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도형 Feb 23. 2021

상담사의  자격


한 지인이 톡을 보내왔다.

그렇게 구독을 차단해버리면 상대방이 기분 나빠서라도 관계가 단절될 것이라고.


글도 몇 편 되지 않지만 쓰면 쓸수록 당초 예상과는 달리 의식적인 작업이 되어갔다.

아름답고 선한 글만 써야 하는 걸까?...

내 속에서 비껴나있던 음성이 나즉이 울려났다.

그렇다면 그동안 교류를 이어갔던 이들에게 상처나 실망을 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새로 시작함이 옳은 일일 것이었다.


모든 글을 들고 다른 플랫폼으로 옮기거나 탈퇴 후 다시 가입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애초에 따로 글 저장소를 마련하지 않고 브런치에 직접 글을 쓴 결과 이곳에서의 정보를 다른 곳으로 이전하는 것도 힘든 일이었다.

그래서 모든 구독을 삭제하고 상대 구독자에게 구독 취소를 요청했다.

현 상태에서 글쓰기 초기 상태를 시도한 것이다.

결과는? 실패다.


가장 가까운 작가인 콩새님과 효라빠님과 이주현님만 겁?먹고 도망갔다.

반대로 박성원님과 조매영님과 고코더님은 거듭된 요청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라이킷을 눌렀다.

그래서 조금 더 압박을 가했다.


- 라이킷을 계속 누르는 사람은 본문과 요청사항을 읽지도 않은 이들이다.


그러나 이들은 울산바위 삼형제같이 단단했다.

그들의 얼굴이 새삼 궁금해졌다.

그러고 보니 그들 모두 당당히 프로필에 얼굴을 올린 이들이다.

다른 포스를 장착한 작가들임이 틀림없다.






<결혼 방정식>은 다른 글에 비해 읽고 간 이가 많았다.

지인들의 반응은 다음과 같았다.

- 무슨 결혼을 세 번 정도 한 사람 같구먼?

그리고 얼마 후 메일이 한 통 도착했다.

새로 론칭한 상담 앱인데 그중 연애 카테고리의 상담사모시겠다는 내용이었다.

한참을 웃다가 다시 지인들에게 이 소식을 전했다.

세 가지 반응이 돌아왔다.


1. 친구 1 : 재미있겠다. 잘해봐라.

1. 작은 누님 : 신중하라. 남 인생에 함부로 관여해선 곤란하다. 의사 중에선 정신과 의사가 스트레스를 가장 크게 받는다.

1. 친구 2 : 때려치워라. 네가 무슨 자격으로?


미리 등록한 작가의 체험담을 읽어보니 몇 가지의 유형이 있었다.

그중에서도 상담 신청자의 사연을 공감해주고 스스로 결정하게 하는 방식이 가장 설득력 있었다.

그건 이미 예전에 상담 교육을 통해 얻은 결론과 흡사했다.

카운슬러의 개인적인 해결책 제시가 상대방에겐 별 소용이 없는 경우도 많다.

신청자는 결론을 내린 상태에서 이에 대한 확신을 얻고자 상담을 신청하는 경우도 꽤 있다.


그런데 문제는 액수를 알 수 없는 소정의 보상과 상담 후의 평가 방식이었다.

요즘 평가가 존재하지 않는 분야가 어디 있으랴마는 그만큼 정성을 기울여야 한다는 뜻이었다.

또한 주로 늦은 밤과 새벽에 고민 상담이 이루어지는 것이 큰 문제로 보였다.

1대 1 채팅 상담이 이 시간대에 이루어진다면 나 개인의 휴식과 회복의 시간이 훼손될 수도 있다.

그들의 고민거리가 내 꿈에 나타나지나 않을까 지레 걱정도 들었다.


현재는 이에 대한 결정을 유보한 상태이다.

상담 분야는 이미 예전부터 적성 검사에서 제시되었던 분야이다.

크게 부담스럽지는 않다.

그러나 진지한 상담을 원하는 이에게 과연 도움이 될 수 있는 충분한 피드백을 제시할 수 있을까?

물론 좋은 경험이 될 수도 있다.

글쓰기에도 도움이 될런지는 알 수 없다.






이 곳 브런치는 내게  

서구식 아점 -> 글 쓰는 매거진 -> 소통하는 다락방 -> 스케치하는 그림판 -> 상담사의 가능성으로 진화하는 중이다.

여러모로 즐거운 경험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는 여러 작가들의 직간접적인 긍정적인 영향이 있었다.

고마운 일이다.


깊은 강물처럼 흐르는 류완 작가님부터 팝콘처럼 터지는 괜찮아요 작가님까지 끊을 수 없는 님들이 너무나 많다.

애초에 라이킷과 구독을 금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은 일이었던 것이다.



(이 저녁 격무를 마치고 귀가하는 영혼들에게,

혹은 아직도 일터에서 하루를 불사르고 있는 영혼들에게,

어둔 다락방에서 거친 글을 매만질 영혼들에게

진심 어린 위로를 보내고 싶은 시간이다.)






이전 17화 댓글로 보는 정치 민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