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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화과 Feb 06. 2024

나는 정상일까?

기형아 검사를 했다

'임신 사실을 언제쯤 주변에 알릴까?' '회사에는 언제쯤?' '아직 안정기도 아닌데 태명을 지어줘도 되는 걸까?'


임신 초기 내 고민들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뱃속의 세포에게 정을 붙여도 되는 걸까' 하는 질문이었다. 그리고 이 고민의 결정적 변수는, 이제 와 고백하자면, 기형아 검사였다.


보통 임신 10~13주에 1차 기형아 검사를, 16~18주에 2차 기형아 검사를 다. 산모의 피를 뽑아 태아의 유전자 이상을 확인하고, 초음파로 태아의 목투명대 두께를 잰다. 이 과정을 통해 다운증후군, 신경관결손 등의 가능성을 확인한다. 혹시 이상이 발견되면 배에 바늘을 찔러넣어 양수를 채취하는 양수 검사를 추가로 실시하기도 한다. 그리고 20주 언저리에 정밀초음파로 장기 이상 등을 다시 확인한다. 이 같은 기형아 검사는 보건소에서 별도 지원 사업을 마련할 정도로 권장된다.


임신 전에는 기형아 검사에 대해 잘 몰랐을 뿐더러, 이게 임신을 받아들이는 과정에 주요한 변수가 될 거라곤 상상하지 못했다. 그러니까, 기형아 검사를 이렇게 무서워하게 되리라고는. 그래, 인정하자. 나는 아이가 장애를 갖고 태어날까봐 두려웠. 그리고 두려워하는 나란 사람이 징그러웠다. '네가 그 어떤 아이라도 사랑해'라고 말하지 못하는.


잠깐. 변명을 좀 하고 싶다. 이런  영 못 마땅한 내 스스로를 달래기 위해서라도…


완벽한 '정상인'이란 환상에 불과하다. 나도 안다. 고도근시로 안경 없이는 천지분간을 못 하는 나는 이것 역시 장애의 한 종류라고 생각한다. 내가 안경이나 시력교정술의 도움으로 일상 생활을 해내듯이, 장애인을 사회에서 배제하는 것은 장애 그 자체보다는 장애를 방치하거나 차별하는 사회라고 믿어왔다. 그러니까, 장애와 더불어 살 방법을 우리는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고.


그런 내가 이제는 '정상' 두 글자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목소리 말고 글자여야 했다. 병원에서는 검사 결과가 정상이면 문자메시지를, 이상이 있어 추가 설명이나 검사가 필요하면 전화를 준다고 했다. 전화를 받는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 02로 시작되는 번호가 스마트폰에 뜰 때마다 눈을 질끈 감았다.


스스로가 모순적으로 느껴졌다. 넌 정말 말뿐이었구나… 뱃속의 존재가 장애를 가졌다는 판정을 받으면 어떤 결정을 하게 될까봐 나는 검사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주변에 임신 사실을 알리기를 꺼리고 있는 것이다. 그 와중에 뒤늦게 양가의 가족력을 확인하는 고리타분한 짓까지 저질렀다.


임신 중절 문제에 대해서도 가치관이 흔들리다 못해 붕괴될 지경이었다. 대한민국 헌법재판소는 2019년 4월 '낙태죄'에 대해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렸다. 그때 나는 환호했다. 임신 중지 문제에 있어서 여성의 선택권을 더 많이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여성의 신체에 치명적이지 않는 한 최대한 늦게까지 임신 중지을 허용해야 한다고. 그런데 이제 알아버린 것이다. 8주가 되면 세포는 팔다리를 갖추고 제법 사람의 형태를 띄게 된다는 사실을. 이때의 배아 모습을 '젤리곰'이라 부르며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여전히 나는 여성의 임신 중지 선택권이 보장돼야 하고 낙태죄 폐지 이후 사실상 공백 상태가 된 관련 법 제정을 서둘러야 한다고 믿지만, 기준이 될 주수에 대해서는 말을 얼버무리게 된다. 이렇게 변해버린 채로, 기형아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것이다.


임신 과정은 나의 오만을 깨닫는 나날이다. '그간 겁도 없이 술을 퍼마시고 다녔지(물론 다시 돌아간대도 소맥의 낭만을 사랑할 것이다)' '임산부 선배를 배려하는 방법을 전혀 몰랐다' '애를 별로 안 갖고 싶다고 떠들고 다닌 과거의 나에 대해 훗날의 아이는 영영 모르길'…


기형아 검사를 통과해나가면서 그간 내가 '장애는 남의 일이 아니다'고 말하면서 실은 완벽하게 남의 일로 여겨왔다는 걸 알게 됐다. 그러니 '진짜' 내 문제가 될까봐 이토록 두려웠겠지. 구려…연애를 하면 나의 바닥을 확인하게 된다더니. 나는 기형아 검사 결과를 기다리며 바닥을 다. 10년 가까이 나가지 않았던 성당에 가고 성모상 앞에 기도 초도 공손히 바쳤다… 산부인과 병원에서 그토록 기다리던 '정상' 문자를 연달아 받고도, 정상이란 뭔가에 대해 아직도 고민한다. 모성애는 환상이라지만, 이렇게 돌다리 두드리며 건너듯 임신을 받아들이는 게 맞나? 이런 나는 정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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