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와 강남이 오랜 시간 서울의 트렌드를 이끌어 온 핫플 1세대였다면, 성수나 을지로는 힙스터 감성을 앞세워 핫플 2세대로 자리 잡았다. 최근엔 뛰어난 접근성을 바탕으로 공업지대나 시장의 낡은 정취와 예술적 감성이 묘하게 섞인 신당과 문래가 핫플 3세대로 주목받고 있다. 특히 문래는 지하철 2호선을 따라 신도림과 구로디지털단지 사이에 위치해 교통의 요지이자, 예술가들이 자발적으로 모여든 독특한 문화를 지닌 곳이다.
이곳의 매력은 공업거리의 거칠고 투박한 풍경 위에 자연스럽게 녹아든 카페와 갤러리, 작은 가게들이 만들어내는 절묘한 이중성이다. 낡은 철강 공장들 사이사이에 감각적인 공간이 들어서면서, 문래는 옛 것과 새것의 균형을 이상적으로 보여주는 특별한 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다.
가맥, 로컬과 레트로를 연결하다
'가맥'은 원래 호남 지역, 특히 전주에서 발달한 지역문화다. 퇴근 후 공장 노동자들이 가볍게 맥주 한잔할 장소로 동네 슈퍼가 활용된 것인데, 이 문화가 서울 한복판 문래동에서 부활했다. 신흥상회 역시 그러한 가맥 문화의 진수를 그대로 담고 있다.
왜 사람들은 세련된 바나 화려한 카페를 두고 굳이 슈퍼 앞 간이 테이블에서 맥주를 마시는 걸까? 아마도 사람들은 ‘로컬’과 ‘레트로’의 묘한 접점을 이곳에서 발견한 것 같다. 서울의 중심부이지만 문래동이라는 로컬성을 강하게 담고 있고, 시간에 멈춘 듯한 슈퍼 앞 야장에서 맥주를 마시는 경험은 색다른 감성을 건드린다.
야장, 불편함을 감수하는 즐거움
그런데 이 ‘야장’이라는 게 참 이상하다. 실내에서 에어컨 바람맞으며 편안히 마시는 게 더 좋지 않을까? 하지만 야장은 불편하고 좁은 공간임에도 오히려 그 불편함 자체가 특별한 경험으로 전환된다. 신흥상회의 플라스틱 의자와 간이 테이블은 깔끔하거나 세련되지 않다. 하지만 그 투박함이 오히려 사람들에게 편안함과 해방감을 준다.
특히, 신흥상회 야장의 진정한 매력은 장소가 가진 개방성이다. 실내의 네 벽 안에서 벗어나 도시 한가운데서 바깥을 바라보며 마시는 술 한잔은 묘한 해방감을 준다. 마치 도시라는 극장을 감상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더구나 이곳은 골목이 아니라 실제 차가 지나다니는 대로변에 위치한다. 일반적인 야장의 경험과는 조금 다른, 도로뷰라는 색다른 매력이 이곳을 특별하게 만든다.
도로뷰 야장, 속도의 대비를 즐기다
실제 자동차들이 쌩쌩 지나다니는 도로 옆에서 맥주 한 병을 마시는 경험은 흔하지 않다. 신흥상회 야장에서 앉아있으면, 바로 옆에서 차가 지나가는 풍경을 감상하게 된다. 평소 운전하거나 걷기만 했던 도로 위 공간을 술 한 잔 하며 감상하는 것이다.
이 도로뷰의 매력은 속도감과 대비되는 느림의 시간이다. 차들이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도로 옆에서 느긋하게 맥주를 마시고 있노라면, 도시에서 늘 쫓기듯 살던 일상이 잠시 멈추는 기분이 든다. 도로라는 공간은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지나가는 공간이지만, 우리는 그 곁에서 목적 없이 멈춰 서서 느린 속도로 풍경을 즐긴다.
아이유와 신흥상회, 시대를 잇는 감성의 연결
신흥상회가 아이유의 ‘꽃갈피’ 커버 촬영지로 선택된 이유도 비슷한 감성 때문이 아닐까. 아이유가 ‘꽃갈피’에서 들려준 음악은 옛 감성을 지금의 시대적 감성으로 되살리는 시도였다. 신흥상회 역시 1975년부터 이어져 내려온 장소로, 시대와 세대를 잇는 연결점 역할을 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이곳에서의 시간은 유독 천천히 흐른다. 빨리 마시고 빨리 떠나는 게 아니라, 이곳에서는 느리게 한잔하고 오래 머물며 시간을 보내게 된다. 사람들은 이곳에서 맥주를 마시며, ‘옛날’을 추억하기도 하고, 지금 이 순간을 즐기기도 한다.
익숙한 공간의 낯선 매력, 신흥상회의 힘
결국 문래의 신흥상회는 낡은 슈퍼라는 익숙한 공간을 통해, 로컬과 도시, 옛 것과 새것의 경계를 자연스럽게 허물어버린다. 슈퍼 앞 야장에서 도로뷰를 감상하며 맥주를 마시는 경험은 도시 속 일상에서 벗어나 잠시 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한다.
신흥상회에서의 시간은 일상 속 작은 일탈이자, 도시에서 느낄 수 있는 또 다른 낭만이다. 어쩌면 이 작은 슈퍼가 문래의 정취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가장 대표적인 공간일지도 모르겠다. 문래라는 지역이 품고 있는 특별한 이중성, 그리고 그 안에서 야장이라는 공간이 보여주는 낭만을 신흥상회에서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