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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충환 Nov 01. 2020

04. ‘MBC 기자는 개그맨 공채로 뽑나?’

 뉴스가 나가고 난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컴퓨터를 켰다. 인터넷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직감했다. 네이버와 다음 양대 포털 사이트의 메인 화면이 어제 내 뉴스와 관련된 기사로 도배되고 있었다. 정신이 아찔해졌다. 기사들은 무리한 실험에 대한 지적과 함께, 내 기사에 달린 비난의 댓글들을 친절하게 설명해주고 있었다. 그런데 제목 가운데, 유독 한 신문사의 것이 내 눈에 들어와 박혔다.


  <MBC 보도국 기자, 개그맨 공채로 뽑나?>


 대놓고 조롱하는 제목이었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 기사의 내용은 내 실험을 비난하는 네티즌들의 댓글 일색으로 채워졌다. 보통 어떤 현상을 기사화하기 위해선 사건의 전후 관계와 당사자를 취재하는 것이 기본 중의 기본이다. 하지만 해당 기사를 쓴 기자는 나를 전혀 취재하지 않았다. 더욱이 기사 제목은 정당한 비판이나 문제 제기가 아닌 심한 조롱이었다. 화가 났다.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나뿐만 아니라 내 동료들인 보도국 기자들의 명예까지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었다.

 '가만있으면 안 되겠다'

 나는 해당 언론사에 바로 전화를 걸었다. 사실 이와 같은 행동은 같은 업계 기자들이 좀처럼 하지 않는 섣부른 행동이다. 하지만 나는 화로 인해 좀처럼 흥분을 가라앉히질 못했다. 잠시 뒤 나는 기사를 쓴 기자와 통화를 할 수 있었다.


 “기사 잘 봤습니다. 그런데 왜 저를 취재하지 않았습니까? 저에게 전화라도 한통 했으면 제가 왜 그랬는지 자세한 얘기를 들을 수 있었을 텐데요”


 나는 흥분을 가라앉히고, 같은 저널리스트로서 취재의 아쉬움에 대해 먼저 토로했다. 상대 기자는 나를 선배님이라고 불렀다. 당사자 취재 없이 기사가 작성된 부분에 대해 본인도 인정을 했다. 내 마음속 화가 조금 누그러드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나는 문제의 제목에 대해 강하게 항의했다. 보도국 전체 기자들에 대한 명예 훼손의 여지가 다분해 민사 소송의 사안이니 제목을 바꾸던지, 기사를 내려줄 것을 요구했다. 그렇지 않으면 언론중재위에 제소를 검토하겠다고 윽박질렀다. 그 후배 기자는 같은 업계 종사자로서 충분히 내가 제기한 문제점을 공감했고, 나의 항의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는 회사와 상의 후 기사 제목을 변경했다.


 사실 그냥 제목 변경을 요구했으면 그걸로 충분했던 상황이었다. 하지만 나는 굳이 언론중재위까지 운운하면서 협박 아닌 협박을 했다. 왜 그랬을까? 그렇게라도 화를 표출해 답답함을 풀고 싶었던 것일까?


 나는 기자들이 제일 싫어하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걸 이용해 압박을 한 것이다. 전혀 그럴 필요 없었던 상황이었다. 아니, 그렇게 행동하면 안 됐다. 하지만 나는 굳이 그렇게 했다. '후회막심'이라는 말을 이럴 때 사용하나 보다. 이 역시 모든 상황을 컨트롤할 수 있다는 나의 오만에서 나온 잘못된 행동이었다.  


 결국, 그러한 나의 어리석은 행동은 엄청난 후폭풍이 되어 나를 덮쳤다.     


 포털에서 기사들은 계속 확대 재생산되고 있었다. 기사들로 인해 더 과격한 댓글들이 생겨났고, 댓글로 구성된 또 다른 수십 개의 기사들이 쓰나미처럼 계속 쏟아져 나왔다.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불가항력이었다. 그런데 그 수많은 기사들 중 단 한 곳의 언론사만이 나에게 연락을 취해 왔다. 단 한 명의 기자만 나를 직접 취재해 기사를 쓴 것이다. 그리고 어느 기자도 당사자인 나에게 전화를 하거나 메일을 보내 질문하지 않았다. 역시나 댓글 복. 붙.(복사해 붙이기) 기사들만 생산되고 있었다. 답답했다.




 그러던 와중에 또 하나의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개그 콘서트보다 웃긴 MBC 뉴스데스크>

(9년 전 기사라 기억이 온전치 않아 조사나 단어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


 '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 혼란스러웠다. 비판은 얼마든지 할 수 있다. 논란과 원인을 취재해서 잘못된 점에 대해 비판을 하면 된다. 그런데 꼭 이렇게 제목을 자극적으로 뽑아야만 했을까?

 나는 앞서 했던 성공사례(?)가 있기에 좀 더 자신 있게 해당 언론사에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는 앞선 신문사에게 한 방법과 똑같이 문제제기를 했다. 아니, 오히려 더 강한 어조로 항의를 했다. '너도 그렇게 해야 할 거야'라는 묘한 자신감과 오기가 작동했다. 앞서서 신문사 또한 제목을 바꾼 사실을 덧붙여 얘기해줬다. 해당 기자는 수궁을 하며 회사와 상의를 한 뒤 연락을 주기로 했다.

 그런데 몇 시간 뒤.. 같은 기자 이름으로 후속 기사가 떴다. 해당 기사에는 제목이 이렇게 달렸다.    


 <MBC 유충환 기자, OO(앞선 신문사)과 OOOO(해당 언론사) 상대로 “고소하겠다”>        


 아.. 몽둥이로 뒤통수를 아주 세게 얻어맞은 것 같았다. 두 다리가 후들거렸다. 무리한 기사 제목을 바꿔달라며 문제 제기한 것이, 비판한 언론사를 상대로 고소하겠다고 협박한 내가 돼 있었다.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리고 희롱 섞인 문제의 제목을 단 기사는 온 데 간데 사라졌다.


 '아.. 당했다..'


 하지만 더 이상 항의할 수 없었다. 이 기사에 대해 다시 항의를 하게 되면 고스란히 내가 말한 워딩들이 그쪽에 유리하게 편집돼 나를 향한 화살로 돌아올게 뻔했다. 스스로 먹잇감이 되는 것이다. 그때부터는 소위 ‘개싸움’이 된다. 나에게 득이 될게 하나 없었다. 억울했다. 분통했다. 그러나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나의 오만이 가져온 '인과응보'였다.


 해당 기사는 추후에 제목이 또 바뀌었다. <전원 차단 기자 “PC방 실험 무리한 부분 있다”>로 바뀌었는데, 소제목에 ‘고소 검토’라고 수위가 조절됐다.

 기사 말미에는 한 언론시민단체 대표의 인터뷰가 첨부됐다. 그런데  인터뷰 내용에 난데없이 '이명박 전 대통령'이 등장했다. "고소를 통해 견제하려는 것은 이명박 정부가 즐겨 취해온 방식과 비슷하다"라고 비판했다. 뜬금없이 나를 이명박 정부와 비교했다. 화가 나기 보단, 웃음이 먼저 터져 나왔다. 그리고 슬펐다. 이런 걸 웃프다고 해야 하나보다. 언론의 현실이었다. 대중적 비판의 대상에 정치적 프레임을 씌워 더 큰 비판 동력을 얻으려는 수작이었다.


 여러 가지 생각과 감정들이 내 머릿속과 온몸을 휘감았다. 나는 해당 기자가 미웠다. 그리고 나 자신은 더 미웠다. 기자들의 습성과 기사 메커니즘을 잘 알기에 더 그러했다. 기자들이 사용하는 나쁜 용어로 소위 아주 작정을 하고 '조진' 것이다. 나도 기자 이전에 사람이다. 원망과 답답함, 후회.. 복잡한 감정의 소용돌이가 마음속에서 일었다. 그런데 불현듯 이러한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혹시 과거의 내가 누군가에게 이렇게 취재와 기사화 과정에서 똑같이 한 적이 있었을까?’


 나로 인해, 나의 취재 행동과 기사가 억울하고 분통한 사람을 만든 적이 있었을까? 내 기사로 인해, 어디선가 눈물을 흘리는.. 나도 모르는 그런 피해자가 있지는 않았을까? 나를 돌아보게 됐다. 아찔했다. 기사가 이렇게 폭력적일 수 있구나.. 직접 겪고 나니 소름이 돋았다.

 결국 포털 검색창에는 ‘유충환 고소’가 고정 연관 검색어로 자리 잡게 되었다.


 사람들은 내가 언론사들을 고소했다고 믿어 버렸다.


 선배로부터 다급하게 전화가 왔다. ‘대응하지 말 것’ 앞으로 회사가 대응할 것이니 내가 긁어 부스럼 만들지 말라는 것이다. 일파만파 파장은 커져만 갔다. 당초에 내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소멸해 버렸다. 오직 PC방 전원 차단 실험만이 남았다.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한 무리한 실험으로 게임하는 이들을 폭력적인 사람으로 매도한 '어리석은 기자'만 존재했다. 전원 차단 장면만 끊임없이 회자됐다.


 ‘바둑을 두고 있는 노인들의 바둑판을 순간적으로 엎어봤습니다. 노인들은 마치 폭력게임의 주인공처럼 난폭하게 변해버렸습니다’ 누군가가 만화 삽화와 함께 이러한 패러디 상황극을 만들어 공유했다. 패러디는 커뮤니티 등에서 상당한 인기를 끌었고 다른 패러디들이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무한도전과 KBS 개그콘서트 등 TV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단골 소재로 활용됐다. 희화와 조롱의 연속이었다. 패러디들은 자가발전하며 확장됐다.


 순간적인 방해 행위가 개입됐을 때 나타나는 과격한 행동. 그것을 '폭력적'이라고 정의해버린


 '내 기사가 바로 코미디'였고, '나는 희극인'이었다.




1)  최근에 포털들이 이러한 부작용 때문에 인물명 연관 검색어 기능을 중단했다. 네이버는 2020년 3월부터 인물 연관 검색어로 인해 "확인되지 않은 루머나 인격권을 침해할 수 있는 키워드가 노출되는 경우가 발생했다"며 "해당 인물의 인격권을 존중하고 사생활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연관검색어를 전면 폐지한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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