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 하고 뿜는 입김의 수증기가 담배 연기처럼 멀리 퍼질 정도로 건조하고 추운 날이었다. 외부에서 취재를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급하게 문서를 프린트해야 할 일이 생겼다.
‘잘됐다. 몸도 녹일 겸..’ 근처 PC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이른 오후의 PC방. 안에는 사람들로 꽤 붐볐다. 나는 한쪽 구석에서 언 손을 비비며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런데 문서를 여는 순간, 건너편 라인에서 하이톤의 목소리들이 내 고막을 찔러댔다. 상당히 귀에 거슬렸다. 큰 소리의 괴성이 난무했는데, 절반은 욕설이었다.
‘뭐야.. 뭐 하는 거야?’
기자 특유의 두 다리가 소리가 나는 곳으로 나를 이끌었다.
그곳에는 초등학교 4, 5학년 정도 되는 친구들이 모여 있었다. 유독 한 친구의 컴퓨터 앞에 아이들은 옹기종기 모여 섰다. 그런데 말하는 꼬락서니가 기가 막혔다. 화면을 향해 내뿜는 욕의 종류와 수위의 포스가 성인을 능가하고도 남았다. 과격하고, 상스럽고, 성적인 욕설이 마구 뒤섞여 그 어린 입술에서 튀어나오고 있었다. 기가 막혔다. 화면을 가만 들여다보니, 어떤 청바지를 입은 흑인이 몽둥이를 들고 있었다. 이 어린 친구는 화면 속 흑인을 조종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흑인은 길거리를 돌아다니며 무작정 사람을 때리는 것이 아닌가.. 차도 부수고, 경찰도 때린다. 쓰러진 사람을 마구 발로 밟기도 한다. 때리고 부수고 죽일수록 많은 돈이 적립이 됐다.
당시 GTA 게임의 한 장면
‘이게 뭔가..?’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여기저기 취재 현장에 치여 게임이라곤 좀체 접할 기회가 없었던 나에게 상당한 충격이었다. 나는 서둘러 문서를 출력하고 더러운 기분으로 PC방을 나왔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초등학생이 몰입해 있던 게임은 미국에서 들어온 GTA라는 게임이었다. 미국에서도 청소년들에게 사용이 금지된, 초등학생들이 하면 안 되는 게임이었다.
그리고 며칠 뒤..
회사 보도국 사무실에서 일을 하고 있었는데, 우리 팀 작가가 나에게 다가왔다. 그리고는 프린트된 A4 종이 몇 장을 나에게 건넸다. 그런데 종이들을 건네는 그녀의 손이 심하게 떨고 있었다. “왜 그래요?”라고 물으며 종이를 보는 순간, 그분이 왜 그렇게 진정을 하지 못했는지 바로 알 수 있었다. 굉장히 거북스러운 워딩들이 종이를 도배하고 있었다. 그냥 ‘씨발’ 같은 욕설은 아주 애교 수준이었다. 지역과 물고기가 등장하고 엄마와 친구들 신체부위들이 등장하는 상상을 초월하는 과격한 채팅 대화였다. 요샛말로 '패드립'이 난무했다. 악플러 사이에서도 피한다는 패드립. 즉 '패륜적 드립'이다. 패륜아로 위장해 장난을 치는 행위를 말한다. 어느 초등학교 4학년 엄마의 제보였다. 아들이 친구들과 폭력 게임을 하면서 나눈 대화라며 캡처해 제보를 한 것이다. 또 한 번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점점 화가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
이게 도대체 무슨 현상인가? 분명 무언가 잘못됐다. 컴퓨터에 앉아 폭풍 검색을 시작했다. 게임, 폭력, 청소년 등 몇 가지 워딩들을 검색창에 날리자 기사들이 좌르르 뜨기 시작했다. 그런데 몇 개의 사건들이 내 눈에 확 들어왔다. 중학생 아들이 게임을 못하게 하는 엄마를 흉기로 찔러 숨지게 한 사건이었다. 어떤 젊은이는 게임 도중 뛰쳐나가 길 가던 행인을 살해한 사건도 있었다. 모두 피의자 경찰 조사에서 나온 진술을 토대로 한 경찰 발 기사였다. 한 달 사이 비슷한 살인 사건이 3건이나 발생했다. 이때부터 내 눈은 뒤집히고 말았다. 마음속에 이미 결론이 난 것이다. 기사의 방향성은 이미 정해졌다. 다만 이 현상을 어떻게 하면 대중들에게 보다 충격적으로 전달하느냐가 관건이었다.
나는 전문가 섭외에 들어갔다. 아무리 기자 혼자 떠들어 봤자 전문성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서울대학교의 한 선생님이 나와 같은 공감대를 갖고 있었다. 찾아가 자문을 구했다. 그리고 나는 그 선생님 앞에서 이렇게 외쳤다.
“교수님 방송을 아시네요!”
흥분됐다. 굉장히 흥미로운 제안이었다. 그것은 바로 폭력게임을 하는 학생들의 컴퓨터 전원을 순간적으로 꺼보는 것이었다. 머릿속에서 상황이 그려졌다. 시청률까지 고려한다면 방송용으로 이보다 좋은 임팩트는 없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실험은 이론적으로 설명이 가능하도록 환경을 통제한 후에 해야 했다. 교수님도 그 점을 우려했다. 하지만 나는 크게 개의치 않았다. 우선 현상을 보여주고, 심리 분석을 기사 뒷부분에서 받쳐주면 된다고 생각했다. 전형적인 기사 구성 위주로만 생각한 것이다. 오판이었고, 오만이었다.
그리고 나는 PC방 전원 차단 실험을 하기에 앞서 초등학교 5학년 아이들 10명을 섭외해 서울대로 직접 데리고가 교수팀과 함께 서브 실험을 진행했다. 아이들에게 30분가량 폭력 게임을 하도록 한 뒤 조교가 아이들의 심리 테스트를 했다. 폭력 게임에 노출된 아이들의 평상시와 다른 심리 변화를 분석한 것이다. 유의미한 테스트 결과도 도출됐다. 교수님 인터뷰와 함께 이 실험이 뒷받침됐으니 ‘이제 됐다’라고 생각했다. 폭력 게임은 아이들의 폭력성에 영향을 미친다는 결론을 도출하는데 문제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게임 중 전원이 차단되는 상황과 함께 일반적인 다른 상황에서의 전원이 차단됐을 때 모습을 비교해 줄만도 했지만 방송 시간의 제약이라는 이유로 나는 고려하지 않았다.
그러나 내가 미처 몰랐던 더 큰 실수가 있었다. 아이들이 해서는 안 되는 성인용 폭력 게임을 실험한다며 아이들에게 노출시킨 것이다. 나는 마치 경주마처럼 앞만 본 것이다. 좌우를 살펴보지도, 돌아보지도 않았다. 오로지 내 목적만 생각했다. 어리석었다.
실험은 지인인 형이 운영하는 경기도의 한 PC방에서 이뤄졌다. 우리는 곳곳에 관찰 카메라를 설치했다.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학생 6,7명이 두 줄로 나눠 앉아 게임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 학생들이 앉아 있는 컴퓨터들의 전원을 끄기로 결심했다, 나는 PC방 전체의 전원을 끄진 않았다.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열중해 있던 게임은 전투를 치르는 슈팅게임과 또 다른 게임이었는데 생각이 잘 나질 않는다. 앞서 초등학생들이 하던 GTA와 같은 과도한 폭력게임은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밀어붙였다. 폭력게임이 미치는 영향을 알아보겠다며 한 실험이었지만, 과도한 폭력게임이 아닌 전제로 실험이 진행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실험 결과는 게임이 학생들에게 미치는 영향으로 범주가 확대되고 말았다. 결국 실험의 무리한 전제로 사람들의 분노를 유발하게 한 불씨가 되고 말았다.
당시 PC방 전원 차단기. 이 스위치를 내리는 순간 두 개 라인의 컴퓨터들이 꺼졌다
역시 예상대로 학생들은 게임 도중 갑자기 컴퓨터 전원이 꺼지자 흥분했고, 화를 냈다. 나는 그 모습을 카메라에 고스란히 담았다. 그리곤 학생들에게 다가가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항의하는 학생들에게 미안하다 사과하며 추가 시간을 더 넣어줬다.
나는 그것으로 도리를 다했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어리석은 합리화였다. 그 학생들은 나에게 강제적으로 게임을 중단당했다. 피해를 입은 것이다. 그러나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뭐 그럴 수 있지. 형이 미안해’ 하며 적당히 넘어갔던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더 큰 공익을 위해서 중요한 일을 하고 있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너희들의 작은 희생 따위는 괜찮아’라는 기자의 오만방자함이 내 마음속 기저에 깔려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