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방을 사기 전, 내가 가방에 담아야 할 것들을 먼저 생각이나 해 보았을까.
옷을 사기 전, 옷을 입고 따뜻하게 된 내 체온을 먼저 생각이나 해 보았을까.
운동화를 사기 전, 내가 신을 신고 걸어갈 길을 먼저 생각이나 해 보았을까.
소유가 아닌 쓰임의 길을 물건들에게 주고 싶다.
한국에 와서 나에게 왜 화장을 하지 않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
한국에서는 이러이러한 가전제품들은 구비해 놓아야 한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한국 살면 옷을 제대로 좀 입고 다녀야 한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이런 것들이 불편하다. 물건은 나를 대변하는 것들이 아니다. 그저 내가 필요해서 사용하는 것들일 뿐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남보기에' 신경을 쓴 나머지 그 물건들이 나의 삶을 대변해 주기라도 하는 듯한 착각을 하고 있다.
루이뷔통 백은 하나쯤 들고 다녀야 하고, 옷도 브랜드 로고가 새겨진 옷 입기를 좋아하고, 운동화마저도 명품을 추구하는 풍경이 내겐 불편하다.
호주에서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화장을 하고 다니는 사람이 흔치 않았는데, 한국에서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대부분 화장을 하고 다닌다. 그래서 나처럼 특별한 경우가 아닌데 화장을 안 하고 다니는 사람은 자신을 돌볼 줄 모르고 부지런하지 않으며, 뭔가 부족한 사람으로 여겨지는 것 같다.
같은 아파트 사는 동네 아줌마가 나보고 화장 좀 하고 다니라고 한다.
"젊은 사람이 화장도 안 하고 그래. 그거 부지런하지 못해 그런 거라고 사람들이 오해해."
난 화장으로 내 얼굴을 돌보지 않는다. 그런 부지런함은 사실 없다. 그저 세수를 깨끗이 하고 수분을 채우기 위해 로션을 바르고 햇빛으로부터 피부를 보호하기 위해 선크림을 바르는 것이 마지막 단계다. 내 피부에 색을 입히고 미술을 하는 특별한 재능은 타고나지 않아 얼굴 위에 아트를 할 줄 모른다. 물론 화장을 하면 정말 다들 예뻐 보인다. 하지만 난 내가 실상보다 예뻐 보여야 하는 구실을 찾지 못하고 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나 자신의 모습에 더 가깝다고 생각했기에 때문에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화장은 생략한다. 그리고 그런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해 줄 사람들이 내 친구가 되었음 했기에 화장한 나의 얼굴을 필요로 하는 사람을 친구로 가까이 두지는 않았다.
물론 화장 자체가 나쁜 건 아니지만 유튜브에 나오는 화장으로 변신하는 모습을 누가 보여주었을 때 느낀 거부감은 화장을 하고 싶지 않게 만들었다.
그래도 자신의 아름다움을 적절하게 살리며 화장을 잘하는 사람들의 재능과 기술은 대단하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누구나 그런 재능을 갖는 것은 아니라, 나는 그런 재능에서 제외된 사람이었다.
내가 바지에 간단한 티셔츠를 입고 누군가를 만나면 '옷 좀 제대로 갖춰 입고 나오지 그랬냐'는 핀잔을 들을 때도 있었다. 호주에서는 이런 차림이 무척이나 당연한 일인데, 공식적인 자리도 아니고 캐주얼하게 누군가를 만나는데 굳이 옷을 제대로 갖춰 입고 나오길 바라고 있었다. 그들이 나에게 옷 핀잔을 주면 나는 그들이 나를 만나러 온 것인지, 내 옷을 만나러 나온 것인지 궁금해지곤 한다.
옷이 물론 개성의 표현이기도 하고, 격식에 맞는 옷은 예의이기도 하다. 자신을 더욱 돋보이게 센스 입게 옷을 입은 사람들을 볼 때면 그들의 패션 감각에 놀라기도 한다. 하지만 가볍게 만나는 자리에서조차 격식과 예의를 갖춘 옷을 원하는 사람들이 부담스럽게 느껴질 때가 있다. 편한 자리에서 편하게 입지 못하고, 편한 자리에서 조차 내 몸을 불편하게 하는 옷을 입길 바라는 사람들로 내 마음은 불편해졌다.
나는 내 몸을 값비싼 옷으로 두르고 싶지 않다.
내 몸을 불편하게 하는 각진 옷으로 두르고 싶지 않다.
나는 그저 나를 편하게 해 줄 옷이 필요할 뿐이다.
내가 화장을 하지 않는 것도, 편한 옷을 찾아 입는 것도 그것이 내 모습이기 때문이다.
내가 아닌 무언가로 나를 두르고 싶지 않다.
나를 '나'로 두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