소리로 응급실 밖이 소란스러워졌다. 간호사들이 급히 뛰어나가더니 곧이어 이동식 베드에 피투성이의 중년 남성이 실려 들어왔다.
교통사고 환자였다. - 세상에, 저렇게도 신체가 형편없이
망가지기도 하는구나... 힘없이 앉은 내 앞을 부서져 피범벅이된
두 다리가 지나갔다.
일요일 저녁이 되어서야 응급실 맨 구석 베드를 할당받았다. 간신히 베드 하나를 차지하고 누운 것만으로도 살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베드와 베드 사이에는커튼 칸막이가 있었지만 대부분의 커튼을 걷어놓아서 환자들이서로의 신음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물론 그런 광경을 제대로 눈에 담는 사람은 없었다.
모두가 중환자들이었으니까.
입원하기 이삼 년 전에 연수 프로그램에 의해 서대문 형무소를 탐방한 적이 있었다. 좁은 방과 고문 도구들은 현장감보다는 생경감을 불러일으켰다. 그 도구들이 유발하는 고통과 공포가 구체적으로 감각되지 않았다. 일제가 행한 고문 중에는 잠 안 재우기, 물 안 주기, 움직이지 못하게 하기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날 비로소 애국지사들이 겪었던 고초를 생각하며 거친 침대에라도 한번 누워볼 수 있다는 사실이 그토록 소중할 수 있다는 것을 가슴이 저리도록 실감했다.
침대에 누운 지 세 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옆 침대에 누웠던 환자가 고함을 지르며 벌떡 일어났다. 그가 달고 있던 심장박동기 소리가 갑자기 초고속으로 삐비빅거리며 빨라진 직후였다.환자는 이십 대 후반으로 보이는 젊은 남자였다.
그가 외친 것은 단 한마디.
살려줘!
갑자기 그의 입에서는 선혈이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간호사들의 비명소리가 잇따랐다. 그는 시뻘건 피로 물든 시트 위에 그대로 쓰러졌다. 그의 침대가 급히 집중치료실로 들어갔고 끝내 다시는 제자리로 돌아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