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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충환 Nov 01. 2020

06.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기자

 모두가 나를 향해 손가락질했다.


 비난은 파도처럼 거세어져만 갔다. 내가 감당해야 할 고난이었다. 나의 메시지에 귀 기울이는 사람은 없었다. 괴롭지만 차가운 현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하지만 나만 극복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악플러들은 나로서만 만족하지 않았다. 칼끝은 인터뷰한 교수에게도 향했다.


 “자신을 방해하는 방해물이 나타난다든지 이런 경우에는 과다한 공격이 일어나면서 그 충동을 억제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전원 차단 실험 다음에 붙인 인터뷰 내용이다. 이 인터뷰로 인해 그분은 나와 세트로 싸잡아 공격을 받았다. 방송뉴스는 시간적 제약 때문에 대게 인터뷰를 15초 내외로 가장 핵심만 짧게 편집해 집어넣는다. 때문에 인터뷰이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온전히 담아내지 못하는 한계도 있다. 인터뷰는 해석을 실험 뒤에 붙여 줌으로써 실험에 대한 신뢰도를 높이기 위함이었다. 물론 그 교수가 실험을 제안한 당사자이기에 더더욱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의도치 않은 상황이 전개됐던 것이다. 도움을 준 분이 악플에 시달렸을 것을 생각하니, 나는 항상 당신에게 미안한 마음으로 면구스러워했다.


 그런데 사건 이후 어느 날 어느 신문기사를 읽고 큰 충격을 받고 말았다.

 다음은 해당 기사의 일부 발췌문이다.   



2014년 6월 2일 OO일보 기사 중

곽 교수는 언론 코멘트 때문에 악플에 시달리기도 했다. 대표적인 사건이 2011년 2월 게임의 폭력성을 다룬 지상파 뉴스다. 당시 방송사 기자는 한 PC방의 전원을 갑자기 차단했다. 한창 게임에 몰입해 있던 청소년들은 PC가 꺼지자 폭력적인 반응을 보였다. 곽 교수는 방송에서 “자신을 방해하는 방해물이 나타난다든지, 이런 경우에는 과다한 공격성이 일어나면서 그 충동을 억제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라고 코멘트를 했다.


신문 기자 : 억지 실험에 뻔한 소리를 했다고 욕을 많이 먹은 것 알고 계신가요.


교수 : “게임 중독 문제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할 거면 실험실에서 제대로 된 실험을 해야 한다고 기자에게 말했어요. 실험실에서 같이 실험도 했는데 그 내용은 쏙 빠지고 코멘트만 들어갔어요. 욕하는 e메일도 많이 왔는데, 심리학 이론을 바탕으로 다 설명해줬어요. 나중에 KBS 개그콘서트에서 PC방 실험을 패러디하자 동료 교수가 걱정돼서 찾아왔어요. 내가 딱 한마디 했죠. ‘나 흉내 낸 여자 예뻐요?’ 그랬더니 그 교수가 걱정 안 해도 되겠다며 돌아갔어요.”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인가..' 기사를 읽어 내려가면서 나는 잠시 멍해졌다. 정리하자면, 내가 억지 실험을 한 뒤 뻔한 인터뷰 내용을 편집해 넣고, 실험실에서 같이 실험한 것은 기사에 녹이지 않고 멘트만 따간 질 나쁜 기자가 돼 있었다. 충격과 배신감은 둘째치고 놀라웠다. 방송에 나온 조교는 누구고, 10명의 아이들과 찾아간 실험실은 누구의 실험실이었던 것인가..


 '착각을  걸까?' '설마 방송도 안 보고 그렇게 말씀하신 건가?' '비난이 일자 피하기 위해서 일부러 그런 걸까?' 왜 그러신 거냐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용기가 나지 않았다. 서로에게 상처가 될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인터뷰에서 그분은 '중독'을 언급했는데, 내 기사는 폭력게임의 위험성에 대한 내용이었다. 게임중독이라는 단어는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해당 교수는 인터뷰에 이렇게 덧붙였다.



신문 기자 : 기자들에게 섭섭하지 않나요.


교수 : “동료 교수가 ‘왜 이렇게 뻔한 말을 했느냐’며 방송 뉴스를 보여줬어요. 기자와 길게 통화를 했는데 중요한 부분은 자신이 취재한 것처럼 자기 말로 다 하고 내 부분은 뻔한 바보 같은 말만 나갔어요. 기자에게 설명했고 기자는 골라서 썼고, 틀린 말이 나간 게 아니니까 그러려니 해요. 실컷 기자에게 설명했는데 신문에 안 나갔다고, 때론 말한 것과 다르게 나갔다고 불평하는 교수도 있어요. 쉽게 잘 설명해주면 될 텐데….”



여러 악플 가운데 하나


 어느새인가 나는 한 교수를 피해자로 만들어 버린 '파렴치한 기자'가 되어 있었다.  


 억울했다. 답답했다.

 그렇지 않다고 간절히 호소하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모두가 등을 돌렸다. 상황이 안 좋아지자 나를 피했다. 점점 고립되어가는 느낌이었다. 나는 그분의 말들이 다른사람이 한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믿기지가 않았다. 아니, 어쩌면 더 이상 상처 받고 싶지 않아 믿지 않았다는 말이 더 맞겠다.  




 “카뮈의 소설 '이방인'에 주인공 '뫼르소'가 '태양이 강렬해서'라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살인을 하죠.

그런데 폭력게임 때문에 소설이 아니라 현실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당시 내 기사를 소개하는 최일구 선배의 앵커 멘트다. 최선배는 MBC 스타 기자였다. 최선배는 내 기사를 그 시기 발생한 살인 사건들에 초점을 맞춰 그 심각성을 소설과 연관 지어 고급지게 소개했다. 과거 쓰레기 만두 멘트부터 수많은 어록을 배출한 최선배다웠다.   


 전원 차단 사건 다음 해인 2012년 MBC는 총파업에 들어갔다. 최일구 선배는 총파업에 참여했다가 안타깝게도 여러 가지 이유로 결국 회사를 떠났다. 어찌 됐던 존경하고 좋아했던 최선배와의 이별이 나에게는 아쉬움과 허전함으로 다가왔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나를 당황케 하는 또 다른 반전이 일어나고 말았다.  


출처 : 'SNL 코리아' TVN


 퇴사 이후 최선배는 케이블 채널인 'TVN'으로 스카우트됐다. 그리고 그는 첫 프로그램으로  SNL(Saturday Night Live)의 진행을 맡게 됐다. 보도 출신 기자가 일종의 예능 프로그램 진행을 하게 되니 신기하면서도 흥미로웠다. 그런데 프로그램을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나는 충격적인 모습을 목격하게 됐다.

 

 PC방을 찾아간 최선배. 폭력성을 실험한다며 전원을 껐다. SNL 한 코너의 패러디였다.

 '아.. 본인이 앵커멘트를 한 후배의 기사인데..'

 슬펐다. 직접 연기를 하는 본인의 심정은 어땠을까.. SNL 이란 프로그램의 특성상 사회 풍자와 비판이 많다. 스카우트된 만큼 해당 프로그램 연출진의 강한 요구도 있었으리라. 그들은 PC방 전원 차단 뉴스의 앵커가 직접 패러디 연기를 하는 것이 시청자들에게 웃음과 재미를 줄 수 있다고 생각했나 보다. 잔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웃을 수도, 울 수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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