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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충환 Nov 01. 2020

01. 사람들은 나를 ‘범죄자’ 라 불렀다.

feat. 악플러s

 나는 15년 차 공중파 기자다.


 사명감으로 현장을 누볐고, 약자의 시선에서 세상을 바라보려 노력 해왔다. 여러 가지 기자상도 받아봤다. 나름 좋은 기사를 써왔다는 알량한 자부심도 가지고 있다. 나는 사람을 죽이거나 폭행을 가하지도, 물건을 훔치거나 누군가를 속여 이득을 취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은 나를 '범죄자'라 불렀다. 온라인 댓글 창에서 나는 ‘기레기’이자 ‘정신병자’이며 ‘범죄자’였다.


 나는 9년 전, PC방의 전원을 껐다.


 어느 날 동네 PC방에서 폭력 게임을 하던 초등학생들의 입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욕설이 쏟아져 나오는 광경을 목격하고는 결심했다. 폭력 게임이 청소년에게 미치는 나쁜 영향을 세상에 증명해 보이고 싶었다. 그리고는 PC방에서 게임을 하던 학생들의 컴퓨터 전원을 껐다.


 범죄가 성립이 되려면 '피해자'가 있어야 한다. 댓글 창에서 사람들이 나를 범죄자로 칭한 이유의 공통점은 피해자의 존재였다. PC방에서 게임을 하던 중 갑자기 강제로 전원을 차단당한 피해 학생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뉴스 화면에서는 명백한 가해자인 나, 기자가 등장한다. 그리고 학생들은 아무것도 모른 채 열심히 게임을 즐기던 컴퓨터의 전원이 강제로 차단당했다. 나는 가해자였고, 학생들은 피해자이다. 사람들이 말한 대로 소위 범죄 행위가 성립한다. 내가 만들어 낸 상황 자체가 폭력적이었다. 그렇게 강제로 폭력적인 상황을 만들어낸 나는 그들에게는 범죄자였다.


 그렇다. 나는 폭력성을 실험하기 위해, 누군가에게 폭력적인 행위를 한 것이다.


 언론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위해서 좀 더 강력한 무언가를 기사에 장착하려고 하는 습성이 있다. 그러기 위해서 동원되는 것이 사례와 통계, 그리고 때로는 실험을 통해 좀 더 메시지에 힘을 실으려 한다. 그렇게 해야만 신뢰도가 높아지고,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자극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궁극적인 목표인 법과 제도와 사회를 바꾸기 위함이다. 그래서 가끔은 대의와 공익에 부합한다고 생각하거나, 기자가 바라는 대로 사회가 올바른 방향으로 바뀔 수 있다고 믿으면 다소 무리한 시도를 하기도 한다. 몰래 촬영을 하거나, 불법 녹취를 하거나, 심지어 쓰레기통을 뒤지기도 한다.


 2011년의 내가 바로 그러했다. 아주 오만한 생각이었다. 기자 특유의 자만에서 나온 오판이었다. 어떤 현상이 문제가 있다고 믿는 그 순간부터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폭력 게임에 문제가 있다고 믿은 그 순간, 폭력 게임은 나쁜 것(폭력 게임 = 나쁜 것)이라는 등식이 성립됐고, 이것에 노출된 청소년은 나쁜 행동을 한다(폭력 게임하는 청소년 = 폭력적 청소년)는 공식이 만들어졌다. 나는 이 공식을 실험을 통해 증명하려 했다. 결국 결론을 정해놓고 실험을 한 것이다. 관찰을 통한 결과를 도출하려 하지 않고, ‘거봐!’라는 결과를 확인하려는 수단으로 실험을 이용했다.   




 물론 기사는 학문이 아니기 때문에 실험이 도구로써 이용될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자칫 실험이라는 프레임에 갇힌 채 기사 작성과 데스킹이 이뤄질 수 있다는 위험성이 크다. 이 때문에 당시에 탄생한 문제의 문장이 바로 “폭력 게임의 주인공처럼 난폭하게 변해버린 겁니다”라는 괴상한 리포트 문장이 탄생하고 말았다. 기사로써 온전치 않은, 상당히 감정적인 문장이다. 이 문장은 10년 가까이 온갖 매체와 프로그램, 온라인상에서 희화와 조롱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


 실험을 향한 사람들의 조롱은 시간이 지날수록 비난과 혐오로 발전했고, 혐오는 증오와 분노로 표출돼 나를 공격했다. 죽여 버리겠다는 협박에서부터 내가 세상에서 사라지길 바란다는 극도의 증오까지 나타났다.

 천 개가 넘는 메일을 받고, 수천 개의 댓글들을 하나하나 읽어 내려가면서 내 영혼은 누더기가 되어 갔다. 나를 더욱 힘들게 한 건 내가 더 이상 활동을 못할 때까지 계속 괴롭히겠다는 윽박을 하고, 내 부모의 숨통을 꺼보겠다는 상상을 초월한 악플을 서슴지 않고 다는 사람들.. 그리고 그 밑에 달린 수십 개의 ‘좋아요’였다.


 그들에게 나의 실험은 나와 내 가족을 죽이고 싶을 정도의 ‘미움’이었다.


 무엇이 그들을 그토록 증오와 분노로 가득 차게 만들었을까? 사람들은 왜 일면식도 없는 나에게 그렇게 공격적이고 격한 감정을 쏟아 냈을까? 피할 수만 있다면 피하고 싶었다. 나는 기자 이전에 사람이다. 도망치고 싶었고, 죽고 싶었다. 내가 그렇게 까지 잘못한 것일까? 모든 것을 외면하고 아무 일 없었단 듯이 수많은 기자들 속에 섞여 살아갈까? 그렇다면 조금 더 편해질 텐데.. 하루에도 수백 번씩 마음속에서 갈등이 일어났다.


 9년 뒤 유튜브를 시작한 나는 조금씩 그 답을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과정은 너무나 괴롭고 힘들었다. 강산이 변할 정도의 세월이 지났지만, 나에 대한 사람들의 미움의 크기는 더 커져있다는 사실만 확인할 수 있었다. 더욱이 미움은 진화를 했다. 단순 실험의 오류에 대한 지적에서 나아가 ‘너 때문에’라는 특정한 이유와 함께 조롱에서 증오로 발전했다.


 나는 얼굴을 드러내고 허리를 숙여 공식 사과를 했다.    

하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나를 욕했고, 더 심하게 공격을 가했다. 솔직히 사과를 안 하는 것이 나았을 정도로 댓글 창은 폭발했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실수를 외면하고, 잊어버리고 사는 것이 나 자신에게 더 큰 잘못을 저지르는 것이라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진정성만이 답이었다. 피해 가지 않고 진정성 있는 콘텐츠로 다가가는 것만이 기자로서 할 수 있는 진짜 사과의 방법이라 믿었다.


  나는 나의 이 부끄럽고, 아픈 이야기를 글로 옮기기로 했다.


 과도한 취재 욕심에 인생 사고를 친, 어느 기자의 후회와 반성, 성찰.. 그리고 상처와 극복에 관한 이야기이다. 아니, 솔직히 아직 극복하지 못했다. 어쩌면 끝내 극복하지 못해 평생 상처로 남을지도 모를 이야기일 수도 있다.  

 하지만 부끄럽고 아픈 나의 경험은 누군가에게는 예방 주사가 될 수 있고, 악플로 상처를 받았던 누군가에게는 치유의 이야기이자, 저널리즘을 고민하는 누군가에게는 함께 생각할 꺼리가 되지 않을까.. 그리고 익명과 비대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될 수 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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