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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다람쥐 Sep 20. 2022

오픽 선접수 후고민

일단 접수부터 해야...

| 증명된 길을 보고도 따라 하지 않을 수 있나 |

 나뭇잎 몇 장이 보인다고 해서 '어머, 울창한 숲길이 시작되려나 봐!' 하거나, 어쩌다 맛있게 끓여진 라면을 먹으며 '나 요리에 소질 있는 거 아냐?' 하는 사람을 본다면 정신을 차릴 수 있도록 가볍게 어깨를 흔들어 주어야 할까? 불행인지 다행인지 내 주변에는 내 어깨를 흔들어 주는 사람이 없었다. 


 수능 이후 영어로 된 글을 읽을 일이 없던 사람이 아이를 키우며 영어 이야기책을 함께 읽기 시작했다. 아이가 읽는 모든 책을 같이 읽지는 못했지만 손을 놓지 않았다. 그냥 책만 읽었을 뿐인데 영어 실력이 늘고 있는 아이를 보니 나라고 왜 안 될까 싶었기 때문이다. 직장생활과 집안일로 아이가 10권 읽을 동안 겨우 1권을 읽고, 20권을 읽을 동안 또 겨우 1권을 읽는 식이긴 했지만 나의 리딩 실력은 확실히 향상되고 있었다. 어렸을 때 이런 식으로 공부하지 않았던 것이 원통할 만큼. 


 학창 시절 독해 문제집을 풀 때는 긴 문장을 만나면 한 문장 안에서 눈이 앞으로 갔다 뒤로 갔다 해야만 의미 파악이 되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눈이 한 방향으로만 흘러가도 스토리를 따라가는 것에 무리가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어머, 나 이제 영어 좀 잘하는 거 아냐?' 하는 두근거림이 시작되었고, 초등학생들이 읽는 영어책 좀 읽었다고 그러는 거 아니라며 내 어깨를 흔들어줄 사람이 없으니 나의 두근거림은 점점 더 커져갔다.


| 쏼라쏼라를 향한 욕망의 시작 |

 그 두근거림은 제법 두꺼운 원서 한 권을 손에 든 채 '훗, 내 실력이 이만큼 늘었지'하고 뿌듯해하는 일에 머물 수도 있었다. 그런데 분위기 파악 못하는 욕망 주머니가 말풍선 하나를 띄우는 게 아닌가.

 "무슨 소리야? 영어라면 자고로 쏼라쏼라하는 모습이 멋진 거지!"


 좋은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욕망 주머니에게 면박을 주기 위한 말을 골라봤다. '리딩 실력 향상된 것만으로도 감지덕지거든!', '쏼라쏼라가 하루 이틀 한다고 되는 줄 아냐?', '내가 무슨 외국 바이어 만나는 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중 뭘로 할까. 그냥 아무 말 없이 한 대 때릴까. 하지만 나는 폭력을 쓰는 사람이 아니다. 내면의 욕망을 한 대 때릴 수 있는 방법을 모른다는 것도 문제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내 욕망 주머니가 하는 말에 슬그머니 동의를 해버렸다. 맞다. 영어라면 자고로 쏼라쏼라하는 모습이 멋지지.

 

| "음..." 많이 말하기 대회인가  |

 다시, 아이의 방법을 따라 하기로 했다. 학원이나 해외 경험 없이 쏼라쏼라를 목전에 두고 있는 아이는 읽은 책의 내용을 영어로 말하는 연습을 하며 스피킹 실력을 쌓았다. 엄마인 내가 그렇게 하라고 시켰고, 그래서 아이의 스피킹 실력이 느는 것을 바로 옆에서 봤으면서 왜 나에게는 그 방법을 적용할 생각을 안 했을까. 


 "음...... 음....... 디스 스토리 고즈......... 음..." 

 내가 처음으로 녹음한 파일은 차마 다시듣기를 할 수 없었다. 이 세상 그 누구도 접근할 수 없는 곳에 갖다 버리고 싶은 파일이었다. 몇 분 되지 않는 파일에 '음...'이 그렇게나 큰 비중을 차지할 일인가. 누가 들으면 '음...'을 많이 하면 이기는 게임을 녹음했다고 생각할 것이 분명했다.


 아이와 함께 영어책을 읽어온 몇 년의 시간이 쌓여 리딩 실력이 향상되었다면 스피킹도 시간을 쌓아야 한다. 문제는 책 읽기는 재미있지만 스피킹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이다. 스토리의 힘 덕분에 책 읽기로는 시간을 꽤 쌓을 수 있지만 스피킹은 사정이 다르다. 아무리 봐도 하루 5분 이상 연습이 힘들어 보였다. 뭔가 대책이 필요했다. 


| 78100원의 무게에 기대어 |

 리딩이 스토리의 힘 덕분이었다면 스피킹은 시험의 힘을 빌려보기로 했다. 목표가 있으면 하루 5분보다는 조금 더 시간을 쓰지 않을까 싶었다. 얼핏 듣기로 오픽 시험이라는 것이 있는데 스피킹 시험이라고 했다. 오픽 시험을 목표로 연습해보면 되겠구나 싶었다.


 그렇게 마음먹은 지 석 달이 지나 오늘이 되었다. 마음만 먹는 걸로는 부족하다는 사실을 깨닫는 하루하루가 쌓여 석 달이 지나버린 것이다. 이러다 석 달이 열 달 되고, 열 달이 십 년 되겠다 싶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일단 시험 접수부터 하기로 했다. 비록 내가 오픽 시험에 대해 아는 거라곤 거의 매일 시험이 있어서 언제든 신청할 수 있다는 사실과 시험 접수비가 78100원이라는 것, 이 두 가지뿐이지만.


 78100원이면 돼지고기 찌개용 만원 어치를 산 뒤 반찬 가게에 들러 삼천 원짜리 마른반찬 두 개와 사천 원짜리 나물 반찬 한 개를 사고 과일 가게에 들러 이만 원짜리 복숭아 한 박스를 사도 무려 38100원이 남는 돈이다. 이렇게나 큰 금액을 투자했으니 5분 이상은 연습하겠지. 


 일단 오픽이 어떻게 진행되는 시험인지부터 알아봐야 하지 않을까. 그거 알아보겠다고 노트북 앞에 앉았다가 브런치 글을 쓰고 있는 내가 어이없긴 하지만 나의 욕망 주머니는 다시 한번 분위기 파악을 못하고 이런 말풍선을 띄운다.

 "24일간의 오픽 시험 준비 & 도전기를 브런치에 글로 남겨봐도 좋겠네! 어머, 글감으로 딱이다!"

 



시험 접수! D-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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