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대에서 요트를 타며
아이의 첫 부산 여행은 해운대에 있는 아쿠아리움에서 시작되었다. 아장아장 걷던 시기였던 그땐 아쿠아리움에서 헤엄치는 가오리를 보며 아이의 눈이 휘둥그레졌었다. 이후 몇 년간 아이와 함께 하는 여행에서는 어느 도시를 가든 아쿠아리움이나 동물원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동물을 좋아하던 아이는 고학년이 되면서 동물 복지에 관심이 많아졌고, 중학생인 지금은 여전히 동물을 좋아하지만 아쿠아리움이나 동물원에 일부러 찾아가는 일은 없다. 동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동물원의 열악한 환경에 화가 나는 법이라며 동물원을 좋아했던 어린 시절의 자신이 너무 뭘 몰랐다는 말까지 한다.
땀을 뻘뻘 흘리며 하루종일 놀이터에서 놀아도 지치는 기색이 없던 유치원생 무렵에는 해운대 모래 축제에 갔었다. 높게 쌓여있던 모래산에서 미끄럼 타기를 수없이 반복하는 아이를 보며 산삼을 먹는다 한들 저 체력을 따라갈 수 있을까 싶었다. 나라면 운동화에 들어간 모래가 찝찝했을 텐데, 아이는 운동화는 커녕 바지에 모래가 들어가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노는 데 있어서 만큼은 피곤함과 찝찝함을 느끼지 못하는 아이를 보며 신기하기까지 했는데 이제는 그 신기함이 거의 사라졌다. 중학생이 된 아이는 사십 대인 나만큼은 아니더라도 신체활동 시간이 길어지면 피곤해하고, 옷에 모래가 들어가면 찝찝함을 호소한다.
아이가 어릴 땐 어른과 다른 아이만의 모습을 지켜보는 재미가 있었다. 어린이 티를 벗어가면서부터는 그 변화의 양상을 지켜보는 재미가 있다. 아이를 키우는 일이 재미있기만 한 건 절대, 결단코 아니지만 육아의 고됨 사이에 이런 재미라도 찾고 싶은 마음이라고나 할까. 더불어 나와 닮은 점, 나와 다른 점을 찾는 것도 재미라면 재미다.
이번 부산 여행에서는 아이와 나의 다른 점이 또 하나 드러났다. 뱃멀미가 심해 요트 체험의 재미를 별로 못 느꼈던 나와 달리, 큰 배와 다르게 물결의 움직임이 잘 느껴지는 요트가 너무 좋았다는 아이. 이번 여행에서 지금까지 한 것 중 요트 체험이 가장 재미있었다는 아이는 요트에서 내리자마자 다음에 또 언제 요트를 탈 거냐고 물었다.
딸: 우리, 요트 또 언제 타? 응?
엄마: 난 이제 안 탈 건데? '이런 게 있단다'하고 부모가 한번 태워줬으면 그다음엔 네 돈으로 타는 거야.
딸: 그럼 나는 체험이 아니라 그냥 요트를 사버릴 거야.
엄마: 요트 엄청 비쌀걸? 그리고 안 탈 때는 계류장에 띄워놔야 되잖아. 차로 치면 주차비 같은 그 비용도 들고 유지보수비도 만만치 않다고 하던데.
딸: 난 돈 많이 벌 거니까 괜찮아.
엄마: 뭐 해서 돈 벌건데?
딸: 돈 많이 버는 일 해서.
엄마: 그니까 돈 많이 버는 일 뭐?
딸: 몰라. 암튼 돈 많이 버는 일.
돈 많이 버는 일이 뭔지는 모르지만 암튼 돈 많이 버는 일이라니. 유치원생의 대답이라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대답이다. '피곤함'과 '찝찝함' 분야에서는 어린이 티를 벗었지만 '직업세계의 이해' 분야에서는 그 시절의 미숙함을 유지하고 있는 중학생이었다. 중학생의 선별적 미숙함에 우려 섞인 시선을 보내던 나는 문득 유치원생의 미숙함을 그저 귀여워하던 때가 떠올랐다.
아이 대여섯 살 무렵, 바쁘게 출근 준비를 하던 시간이었다.
엄마: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어? 아, 화장도 못했는데...
딸: 엄마, 화장할 시간이 없어?
엄마: 응.
딸: 그럼 화장은 갔다 와서 해. 그럼 되잖아.
아이의 논리는 매우 명쾌했다. 아침에 화장할 시간이 없으면, 퇴근하고 시간 있을 때 하면 되지 뭐가 걱정이냐는 투였다. 화장할 시간도 없이 바쁜 아침이었지만 그 말을 하는 아이가 너무 귀여워서 꼭 안아줬더랬다.
아쿠아리움을 좋아하던 유치원생이 요트를 좋아하는 중학생이 되는 동안 나는 30대 중반에서 40대 중반이 되었고, 40대 중반의 나이는 나에게 노안을 선사하였다. 립스틱 뚜껑의 자잘한 글씨가 안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아이가 언제까지나 유치원생이 아니듯, 나도 언제까지나 작은 글씨가 잘 보이는 젊은이가 아니었다. 덕분에 나는 내 삶이 유한하다는 사실을 진심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신체 기능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 젊은이에게는 누구나 죽는다는 사실이, 이 삶에는 끝이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막연하다. 노안은 나에게 자잘한 글씨가 보이지 않는 생활의 불편함을 안겨다 주었지만 동시에 삶의 유한성을 깨닫는 촉매제가 되어준 셈이다.
노안을 얻기 전, 그러니까 불과 몇 년 전의 나만 해도 그런데 십 대 아이는 더더욱 자기 삶이 유한하다는 사실을 실감하지 못할 것이다. 나에겐 노안뿐만 아니라 재작년의 수술 경험이 나의 노년을 진지하게 그려보는 계기가 되었지만 아이에겐 아직 그 어떤 계기도 없다. 노년까진 바라지도 않는다. 고등학생이 된 자기 자신을 그려보는 일조차 어려워 보인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렇게 태평일 수가 없다. '출근 전에 시간이 없으면 퇴근하고 화장하면 되지'를 말하던 유치원생이 '수능 전에 시간이 없으면 수능 치고 공부하면 되지'를 말하는 중학생이 된 느낌이다.
자기가 어떤 공부를 좋아하고 잘하는지 탐색해보지 않는다면, '무엇을 전공할지 고민할 시간이 없으면 대학 입학 후에 다시 고민하면 되지', 혹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들여다볼 시간이 없으면 일단 직장 구하고, 결혼하고, 한참 살다가 그때 가서 고민하면 되지'가 될 것 같다. '그때 그랬더라면'이라는 후회가 흔하다는 건 '언제'가 '무엇' 만큼이나 중요하다는 뜻이 아닐까.
시간이 한정된 자원이라는 생각에 아이에게 조급함이 생기지는 않았으면 좋겠지만, 시간 있을 때 하자고 미루어버리기엔 '언제' 했느냐가 큰 차이를 만들어내는 일도 있다는 사실 역시 알고 있으면 좋겠다. 자기가 누군지 알아가는 사춘기 시기의 아이를 데리고 다니는 것도 '언제'가 중요하다는 걸 깨달은 엄마의 마음에서 비롯되었다. 유치원생과는 나눌 수 없는 이야기, 대학생이 되고 나서는 다소 늦은 감이 있는 대화를 '지금' 하기 위한 여행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