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대 백사장에서
"사장님, 손님 오셨어요!"
내가 커피숍에 들어서자 테이블 정리를 하고 있던 분이 안쪽을 향해 크게 외쳤다. 테이블 두세 개가 전부인 작은 커피숍이라 혼자 운영하시는 줄 알았는데 따로 사장님이 있었나? 집 근처라서 가끔 들르는 곳이었다. 주문받고, 음료를 만들고, 뒷정리를 하는 분이 항상 같은 분이었기에 이 분이 사장님일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사장님은 다른 분이라니 누구일까. 궁금한 마음을 안고 음료 주문하는 곳에서 사장님의 등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윽고 안쪽 문을 열고 사장님이 나왔다. 방금 잠에서 깬 듯 부스스한 모습으로 등을 긁으며 나온 사장님. 흐트러진 긴 머리에도 누워있다가 나온 티가 역력했다. 아무리 많게 보아도 20대 중반쯤으로 보였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하나요."
"드시고 가세요?"
"네, 마시고 갈게요."
트레이닝복 차림의 사장님은 건조한 표정으로 주문을 받은 뒤 커피를 만들기 위해 돌아섰다. 넓지 않은 매장에 손님은 나 혼자였다. 주문 후 자리에 앉으니 사장님을 크게 부르던 중년 여성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테이블 정리를 마치고 출입문 유리를 닦고 있었다. "주문하신 커피 나왔습니다."를 말하고 다시 안쪽 문으로 쏙 들어간 사장님은 안에서 뭘 하는지 모르겠지만, 출입문 유리를 힘주어 닦는 그녀의 손은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커피를 홀짝이며 생각해 봤다. 이 둘은 모녀 관계가 아닐까. 딸의 일자리 마련을 위해 엄마가 하는 카페에서 일해보라고 제안했을 수도 있고, 애초에 딸과 함께 하기 위해 카페를 차렸을 수도 있다. 엄마는 딸이 조금 더 주인의식을 가지고 일했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딸을 '사장님'이라고 부르겠지. 잘 알지도 못하면서 다른 집 사정을 이렇게 추측해 보는 건 내가 딱 그렇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커피숍과 영어학원이라는 업종의 차이만 있을 뿐.
우리집에는 커피숍을 운영하는 '사장님' 대신 학원을 운영하는 '원장님'이 있다. 딸아이가 조금 더 주인의식을 가지고 공부했으면 하는 마음에서 거실에서 영어공부하는 시간에 쓰담어학원이라는 이름을 붙여놓았고 아이에게는 쓰담어학원의 원장직을 맡겼다. 강의하는 강사는 없는 학원이다. 원장과 직원이 함께 짠 커리큘럼에 따라 학생 혼자 공부하는 방식이다. 학생인 동시에 원장인 딸아이는 학생의 실력 향상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있으며, 학부모에게 10만 원의 수강료도 받고 있다. 나는 학부모인 동시에 지각을 관리하는 직원이다. 학부모로서는 원장님에게 10만 원 수강료를 내지만, 지각을 관리하는 직원으로서는 원장님에게 3만 원 월급을 받고 있다.
뭘 그렇게까지 하나 싶을 수도 있다. 하지만 학원비는 부담스럽고, 그렇다고 집에서 "열심히 해보렴. 파이팅!"만 해주다가는 핸드폰과 물아일체가 된 아이를 맞닥뜨리기 일쑤다. 아이도 혼자서 해보겠다고 하다가 웹툰 삼매경에 빠진 전적이 있기에 3만 원을 주고서라도 엄마를 직원으로 고용하고자 했다. 나는 원장님에게 3만 원 월급을 받는 직원으로서 지각 체크라는 할 일을 수행한다. 정해진 시간에 거실로 나와 책을 펴는지 확인하는 일이다. 엄마로서 수행했다면 잔소리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지각 체크를 위해 고용된 직원은 그저 자기 할 일을 하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수강생이 한 명뿐인 이 학원은 지금도 그럭저럭 굴러가고 있는 중이다.
부모의 강요에 의해, 혹은 관성에 의해 학원에 왔다 갔다 하는 아이로 만들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그 결과 지금까지 쌓아온 학습량이 주변 잘하는 친구들보다는 다소 부족하다. 그래서 가끔은 불안이 밀려온다. 조금 더 열심히 시키지 않은 대가로 미래의 나와 아이가 힘들어지지는 않을지. 나에겐 커피숍을 차려줄 돈이 없으니 자기 밥벌이를 할 수 있는 능력을 더 잘 키워줘야 하는데 혹시 소홀한 부분이 있을까 봐 염려가 된다. 자식이 어떻게든 먹고살 수 있는 능력을 갖추길 바라는 부모의 마음은 커피숍 '사장님'의 엄마 마음이 되기도, 우리집 '원장님'의 엄마인 내 마음이 되기도 한다.
나에게 3만 원 월급을 지급하는 원장님이자 웹툰을 좋아하는 중학생인 딸아이와 함께 하는 부산 여행. 우리는 해운대 백사장 이런 대화를 나누었다.
"엄마가 지난주에 '여행자를 위한 도시 인문학 부산편'을 읽었다고 했잖아. 그 책에 해운대 거북이 이야기가 나오거든."
"뭐? 해운대에 거북이가 산다고? 어딨어? 지금 보여?"
"아니, 좀 들어봐. 1960년대 어느 날, 거북이가 알을 낳기 위해 해운대 해수욕장에 올라왔다가 잡힌 적이 있었대."
"설마 사람들이 거북이를 죽이진 않았겠지?"
"죽이긴. 해운대 사람들은 거북할매를 잘 모셔야 해수욕장이 발전한다면서,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참석하는 대규모 환송식을 열어서 거북이를 바다로 잘 돌려보내 줬대."
"잘했네."
"그런데 그 시절 해운대 해수욕장은 송도 해수욕장보다 뒤처져있었는데, 거북이 환송식을 한 뒤로 송도 해수욕장을 따라잡았다지 뭐야."
"자기들 믿고 싶은 대로 믿는구만. 하긴, 뭐 거북이 덕분이라고 하는 것도 나쁘진 않네. 난 거북이가 좋으니까."
"그래. 꼭 거북이 때문이 아닐 수도 있겠지. 그래도 결국 해운대 해수욕장이 크게 발전했고, 거북이도 영광스럽고, 얼마나 좋아? 나는 우리한테 해운대가 거북이 환송식 역할을 해줄 것 같아."
"그게 무슨 말이야?"
"너랑 해운대에 온 게 벌써 몇 번째지? 나는 너랑 이렇게 다니면서 이야기하는 게 너를 발전시킨다고 믿어. 꼭 해운대 때문이 아닐 수도 있겠지만 네가 결국 크게 발전하게 된다면 나는 해운대에 그 영광을 돌릴 것 같아."
아이는 그 뒤로 내가 오글거리는 멘트를 날리기라도 할까 봐 두려워하는 눈빛을 보내며 모래로 거북이나 만들자고 했다. 모래를 몇 번 토닥이니 어설픈 거북이 형체가 뚝딱 만들어졌다. 바다 쪽으로 몇 걸음 가더니 주섬주섬 뭔가를 집어왔다. 그걸로 거북이의 눈과 입을 만들고, 등 위쪽으로 장식도 했다. 그러고는 다시 유유히 파도에 발을 담그러 갔다. 아이가 만든 거북이를 보며 1964년 해운대 해수욕장에 올라온 거북이가 참 고맙다는 생각을 했다. 해운대 해수욕장이 크게 발전한 덕분에 잘 알려진 여행지 밖에 모르는 나 같은 사람도 해운대에 종종 올 수 있었으니. 그래서 이렇게 바다를 보며 불안을 잠재우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