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하는 자아
알바를 하면서 인생을 깨우쳐버린 이야기 ver.1
: 성장하는 자아
1. 절대 할 수 없는 일은 없다.
20살에 대학교를 입학하고 돈을 모으겠다는 일념으로 알바를 구했다. 면접에 갔는데 너무 어리고 경험이 없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그러다가 집 근처 패스트푸드점에서 연락이 왔다. 면접을 보고 그 자리에서 합격을 받았다. 그렇게 생애 첫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면접 자리에서부터 부점장님이 이런 말씀을 하시더라. "딱 한 달이 엄청 힘들 텐데, 그 한 달만 버티면 괜찮을 거예요." 잘 알고 있다. 많은 후기를 읽고 면접 자리에 갔기 때문이다. 각오가 되어있었다.
그리고 실전. 교육부터 힘들었다. 조리가 완료되었다고 기계가 소리를 내는데 워낙 많은 기계들이 있었고 기계의 작동음, 완료음, 사람들의 대화가 얽혀 구분이 안 갔다. 첫날부터 혼났다. 게다가 입사한 지 2주가 지났을 때, 근무는 4번 정도 했을 때 행사날에 근무하게 되었다. 어떤 것을 주문하든 지정된 사이드 메뉴 하나를 증정하는 행사였다. 굉장히 바쁜 매장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더라. 지시만 따라가기도 벅찼다. 결국 먼저 일하던 아르바이트생에게 혼나고 말았다. 휴식시간이 되었고 내 식사는 어떻게 챙겨야 하는지도 모른다. 백 룸(back room)에 가서 혼자 엉엉 울었다. 그만두고 싶었다. 내가 왜 여기서 이렇게 힘들게 일해야 하는지도, 누군가에게 이렇게까지 미움을 받으면서 일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더라.
그런데 내 꿈에 다가서러면 일단 천만 원을 모아야 한다. "여기서 그만두면 새로운 일자리를 구할 수 있을까?" 확실히 아니다. 여기서 그만두면 일자리를 구할 수 없겠지. 혼자 아이폰 메모장에 천만 원을 모으기 위해서 어느 정도 기간 동안 얼만큼씩 모아 야할지를 계산하다가 눈물이 멈췄다. 눈에 독기를 품고 다시 일을 했다. 그렇게 한 달 동안은 아무도 말을 걸어주지 않더라. 당연히 식사를 하는 방법도 여전히 몰랐다. 그런데 상관없었다. 휴식시간 동안 울기 바빠서 무언가를 먹을 기분이 아니었다. 신기하게도 한 달이 지나고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를 알게 되었다. 대충 일의 과정을 이해했다. 처음으로 울지 않고 휴식을 갔다. 마침 백 룸에 올라온 매니저님의 도움으로 내 식사를 챙기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또 시간이 흐른 후 같이 일하는 아르바이트생이 처음으로 말을 걸어주었다. 30분이 모자랐다. 그렇게 나는 아르바이트에 적응했다.
첫 알바를 시작한 지 한 달이 지나기 전에 카페 마감 알바도 시작했다. 처음부터 레시피도 제대로 못 외워서 많이 혼났다. 절대 못 외울 것 같던 레시피를 외웠다. 한 달이 지나자 무서웠던 직원 언니와 친해졌다. 아아. 절대로 할 수 없는 일이란 없구나. 그 시간 동안 치열하게 싸워준 내가 있기에 나는 계속 일을 했고 돈을 벌 수 있었다.
2. 함께 가면 멀리 갈 수 있다.
일에 적응한 후로는 많은 주문에 당황한다. "이렇게 많은 주문을 어떻게 다 하지? 난 못해."라고 생각하고 포기하려는 순간 내 옆에 사람들이 함께한다. 매니저님들이 옆에 와서 같이 만들기 시작한다. 헐레벌떡 점장님이나 부점장님도 함께한다. 어느새 내 옆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더라. 그리고 절대로 할 수 없을 것 같던 주문들을 순식간에 끝낸다. 이때 진심으로 깨달았다.
혼자 가면 빨리 가지만, 함께 가면 멀리 간다.
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다. 그 말을 뜬금없는 장소에서 이렇게 확실하게 깨달을 줄이야. 제대로 경험했다. 팀플의 위력.
둘이서 맞추는 듀엣 호흡도 좋았다. 카페 마감 알바는 마감 직전까지 3시간 정도로 잠깐 하는 알바였다. 그래서 많은 주문을 소화할 일은 별로 없었는데, 추석 때였다. 저녁에 손님이 몰렸다. 보통 두 명이서 1시간에 10만 원을 팔면 많이 팔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 날은 1시간에 18만 원을 팔았다. 팔 때는 힘들었지만, 같이 해서 그런지 음료를 모두 서빙하고 나서는 둘이 뿌듯해했다. 할 수 없는 일을 해낸 희열감이 이렇게 벅차다. 그리고 그 희열감에 공감해줄 사람이 있다면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3. 내가 핵인싸?
어울릴 수 없을 것만 같던 사람들과 어울려졌다. 같은 학교를 나온 것도 아니고, 나이가 비슷하지 않을 때도 있었다. 성별이 다른 경우도 있었다. 이런 각기 다른 사람들과 어떻게 어울릴 수 있을까를 고민할 필요가 없더라. 수건에 물이 스며들듯이 젖어갔다. 중, 고등학교를 다닐 때도 내가 인기가 있다는 것은 알았다. 첫인상은 별로였는지 처음에는 말을 걸지 않던 친구들도 학기 중이나 후반에 가면 모두 내게 다가오더라. 그리고 친해졌다. 그런데 핵인싸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나는 혼자 있는 것이 더 좋았다. 누군가와 대화를 할 때 부담을 느꼈다. "저 사람이 내게 기대하는 것을 내가 전해주지 못하면 어떡하지? 저 사람이 나를 떠나갈 텐데." 부담감이 쌓여 친구들과 어울리는 시간이 더 힘들어졌다. 그래서 관계의 거리를 두었다.
우연히 공학 관련 캠프에 참여했다. 처음 보는 친구에게 내 첫인상에 대해 "핵인싸"라는 말을 들었다. 내가 핵인싸라니?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나는 인싸일까? 아싸일까를 고민하다가 성인이 되었고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그리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쉬는 날에도 같이 일하는 동료들을 만나 어울렸다. 그들과 이야기하고 순간을 즐기는 것이 좋았다. 다양한 사람과 어울리는 즐거움을 깨달아버렸다.
그 순간부터는 더 많은 사람을 만나보고 싶었다. "새로운 곳에 가면 새로운 사람이 있겠지? 그 사람은 내게 어떤 경험을 하게 해 줄까?" 사람을 만나는 일이 기대되고 사람을 만나도록 일정을 조정하는 내 모습을 보았다. 내가 사람을 만나 관계를 형성하는 과정을 즐긴다는 걸 깨달았다. 사람들과 만나 어울려 대화하다 보면 어떤 깨달음을 얻고 난 그 과정을 즐긴다. 더 많은 사람과 만나 더 많이 대화하고 싶어 진다. 이제야 깨달았다. 나를 좋아해 줄 사람들은 내게 품은 기대대로 되지 않는다고 나를 떠나지 않는다는 것을. 남을 사람은 남을 것임을.
그래서 나는 핵인싸이다.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하고 되도록이면 모든 시간을 그렇게 채우고 싶었다. 그런데 그럴 수 없음을 알아서 글을 쓴다. 사람들에게 하고 싶던 이야기를 글이라는 표현 수단을 빌려 공유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