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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드산 Jul 02. 2022

선암사는 아름답다는 말 외에 다른 말이 필요 없다

전남 순천에는 이름만 대면 다 아는 유명한 사찰이 두 군데 있다. 하나는 우리나라 삼보 사찰 중에서 승보사찰인 송광사이고, 다른 하나는 태고총림 선암사다. 그중에서 선암사를 이야기할 때는 그 앞에 늘 따라붙는 수식어가 있다. 선암사 가는 길에 있는 승선교는 우리나라 다리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리로 꼽힌다.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선암사는 우리나라 사찰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찰로 유명하다. 그런 이유가 꼭 승선교 때문만은 아니다. 선암사를 둘러보면 왜 그런 수식어가 앞에 붙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선암사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것만 보아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선암사는 이번이 세 번째로 내게는 나름의 의미 있는 곳이다. 2010년 6월에 처음 선암사를 보았다. 그때나 지금이나 여행을 좋아하지만, 그 시점을 기점으로 여행 방향이 바뀌었다. 10년이 넘는 시간이 지났지만, 처음 선암사를 보았던 날의 기억이 또렷하게 남아있다. 대학 친구들과 부부 모임을 30년 넘게 해오고 있다. 전국 각지에 흩어져 살고 있어서 모임은 늘 여행으로 이루어졌고, 그 모임에서 선암사를 찾았다.


처음 선암사에 갔던 날은 보슬비가 내렸다. 선암사는 6월에 농익은 초록으로 가득했고, 비를 머금은 꽃과 나무들은 저마다의 진한 색감을 보여주고 있어 이루 말할 수 없이 아름다웠다. 그 아름다운 꽃과 나무들이 전각과 돌담을 에워싸면서 완벽하게 하나로 어우러진 모습은 숨이 멎을 듯했다. 그날의 가랑비는 그 아름다운 선암사에 운치를 더하기 위한 배려가 아니었나 싶다.

 


처음 보는 선암사의 경치와 매력에 푹 빠졌다. 일행들과 가야 할 다음 목적지가 있었지만, 정말 선암사를 떠나고 싶지 않았다. 다른 곳으로 가고 싶지 않은 게 아니라, 가야 할 이유가 없어져 버렸다. 마음에서 인제 그만 되었다 할 때까지 선암사에 머물고 싶었다. 그렇다고 오랫동안 함께 한 친구들과의 여행에서 나 홀로 떨어질 수는 없었다.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돌리면서 참 많이 뒤돌아보았던 기억이 있다.

 

그때부터 혼자 하는 여행을 더는 미루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혼자 여행해본 적이 없고, 여행은 혼자 하는 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만약 선암사에 혼자 왔다면 마음이 가는 데로 머물며 그 아름다움을 오래도록 즐겼을 것이다. 그러지 못한 선암사에서의 그 진한 아쉬움이 혼자 여행을 시작하게 했다. 


이런 인연이 있는 선암사를 꽤 오랜만에 다시 찾았다. 이제는 계절이 한 달 정도 앞당겨진 것 같다. 이제 겨우 5월 하순인데 한낮날씨는 벌써 여름이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더위가 달려들고, 강한 햇살에 눈살이 저절로 찌푸려진다. 이런 날에는 조계산에 안겨 있는 선암사만 한 좋은 여행지가 없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선암사 가는 길에 들어서면 그 이유를 금방 알 수 있다.

 

선암사 가는 길에는 울창한 나무숲이 하늘을 가리고 있다. 시원한 그늘 길을 걸으면 찝찝하게 달라붙어 있던 더위가 금방 떨어져 나간다. 맑고 시원한 계곡을 따라 걸으면 마음이 차분해지고 기분은 말할 수 없이 상쾌해진다. 세월아 네월아 하면서 발걸음을 옮기다 보면 선암사의 자랑거리인 승선교가 나타난다. 계곡에는 크고 작은 바위들이 제멋에 겨운 듯 자리를 잡았고, 그 바위 사이로 맑디맑은 계곡물이 흐른다. 



이 아름다운 계곡을 가로질러 무지개 모양의 승선교가 놓여 있다. 계곡과 어우러진 승선교는 본래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자연의 피조물로 보인다. 크고 작은 납작한 돌로 쌓아 올린 승선교는 자연을 거스르지 않은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보는 사람마다 승선교에 대한 느낌이 다르겠지만, 나는 승선교에서 여성적이고 남성적인 느낌을 동시에 받았다. 


무지개 모양의 다리 아랫부분에서는 여성적인 우아한 멋이 느껴졌다. 반면에 일직선의 다리 윗부분에서는 듬직하고 강인한 남성적인 매력을 보았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이렇듯 여성적이고 남성적인 멋과 매력이 어우러져 있어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리로 불리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승선교도 아름답지만, 승선교를 비스듬히 내려다보고 있는 강선루의 아름다움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승선교의 무지개 사이로 강선루를 넣어 찍은 사진이 선암사를 대표하는 풍경 사진의 하나다. 그런데 너도, 나도 그렇게 찍으니까 사진으로 보는 즐거움이 떨어지는 게 사실이다. 그 때문에 승선교와 강선루의 멋과 아름다움도 덩달아 영향을 받는 게 아닌가 하는 노파심이 들기까지 한다. 



굳이 사진 같은 구도의 경치가 아니라도 승선교와 강선루는 긴말이 필요 없을 정도로 아름답다. 따로 떼어놓고 보아도 아름답고, 한눈에 같이 보아도 아름답다. 신선이 내려올 만큼 경치가 아름다워 강선루라는 이름이 붙었으니 그 아름다움이 오죽하겠는가.


선암사 여행은 여기서 끝내도 아까울 게 없을 정도로 계곡이 아름답다. 승선교와 강선루를 품은 계곡만 따로 떼어놓아도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을 명소가 되지 않을까 싶다. 이 좋은 경치와 분위기를 선암사 가는 길에 잠시 멈추어 보는 게 아까울 뿐이다. 


뿌듯한 만족감을 가슴에 가득 채운 채 선암사에 들어선다. 선암사는 크고 작은 전각들과 온갖 꽃과 나무들이 정말 예쁘게 어우러졌다. 경내에는 여느 사찰들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꽃과 나무들이 가득하다. 조경 분야에 전문가가 심혈을 기울여 꾸며놓은 아름다운 정원을 보는 듯하다. 그 아름다움에 묵직한 천년의 세월이 보태졌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선암사는 태고총림이라 전각들이 많다. 총림은 참선 수행도량인 선원과 경전 교육기관인 강원 그리고 계율 전문 교육기관인 율원을 모두 갖춘 종합수도 도량을 말한다. 이해를 돕기 위한 비유로 적정한지 모르겠지만, 선원, 강원, 율원이 각기 전문대학이면, 총림은 종합대학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듯 총림의 역할이 많다 보니 전각이 많은 모양이다.

 


그렇다고 전각이 많아 선암사가 아름다운 건 아니다. 어찌 보면 다 비슷비슷해 보이는 전각들만 있는데 그것이 아름답게 보일 리 없다. 먼저 말했지만, 선암사의 전각들은 갖가지 꽃과 나무들과 어우러져 있어 그만큼 빛이 나고 또 아름답다. 선암사에는 어찌 이리 많은 꽃과 나무가 있는지 궁금해진다. 


선암사의 매화는 전국적으로 알려져 있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백매화와 홍매화가 있어 매화가 피는 계절이면 전국에서 사진 찍는 사람들이 몰려든다. 그 매화들도 좋지만, 정작 내 마음을 빼앗은 것은 따로 있다. 바로 삼성각 앞에 있는 와송과 그 맞은 편에 있는 커다란 나무다. 대략 600여 년은 되었을 것으로 추정하는 와송의 모습은 대단하다. 아이들이 잘 쓰는 표현을 빌리면 한마디로 죽인다. 


굵은 줄기가 옆으로 누워 있어 와송이라고 하지만, 굵은 줄기는 두 방향으로 나누어져 하나는 땅을 따라 옆으로 퍼져나갔고, 다른 하나는 하늘을 향하고 있다. 이 소나무를 선암사의 생불이라고 한다. 하늘과 땅으로 뻗어나간 줄기 모습이 마치 온 세상을 다 품은 듯해서 생불이라는 소리를 들을 만하다고 생각된다.

 


와송 맞은 편에 있는 커다란 나무는 하늘을 향해 거침없이 솟아올랐다. 거침없이 뻗어 올라간 늘씬한 모습이 호쾌하게 보인다. 선암사의 아름다움은 차분하면서도 우아하고 때론 화려함에 있다. 그런데 이 커다란 나무는 선암사의 분위기와 달리 호쾌하고 당당한 모습이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서 있는 그 모습에 마음을 쏙 빼앗겼다. 나무 이름이 궁금했는데 어쩌다 보니 그냥 왔다. 뒤늦게 알아보려고 인터넷을 뒤져봤지만, 찾지 못했다.

 

그동안 여행하면서 전국에 있는 사찰을 많이 보았다. 산사는 저마다 이름난 산에 안겨 있어 나름의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지만, 선암사처럼 자연과 잘 어우러진 사찰은 쉽게 찾아보기 어렵다. 선암사에서는 한군데에 진득하니 있지를 못한다. 눈앞에 보이는 경치가 아름답지만, 눈길을 살짝만 돌려도 또 다른 아름다운 경치가 있어 발걸음을 옮길 수밖에 없다. 머리로는 천천히 여유 있게 즐기자고 하지만, 발걸음은 나도 모르게 이곳저곳을 누비게 된다.



선암사에서 마음을 빼앗긴 또 하나는 돌담이다. 산사에서 욕심을 내면 안 되겠지만, 선암사의 돌담은 보면 볼수록 탐이 난다. 제각각 모양의 돌들을 퍼즐 맞추듯이 쌓아 올려 기와로 마무리한 돌담은 그 자체로 아름답기 그지없다. 거기에 꽃과 나무까지 어우러져 서정적인 아름다운 경치를 보여준다. 돌담은 이제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소중한 것이 되었다. 이 돌담이 있어 선암사의 고즈넉한 분위기와 함께 고상하고 우아한 멋이 한껏 높아진다. 잠깐이나마 그 돌담을 따라 걸으면 숨겨져 있는 아득한 시간의 저편으로 빨려 들어갈 것 같다.


한참 돌담 구경을 하고 있을 때, 노스님이 천천히 걸어오신다. 선암사에 쌓인 묵은 세월만큼은 아니지만, 스님의 얼굴과 발걸음에는 피하지 못한 오랜 세월의 흐름이 담겨 있다. 천천히 옮기는 발걸음이 사뭇 조심스럽고 무겁다.

 

지나쳐가는 스님의 뒷모습에서 왠지 모를 쓸쓸함과 무상함이 느껴진다. 세월이 흐르면서 사람은 오고 가지만, 선암사는 지금 이대로 이 자리를 지키고 있을 것이다. 흘러가는 세월만큼 고색창연한 멋과 아름다움은 켜켜이 쌓여갈 것이다. 그때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찰이라는 수식어만으로는 부족하지 않을까 싶다. 그나저나 한편의 글을 쓰면서 아름답다는 말을 이렇게 많이 써본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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