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컨과 선풍기 그리고 바람
사무실 안은 열기가 가득했다. 중요한 프로젝트 마감일이 다가오면서, 긴장감이 감돌고, 사무실의 온도는 갈수록 오르고 있었다. 열이 많은 태현과 늘 추워하는 하나는 함께 있기엔 온도차가 달랐다. 그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더위를 견디고 있었다.
서서히 태현의 얼굴에 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너무 덥지 않아요? 에어컨 온도 좀 내려도 괜찮죠?" 태현이 안경테 옆으로 흐르는 땀을 닦아내며 물었다. 막바지 작업을 같이 진행 중인 하나는 고개를 들어 끄덕였다. '추워서 머리 아픈데, 어쩔 수 없지... 빨리 끝내고 집에나 갔으면 좋겠다.' 하나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키보드를 재빠르게 눌렀다.
그녀의 자리는 사무실 중앙, 에어컨 바로 아래였다. 추운 게 싫은 하나는 반팔에 두툼한 집업후드를 걸친 채, 몸을 동그랗게 말고 있었다. 사무실은 냉방병이 걸리기 쉬운 환경이었다. 겨울에도 발목 양말을 꼭 챙겨 신고 다니는 그녀는 늘 완전 무장을 하고 시간 보냈다.
태현은 벽에 붙어 있는 구석 자리에서 다시 작업을 시작했다. 데이터를 분석하는 그의 책상 옆에는 수많은 파일들이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었다. 그는 온도에 민감했고, 쾌적한 환경이 작업효율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믿었다.
에어컨을 틀었는데 셔츠가 몸에 계속 달라붙는 느낌에, 태현은 위를 올려다보았다. "에어컨이 안 되는 거 같은데요?" 하나는 한숨을 쉬며 답했다. "또 고장 났나 봐요. 저번에 기사님이 다녀가셨는데."
태현은 에어컨 버튼을 마구잡이로 다시 눌렀다. 순간 사무실의 모든 전기가 나가버렸다.
"뭐야? 저장 다 안 했는데 아..." 하나는 절망적인 목소리로 외쳤다. 컴퓨터 화면이 검게 변하고, 둘 다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이거 에어컨 때문인 거 아니에요? 저번에도 기사님이 온도 너무 낮추면 오래된 거라 갑자기 전기 나갈 수 있다고 했는데."
태현은 당황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니 더운데 그럼 어떻게 합니까..."
"적당히 틀어야죠. 전 추워 죽겠어요." 하나는 퉁명스럽게 말했다.
조용해진 사무실에서 하나가 다시 입을 열었다. "창고에 예전에 제가 쓰던 선풍기 있어요. 그거 가져다 줄게요." 태현은 고마움을 느끼며 대답했다. "감사합니다."
얼마 후, 다시 돌아온 전기로 자동으로 백업해 둔 자료를 확인할 수 있었다. "자료는 찾았어요. 한번 확인해 보세요." 태현이 말했다.
작업을 마무리하고 두 사람은 사무실을 나섰다. 문 밖으로 나오자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뭐지 선선하네." 태현이 신기해하면 말했다. "그러게요. 날씨가 갑자기 시원해졌네요. 사무실은 왜 그렇게 더웠던 거지?" 하나는 웃음을 지으면 대답했다.
"벌써 가을이 와버렸네" 태현이 허리를 펴며 감탄했다.
"바람 좋다." 하나는 깊게 숨을 들이켰다.
둘은 꼭 닫아두었던 창문을 이제는 활짝 열어 둬야겠다 생각하며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