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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드산 Sep 02. 2021

다시 성냥을 켜고 싶다

지역마다 별의별 박물관이 다 있다. 설마 이런 박물관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다양하다. 인천에는 배다리 성냥 마을박물관이 있다. 성냥 마을박물관? 설마하니 성냥을 모아놓은 박물관이 있을지 누가 생각했을까. 그리 멀지 않은 예전에 성냥은 우리의 생필품이었다. 그랬던 성냥이 세월에 밀려 이제는 박물관 신세를 지고 있다.

요즘은 간편한 라이터가 있어 성냥 쓰는 사람을 볼 수 없다. 성냥을 쓰는 사람이 없으니까 성냥을 파는 곳도 볼 수 없다. 그나저나 요즘 어린 친구들은 성냥을 알고 있을까? 생일 케이크를 사면 함께 들어 있는 큼지막한 성냥이 있어 알기는 하겠지만, 요즘은 생일 케이크 촛불도 라이터로 켜고 있어 장담할 수 없다.


인터넷에서 배다리 성냥 마을박물관을 찾은 순간, 눈이 번쩍 뜨였다. 오랫동안 성냥을 사용했던 세대이니 왜 안 그렇겠는가. 졸업하고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중고등학교 동창생을 만나는 것 같은 반가움과 설렘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성냥을 사용했던 날들만큼 성냥에 대한 기억과 추억은 셀 수 없이 많다.

어렸을 때는 어느 집에나 팔각형이나 사각형의 통 성냥이 부엌과 안방에 꼭 있었다. 어렸을 때는 불그스레한 색상의 사각형 통 성냥이 대부분이었다. 뚜껑의 절반이 접혔다 펼쳤다 하게 되어 있었다. 그 뒤로 푸른색의 팔각형 성냥이 나왔다. 유엔 성냥이라고 해서 영문 UN이 크게 새겨져 있었고, 팔각형의 뚜껑을 여닫았다. 원형도 있었지만, 팔각형 성냥이 더 많이 기억난다. 그런데 국제연합을 뜻하는 영문을 넣고 유엔 성냥이라고 이름을 붙인 게 지금도 궁금하다. 아무튼 뒤에 나온 팔각성냥이 사각 성냥보다 포장 재질이나 디자인이 한결 더 세련됐었다.


안방에 있는 성냥은 아버지가 담배를 피우시거나, 갑자기 전기가 나가 촛불을 켜야 할 때 사용했다. 부엌에 있는 성냥은 이런저런 쓰임새가 많았지만, 풍로에 불붙이는 데 가장 많이 사용했다. 어렸을 때는 성냥불 켜는 게 재미있었다. 그렇지만 부모님은 함부로 성냥을 만지지 못 하게 했고, 성냥 가지고 장난치는 것은 더더욱 못 하게 했다. 그때는 성냥을 가지고 불장난하다 불을 내는 경우가 많아 어른들이 단단히 단속했다. 그러니 아버지가 담배를 꺼내 무시면 형제들이 서로 불을 붙이겠다고 다투었다. 아버지의 선택을 받아 성냥개비를 그을 때는 그것처럼 재밌는 게 없었다.

 


어른들이 하지 말란다고 아이들이 다 안 하지 않는다. 오히려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어지는 게 아이들 마음이다. 성냥을 가지고 하는 장난 중의 최고는 통 성냥에 그대로 불을 붙이는 것이다. 그때는 성냥이 생필품이라 요즘 화장지처럼 여러 개를 사다가 집에 놓아두고 썼다. 어머니가 몰래 감추지만, 그래도 용케 찾아냈다. 걸리면 부모님께 혼쭐날 것을 각오하고 동네 개구쟁이들이 몰래 통 성냥을 빼내어서 모였다.

성냥개비가 빽빽하게 들어있는 성냥 통 위에 불을 붙이면 마치 화약이 폭발하듯이 순식간에 불길이 치솟으면서 탔다. 로켓을 발사할 때, 뒤꽁무니로 엄청난 불길이 쏟아져 나오는 것을 연상하면 된다. 그러다 보니 잘못해서 장난치던 아이들이 다치는 때도 있었다. 어머니의 예리한 감시의 눈길이 있어 몇 번 해보지 못했지만, 그 짜릿한 재미와 즐거움은 아직도 기억 속에 남아있다. 이제는 진실을 이야기해도 혼낼 어머니가 안 계시지만, 그때는 운 좋게 한 번도 걸리지 않았다.


나이 들어 다방을 드나들던 시절의 성냥에 얽힌 추억은 그 시대를 살은 사람이라면 다들 비슷하게 가지고 있다. 70년대의 다방은 사람을 만나는 장소이자 주체하지 못하는 젊음의 시간을 죽이는 장소였다. 사람을 기다리거나 심심한 시간을 보내려고 너도나도 성냥을 가지고 놀았다. 제일 흔한 게 성냥개비로 사각형 탑을 쌓는 것이다. 이건 남녀 구분 없이 누구나 다했다. 마담이라고 불렀던 다방 여주인도 이거는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물론 성질 사나운 마담은 꼭 한마디씩 해댔지만 말이다. 마음씨 좋은 마담도 열받았던 것은 성냥 대가리에 뭉쳐있는 두약에 침을 묻혀 테이블에 세우는 것이었다. 침이 묻은 건 눅눅해서 쓰지 못하니까 화를 낼만도 했다.



담배 피우는 남자들은 담배와 함께 작은 갑 성냥을 가지고 다녔다. 요즘의 라이터가 홍보물로 쓰이듯이 그때의 갑 성냥도 최고의 홍보물이었다. 홍보물로서 차지하는 가치와 비중은 지금의 라이터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컸다. 어지간한 업종이나 업소에서는 갑 성냥을 만들어 배포했다. 성냥의 형태는 대개 비슷했지만, 성냥마다 디자인이 제각각이라 취미로 갑 성냥을 모으는 사람도 많았다.


성냥을 켜는 스타일도 가지가지였다. 보통은 성냥갑을 한 손에 쥐고 다른 손에 쥔 성냥개비를 아래로 긁는 게 기본이다. 여기서 튀려는 사람들이 반대로 성냥갑을 성냥개비에 긁기도 했고, 성냥 알을 위로 긁어 올리기도 했다. 최고의 고난도 기술은 성냥갑과 성냥개비를 한 손에 쥐고 켜는 것이었다. 그것을 해보려고 오래 연습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아무 데나 긁어도 불이 붙는 딱 성냥이 나오면서부터는 정말 다양한 모습들이 생겨났다. 그것들을 일일이 다 이야기하려면 며칠이 걸릴지도 모른다.


배다리 성냥 마을박물관은 아담하다. 성냥에 대한 추억을 떠올리기에 딱 어울리는 크기이다. 성냥 마을박물관에는 성냥의 역사와 성냥공장, 그리고 성냥의 생활화를 주제로 전시하고 있다. 성냥을 사용만 했지, 성냥이 언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는 여태껏 몰랐다. 우리는 흔하게 사용하는 것들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성냥이 만들어진 곳이 바로 이곳 인천 배다리이다. 1917년 조선인촌주식회사가 배다리에서 처음 성냥을 만들었다. 한국전쟁이 끝나고 이 회사에서 일했던 노동자들이 퍼져나가 인천에 많은 성냥공장이 들어섰다. 한창 성냥을 사용했던 그때는 성냥의 역사에 대해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건 아마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이 그랬을 것이다. 성냥이 역사의 뒤안길에 들어선 이제야 알게 되니 미안한 마음이다.


그 시절에 흔했던 성냥들이 귀중한 전시물로 신분 상승해서 자리를 차지했다. 아주 오래된 것들은 몰라도 눈에 익은 것들이 많다. 시간의 먼지가 진득하게 내려앉은 작은 갑 성냥들을 보면 까까머리 학생 시절에 반 아이들을 다시 보는 느낌이다. 갑 성냥에 쓰여 있는 조금은 촌스럽게 보이는 글씨체와 디자인들이 잊고 있었던 그 시절의 감성을 일깨운다. 그 시절에는 야하다고 했던 수영복 차림의 여자 사진이 들어있는 성냥갑을 보면 피식 웃음이 난다.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모든 게 부족하고 불편한 시절이었지만, 그때는 세상이 다 그런 줄 알고 큰 불편 없이 살았다. 한 번쯤 되돌아 가보고 싶은 그 시절의 추억을 품고 있는 성냥들이 그리운 얼굴들을 떠올리게 한다. 헤어진 지 오래되어 소식을 모르는 옛 친구들의 얼굴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도 눈앞에 보이는 성냥들처럼 선명하게 그 얼굴들이 떠오른다.


시간이 흐르고 사회가 발전하면서 우리의 일상도 몰라보게 변했다. 요즘은 새로 이사 한 지인의 집을 찾아갈 때, 세제나 두루마리 화장지를 사 간다. 모든 일이 술술 풀리고 거품처럼 일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말이다. 그때는 불길처럼 활활 일어나라고 성냥과 양초를 많이 선물했다. 같은 의미의 선물이지만, 시대의 생활상에 따라 변한 것이 재미있다.

수북하게 쌓여 있는 성냥개비를 보니까 그 시절의 성냥 쌓기를 다시 해보고 싶다. 성냥 마을박물관 한쪽에 그런 것을 해볼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자그마한 박물관을 둘러보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다. 그렇지만 보는 재미와 함께 지난 추억을 떠올릴 수 있어 시간의 흐름은 오히려 길게 느껴진다. 거기에 메말랐던 감성이 촉촉하게 적셔지는 즐거움은 말로 다 할 수 없는 소중한 보너스이다. 진열되어있는 작은 성냥들이 마치 추억으로 가는 열차의 승차권처럼 여겨진다.

패션을 모르지만, 패션이 돌고 돈다는 이야기는 주워들어 알고 있다. 학창 시절 갖은 멋을 다 내며 입었던 나팔바지가 다시 유행하는 것을 보면 그 말이 틀리지 않는다. 그것처럼 다시 성냥을 사용하면 어떨까? 간편한 가스라이터도 좋지만, 아날로그 감성을 불러일으키는 성냥도 재미있지 않을까 싶다. 담배를 끊은 지 오래되었지만, 성냥을 다시 판다면 무조건 살 것이다.


그런 일이 있을 수는 없겠지만, 만약에 다시 시간을 되돌려 준다면 어느 때로 돌아가고 싶은가? 내게 그런 기회가 주어진다면 고등학교나 대학 시절로 되돌아 가보고 싶다. 왜? 돌아보면 그때가 인생에 있어 가장 감성이 넘쳤던 시기이다. 그 때문에 그 시절에 있었던 좋고 나쁜 일들이 모두 다 아름답게 채색되어 있다.


쏟아지는 소나기를 쫄딱 맞으며 친구 녀석들과 킬킬거리며 종로 거리를 걷던 날들, 크리스마스 캐럴이 흥겹게 울려 퍼지는 차가운 명동거리를 쏘다니던 날들, 막걸리 주전자를 앞에 놓고 목이 터지라고 노래를 불렀던 날들, 담배 연기 자욱한 다방에서 음악을 듣던 날들…

성냥이 있으면 성냥개비가 다 떨어질 때까지 성냥을 켜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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