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옆집 부부

by 신선경






-어이. 이게 뭐야?

-예? 뭇국인데 왜요?


남자의 엄한 말투에 여자는 윗입술을 깨물며 대답했다.


-기름이 둥둥 뜨고 이게 국인지 기름 찌꺼기인지 말이야!

-어머님이 보내주신 고기가 기름이 좀 많더라고요. 기름 거른다고 했는데...


수저가 쨍 소리를 내더니 남자는 식탁에서 일어나 겉옷을 챙겨 입었다. 여자를 한 번 쏘아보고 본인 키만 한 골프가방을 들었다.


-통장에 돈 넣었지?

-예, 100만 원 당신 계좌로 보냈어요.

-2층에 주문한 옷은 아직 안 왔데?

-예 여보. 프랑스에서 직원이 구하면 택배로 보내준다고 했는데 이따가 가게 가면 다시 물어볼게요.


현관에서 남편의 신발을 가지런히 놓아주고 문이 닫힐 때까지 두 손을 모으고 서 있었다. 남자가 나가자 식탁 위를 정리해서 대충 싱크대에 놓고 흑장미색 루주를 눌러 바르며 집을 나섰다.



4층 | 청담미용실


이름, 민유나

나이, 스물아홉

결혼 경력, 없음

외모, 약간 마르긴 했으나 매우 훌륭함


여자는 세월에 주름진 가죽 수첩을 펼치고 또박또박 몇 줄을 적었다.

배 사장 아들과 한 살 차이인 건 아쉽지만 그에게 수제화 여직원만 한 후보가 없었다. 그러나 배 씨가 몇 년째 행방이 묘연한 상태니 계획을 변경해야 했다.


원장 지화자는 이 건물에서만 10년을 있었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미용 자격을 취득했고 스태프 시절 착실한 경찰 공무원 손님과 결혼 후 아들 둘을 낳았다. 남편의 뜻대로 미용실을 그만두며 남자 셋의 뒷바라지만 했다. 둘째가 대학생이 되었을 때 여기에 미용실을 열었다. 20년 만의 사회생활이었지만 손님은 적당히 받으며 일을 많이 하지 않았다.

남편이 작년 정년퇴직 후 취미로 낚시를 하다가 요즘은 골프를 친다. 며느리 생일은 안 챙기는 시댁이어도 하나뿐인 손주들의 학비며 생활비는 잊지 않았다. 그 덕분에 그녀도 머리 마는 일보다 재밌는 일을 찾았다. 전업주부로 살며 따분했던 화자는 모임에 부지런히 다녔고 혼기가 찬 자녀들을 위해 중매쟁이 역할을 했다. 이어준 커플이 결혼하면 얼마나 뿌듯하던지 중매가 유일하게 성취감을 주는 일이 됐다.


순진했던 시절에 결혼해서 경제적으로는 걱정 없었지만 더 중요한 것이 빠진 채 살았다. 결혼정보회사나 전문 앱을 통하는 게 자연스럽다지만 화자는 결혼 조건보다 더 중요한 걸 알고 있었다.

다정한 부부로 서로에게 쉼이 되는 인연을 맺어주고 싶었다. 사명감이랄까, 이 시대 청춘 남녀가 자신과는 다르게 살기를 바랐다.


-응 여보세요, 소진 엄마~ 신랑 옷 언제쯤 온대? 아~ 아니야, 천천히 해줘도 돼요~ 이따 같이 점심이나 먹을까? 옆에 기깔나는 솥밥집 오픈했잖아! 언제 닫을지 모르는데 우리가 가줘야 하지 않겠어? 오호홍 아휴 내가 우리 미숙 씨 밥 한 번 사주게~ 아까 남편이 용돈 넉넉히 주고 갔다니까~~ 오홍홍








2층 | 중고 명품


선우는 거실 매트 위에서 소파에 등을 기대고 아무렇게나 틀어져 있는 TV를 보고 있었다. 딱딱하게 굳어진 피자와 빈 맥주캔 위로 날파리 하나가 배를 불리고 있었다. 진동음이 울리자 그는 벌떡 몸을 일으켜 세웠다.


[ 안녕하세요 회원님!

코팡 마케팅 김미인 팀장입니다.

고객님께서 그동안 저희 코팡을 이용해 주셔서 감사드리며 새롭게 이벤트 중이니 다양한 상품을 받아보세요.

상담 문의 링크: http://loveormoney.com/babo ]


그는 문자를 차단하고 노란색 창을 열었다. 최근 대화가 없는 화면을 보고 몇 분쯤 흘렀을까, 선우는 어깨를 두어 번 돌린 후 메시지를 작성해서 전송했다. 소진에게 들키면 안 되는 흔적들을 치우고 나갈 채비를 했다.


비가 그치고 미세먼지도 없는 하늘이었다.






계속-

매주 화, 수요일 밤에 연재됩니다.







keyword
화, 수 연재
이전 04화빗물, 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