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안
가장 추운 날,
마음이 얼어붙어 모든 것이 멈춰버린 날.
더 이상 자신을 느낄 수 없었다.
어떤 거짓도 심각하게 만들지 않던 너는
올이 다 풀린 스웨터처럼,
언제라도 금방 식어버릴 것만 같았다.
어설픈 배신을 곁에 두고
지내는 날들은 시리다.
얇은 체념을 겹겹이 두르다 못해
찢어 끝내고 싶다는 생각을 몇 번이고 했다.
그런 나를 보고 너는 미소 지었지.
전시회에서 너와 함께 본 그림을 생각했다.
새하얀 눈 밭 위에 누워, 평온한 미소를 지으며 죽어가는 여자가 있었다.
아무런 고통도 느끼지 않는 듯한 얼굴이었다.
여자는 빛 속에 있었고,
뒤편엔 늑대 세 마리가 지켜보고 있었다.
그 늑대들의 입가엔
여자의 끊어지는 숨이
매달려 달려있었지.
너는 내게 무엇이었는지 알 수 없어.
눈이었는지,
늑대였는지,
아니면 끊어질 숨이었을까?
거짓말을 싫어하지만
네가 하면 못 들은 체했고,
추위를 싫어하지만
얼어붙어도 상관없다고 여겼다.
배신도 너라면
그럴 수밖에 없다고 선을 지웠지.
가장 추운 날은
내가 더 이상 아니게 됐는데,
너도 사라져 버린 날이야.
그 여자가 왜 웃었는지 알겠더라.
버리는 건
얼마나 평안한 일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