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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찌양 Apr 05. 2021

전 직장 상사를 만났다.

경험해봐야 아는 우둔함

*첫 알바는 제법 큰 규모의 매장이었다. 그래서 입사와 퇴사의 과정이 있었고 4대 보험, 퇴직금도 있었다. 물론 진급 과정도 있었기 때문에 직장이라고 표현했고 상사라고 표현했다*


나의 첫 알바는 20살 때였다. 2층짜리 단독 건물인, 제법 큰 건물의 패스트푸드점에서 일을 시작했다. 입사 초반에는 정말 일을 못했다. 어리바리한 신입사원 그 자체였다. 사회에서 만난 첫 사람들. 그 속에서 나의 사수가 있었다. 나의 상사는 조금 무서웠다. 단호한 말투와 그에 상응하는 표정이 있었다. 근무를 더해갈수록 점점 더 발버둥 쳤다. 힘들 것이란 것을 알고 왔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근무를 더해갈수록 사람들은 내게 실망만 더해갔다.


나는 열심히 하고 있는데,
열심히만 하면 안 된다는 표정과 말들에 새삼 상처 받았다.


이게 사회라는 거구나. 내가 진짜 사회에 떨어져 버렸다는 것을 깨닫고는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잘하고자 하는 마음과 잘하지 못하는 나의 현재 모습의 괴리, 그 사이에서 울분을 토했다. 4시간 이상 일을 하면 30분의 휴식을 가져야 한다. 보통은 그 시간에 제공받은 식사를 한다. 어느 누구한테도 말을 붙이지 못한 나는, 바쁜 매장 속에서 식사를 챙길 수 없었다. 그래서 그냥 백 룸(back room, 직원들의 휴게실)에 가서 엉엉 울었다. 10분간 울고, 코를 풀고 다시 10분을 울었다. 처음 눈물을 흘리는 10분간은 그만두겠다는 생각이 가득했다. 더 이상은 못해먹겠다고. 생각하며 눈물을 흘린다. 그러다가 돈 계산을 해보았다. 이번 달 월급이 10만 원도 안 된다니.. 그다음 눈물은 고통에 비해 적은 내 월급 때문이었다. 그리고 또 울고 싶었는데, 눈물이 말라버렸다. 아아, 나도 이렇게 돈을 버는구나. 돈 앞에서 눈물은 쏙 들어가 버린다. 그대로 그만두고 싶었는데, 돈이 내 발목을 잡았다.


일하자, 지은아.



최근 일하고 있는 매장에서 새로운 분을 교육해야 했다. 수없이 해온 교육이지만, 지금 교육하는 분은 내게 새로운 깨달음을 주었다. 그동안 교육했던 사람 중에도 일을 잘하지 못하는 사람은 많았다. 그런데 이 사람을 보고 있노라면, 나의 20살 때가 떠오른다. 고집이 세서 가르쳐주는 사람의 말을 잘 듣지도 않고, 친절하게 알려주지 않는다고 불만을 표출하는 표정, 가르쳐주는 사람에 대한 감사 따위는 없던 내 20살 때가 말이다.


전 상사에게 연락을 했다.


교육은 너무 힘들어요.


아르바이트, 단순 노동이지만 교육은 참 어렵다. 이 일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을 시간을 들여 일한 나와 비슷한 수준으로 끌어놓아야만 한다. 그러면서 깨달았다. 내가 가르치는 당사자가 되니 깨달았다.


당시 일했던 매장은 바쁠 때 손님이 몰리는 밀물과 썰물 같은 매출의 매장이었다. 그러니 사장 입장에서는 순간 바쁘다는 이유로 사람을 더 써주지 않는 매장이었다. 새로운 교육생을 교육해야 하지만, 인원을 더 배치해줄 수 없다. 교육생을 교육할 때는 눈을 뗄 수가 없다. 천천히 알려줄 수가 없는 것이다. 빠르게 진행하고 익숙해지는 실습 위주로 진행해야 한다. 짧은 교육시간이 지나면, 바로 실전 투입이다. 이런 상황을 이겨내고 열심히 가르쳐주어도, 교육생이 실전에 투입되어 일을 곧잘 하지 못하면 비난은 교육생이 아닌 교육을 해준 사람에게로 향한다. 교육을 잘못했다고 비난받는다. 구체적으로, 더 적극적으로 교육자의 입장을 생각해보니,


1. 교육도 업무이지만, 노동 조건 개선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배움을 받는 입장에서는 일을 가르쳐주는 상사(라고 표현하고자 한다.)의 노동조건까지 고려하지는 못하더라. 그런데 실제로, 아르바이트하는 곳에서 가르쳐주는 사람은 같은 아르바이트생 신분인 경우가 많다. 대부분 최저시급을 받으며 일하는 사람이 연장자라던가, 일을 오래 했다는 이유만으로 일을 가르치는 입장에 놓이게 된다. 바쁜 시간에 교육생까지 챙기려면 정말 힘들다. 교육을 한다고 돈을 더 받거나 일을 편하게 할 수 있는 상황이 절대 아니다.


2. 잘 가르치려고 노력해도, 교육자의 노력으로는 되지 않는다.

열심히 가르쳐주려고 노력해도 교육받는 사람이 의지가 없다면, 헛물이 된다. 내가 일을 가르쳐준 사람들은 대부분 나와 비슷한 또래이다. 보이는 모습이 비슷해 보이니 교육생이 너무 편하게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일을 열심히 배우지 않아도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더라. 그래서 본인 일이지만, 본인 일이 아닌 것처럼 일을 배운다. 일을 헐렁하게 배우니 실전에서 실수하는 경우가 많다. 교육생에게도 좋지 않고, 교육자에게도 좋지 못한 시작이 된다.


3. 내 노력과는 별개로 책망받는다.  

교육생이 일을 잘하면 교육생이 잘한 것이 된다. 그런데 일을 잘하지 못하면, 일을 잘못 배웠다고 교육자를 탓한다. 교육자가 아무리 노력 한다한들 교육생이 잘하지 못하면 책망까지 받는다. 이러니, 교육자들은 부드럽게 알려주기 힘들다. 너무 강하게 알려주면 교육생이 그만두기 쉽다. 열심히 가르쳐주었는데 갑자기 교육생이 그만두는 것도 힘들지만, 주변의 반응이 더 힘들다. 주변에서는 "네가 너무 했네." 등의 책망을 한다. 교육생이 그만두는 것까지 교육자의 탓이 된다.



이렇게 3가지이다. 더 많이 나열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여기까지 하겠다.


 나는 정말 우둔한 사람인가 보다. 경험해보기 전에는 알지 못했다.


 "왜 친절하게 알려주시지 않지?", "나도 아는데..." 등의 생각을 했었다. 그 생각이 교육자를 얼마나 힘들게 했을지 정말 죄송하다.



교육이 힘들다는 내 이야기를 전하다가 전 상사와 다시 만나게 되었다. 다시 만나서 대화를 나누던 중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다.


 처음에  배울  
백 룸에서 혼자 우는  들었어.


내가 처음 일을 배울 , 혼자  (Back room, 직원들이 쉬는 휴게실의 개념)에서 엉엉 울었다는 것을 알고 계셨다는 것이다. 당시 일했던 매장의  룸은 화장실 바로 옆이었다. 그래서 화장실을 가던 중에  룸에 있는 나의 울음소리를 들으셨다는 거다. 민망했다.  시절의 내가 부끄러워졌다. 내가 얼마나 오만방자하게 일을 배웠는데, 그것까지 알고 고려해주셨다니. 나는 처음에 일을 배울   매장에서 내가 가장 힘들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혼자 컸다고도 생각한다. 그런데 전혀 아니다. 내가 하는 일은 실제로 해야  일의 1/2 되지 않는다. 나머지  이상은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버텨주고 있는 것이다. 내가  해낼 때까지 옆에서 계속 버텨내  사람들.  속에서 나는 일을 배웠다.  사람들이 버텨주지 않았다면, 나는 일을 배우지 못했고, 지금처럼 능숙하게 해낼 수도 없었을 것이다. 일을 배우는 방법을 익히지도 못했을 것이다.


나는 정말 좋은 상사를 만났다. 내가 일을 잘하던 잘하지 않던 열심히 한 것을 인정해주고, 서툰  감정까지 보듬어 주는 포용력을 가진. 당시에는 몰랐던 것을 지금에서야 깨달았다. 온전히 이해했다.


좋은 상사 덕분에 나는 지금까지도 일을 하고 있다. 목표에 도달해보았고, 그 경험 덕분에 또 한 번 성장했다. 이제는 누군가에게 어떤 정보를 알려줄 때, 그때 나의 상사를 떠올린다.


넓은 포용력으로 상대를 감싸 안아주고 싶다.


이제는 서로 다른 길을 걸어, 사적으로 만나는 나의 첫 상사에게. 무한한 감사를 드린다. 또한 미숙한 나와 함께 일해준 나의 첫 동료들에게도 무한한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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