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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 Aug 27. 2024

그토록 원하던 퇴사를 하다

백수가 되면 삶에 만족할 수 있을까

복직과 동시에 엄청난 우울감이 몰려왔다.


첫째 아이, 둘째 아이, 셋째 아이. 아마도 몇 번째 아이를 출산하든 상관없이, 엄마가 된 이후로 복직을 한다는 것은 꽤나 고통스럽지만 동시에 해방감을 느끼게 한다. 고통스럽다는 것은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방패나 방안을 갖추고 있느냐에 대한 문제인데, 가까이에 부모님이 계시지 않다면 불안과 늘 싸우는 삶을 마주해야 한다. 다행히 첫 아이의 임신, 출산, 육아 과정에서 부모님이 가까이 계셨기에, 그나마 약간의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약간의 자유로움'조차 친정엄마가 온전히 육아에 집중하기에는 부담을 느끼셨기에, 황혼 육아를 겪게 해 드린 점에 대한 미안함에서 자유하지 못했다. 


동시에 느껴진 해방감은 누구나 예상할 수 있듯이, 육아로부터 일시적으로 자유를 얻는 감정이었다. '아이 보는 것보다 밭 매는 게 낫다'는 어르신들의 말은 육아를 해본 사람만 안다. 육아에 최적화된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가장 어려운 점은 일상이 단단히 아이에게 매여 있다는 것이다. 세수 한 번조차 자유롭게 하기 어려운 그런 삶은, 직접 겪지 않으면 이해하거나 공감하기 어렵다. 


고통과 해방감 사이에서 나는 고통이 더 크게 다가왔다. 고통이라는 단어는 어쩌면 부적절한지 모르겠다. '불안'이라는 표현이 가장 적절할 것이다. 오전 등원을 도와줄 이모님을 모셨지만, 워낙 의심도 많고 아이를 남에게 맡기는 것이 불안해서 친정엄마가 늘 함께 계시도록 부탁했다. 엄마가 감독하시되, 육체적으로 너무 힘드시지 않도록 모두가 만족할 만한 적절한 선을 찾으려 노력했다. 한 시간 일찍 출근하고, 남들보다 이른 퇴근을 신청해 바쁘게 움직였다. 아무리 서둘러도 다섯 시 반, 다른 아이들은 모두 하원한 뒤였다. 혼자 남아 외로이 있을 아이의 얼굴이 늘 떠올랐고, 이런 삶을 언제까지 반복해야 하나 하는 불편한 마음에 피부염, 구내염, 여성 질환까지 달고 살았다. 회사에서의 삶이라도 만족스러웠다면 좋았겠지만, 복직 전과 후의 팀도 달라지고 업무도 변경되어 상당히 무료한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날의 현실에서 나를 구해줄 무언가가 필요했다.



남편의 이직과 주말부부의 시작


남편을 만난 이후로 가장 오래 떨어져 있어야 했다. 남편의 이직으로 남편은 홀로 서울에 나머지 둘은 지방에서 떨어져 주중의 날들을 보내야 했다. 개인적으로는 주말부부를 추천하는 여러 이야기들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두 돌도 안 된 아이와 함께 보내는 긴긴 저녁 시간과 정신없이 바쁜 아침은 꽤 버거웠기 때문이다. 게다가 회사에서의 불분명한 R&R, 무기력함, 여러 현실적인 걱정과 고민들로 인해 심신이 지쳐갔다. 기약 없는 주말부부의 삶은 육아휴직으로 해결될 것 같지 않아 퇴사를 결심했다. 어렵게 들어간 국가기관 연구원 자리에 미련을 두기엔 내 몸과 마음이 이미 한계에 다다랐고, 장거리 출퇴근의 비현실적인 문제를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었다. 결국 육아휴직 대신 퇴사를 선택했다. 그렇게 결정하고 나니 평안이 찾아왔다. 결국 이렇게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 살아가는 것이 내 운명인가 싶었다. 



백수가 된 걸까


사원증을 들고 바쁘게 출퇴근하며 아이를 마주할 때, 나는 누구보다 열심히 삶을 살아내고 있다고 생각했다. 영혼은 뒤에 두고 몸만 바쁘게 움직였지만, 그 행위 자체에 집중했다. 직장에서 해방되어 서울에서 맞이한 새로운 환경은 나름 신선했고, 안정감을 주었다. 함박눈이 내리는 2월, 아이와 집에서 음악을 들으며 어린이집에 보내기 위해 애쓰지 않고 편안히 시간을 보내는 것이 매우 매력적이었다. 백수 아닌 출근하지 않는 엄마의 삶에서 느끼는 기쁨, 그 유효기간은 한 달 남짓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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