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셋합니다.
올해 초에 있었던 일이다. 열심히 알바를 하던 중에 갑자기 번아웃이 찾아왔다.
왜 번아웃?
나는 천만 원을 모아서 인턴십을 가는 것을 대학교 재학 시절 목표로 삼고 대학교에 입학했다. 그리고 알바를 구해서 열심히 일을 했다. 그런데 돈을 벌고 그것을 모으는 것이 내 생각대로 쉽게 되지 않았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는 돈 모으는 것에 더 치중했다. 돈을 모은다는 것은 꽤 매력적이다. 돈은 눈으로 보인다. 잔액이 쌓이는 것을 볼 수 있다. 그에 반해 공부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내가 얼마나 공부한 것인지에 대한 객관적인 확인이 어렵다. 그래서 더 돈 모으기에 빠졌던 것 같다. 확실하게 눈에 보여서.
알바를 시작한 20살 때는 패스트푸드점에서 스케줄 근무를 하고, 근처 카페에서 평일 마감 업무를 했다. 한 달에 100만 원을 넘기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갈수록 스케줄이 많아졌고 한 달에 200시간 정도로 일한 적이 있을 정도였다. 누가 봐도 야위었다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일을 했다. 그렇게 일하다가 이런저런 이유로 패스트푸드점으로 완전히 옮겨서 한 달 150만 원 정도를 약속받았다. 그렇게 스케줄 근무를 했다. 보통 낮부터 새벽까지 8시간 정도를 매장에 머물러야 했다. 내가 원했던 것은 내 공부나 흥미 있는 것을 진행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런데 정작 근무를 그렇게 해버리니까 집에 돌아오면 새벽이었고 잘 준비를 하다가 누우면 잠을 잘 수 없었다. 불면증이 찾아온 것이다. 그래서 아침까지 뜬눈으로 버티다가 겨우 오전 8시 정도에 잠에 들었다. 그리고 일어나면 다시 알바를 가야 했다. 그게 너무 싫었다. 그리고 목요일과 일요일 사이가 가장 바빴는데 바쁘다 보니까 그 시간에 자주 근무해야 했다. 너무 힘들고 지쳤다. 욕하는 사람들과의 감정싸움, 8시간을 뛰어다니고, 밥도 거르고, 물도 마시지 못하고 심지어는 화장실도 가지 못했다. 그렇게 일해도 내부에서는 서로 힘들다고 싸웠고 외적으로는 손님들과의 감정싸움, CS 처리 같은 것들이 쌓여서 나를 옥죄었다. 게다가 매장을 운영하는 시스템에서 변화의 가능성을 잃었다.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일을 시키겠구나.'
그렇게 일하다가 주변을 둘러보니, 허탈했다. 시험 기간이어서 만나줄 수 있는 친구도 없었고, 일하러 가서도 고단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게다가 나아지지 않는 불면증까지 나를 괴롭혔다.
나는 왜 존재할까?
내 존재 자체에 대한 의구심도 들었다. 정말 너무 힘들었다. 이 와중에 돈도 모이지 않았다. 학점도 놓쳤다. 나에게 남은 것은 무엇일까? 계속 이렇게 살아야 목표를 이룰 수 있는 것이라면, 살지 않는 편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그렇게나 어른이 되고자 했는데, 이제는 살기 싫어졌다니. 괴리감이 넘쳐난다. 특히, 근무가 없는 날이면 더 그런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정말 너무 힘들어서 어느 날 친구에게 DM(SNS 메시지)을 보냈다.
"나 너무 힘들어."
내 DM을 보자마자 바로 "만나자!"라고 말해주는 친구가 있었다. (이 친구는 앞으로 금붕어로 지칭하고자 한다. 금붕어는 나와 가장 친한 친구이다. 시험기간에 성적관리를 열심히 하는 성실한 대학생이다.) 금붕어가 그 친구였다. 금붕어랑 만나서 한 얘기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내가 힘들다고 말했고 그냥 속 시원하게 하소연을 했던 것 같다. 맛있는 커피와 디저트, 그리고 좋아하는 친구. 금붕어는 내 말을 듣더니, 밥은 잘 챙겨 먹었냐, 잠은 잘 잤냐 이런 질문들을 하였다.
맞아. 나 밥 잘 못 챙겨 먹었어.
맞아. 나 잠 잘 못 자.
끼니에 맞춰 밥을 먹는 것과 잘 자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이때 깨달았다. 금붕어와 나는 건강한 삶을 살기 위한 목표를 세웠다. 일 외에 할 수 있는 취미를 만들고 운동을 규칙적으로 하고 끼니를 잘 챙겨 먹고, 잠을 잘 잘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이었다. 나는 이 날 금붕어를 만나기 전보다 훨씬 에너지에 차서 귀가했다. 금붕어와 세운 목표 때문이 아니라 금붕어의 존재 때문에 그랬다고 생각한다.
금붕어는 나와 가장 친한 친구이고, 그 친구는 내가 힘들다고 말할 때, 바로 만나자고 해주는 만남을 실천하는 친구였다. 덕분에 내가 한걸음 나아갈 수 있었다. 다시 열심히 일을 하자.
스케줄을 좀 줄이고 일을 하다가 어느 순간, 퇴사에 대한 확신이 생겼다. 그리고 퇴사를 결정했다. 마지막 근무를 앞두고 지나온 시간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같이 그 시간을 보내온 사람들에 대해 생각했다. 그때 참 고마웠지. 그때 참 너무 했었어. 이런 감정들이 뒤엉켜서 마지막에 남는 것은 단연, 감사함. 같이 고생해준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해주고 싶었다. 뭐가 좋을까를 고민하다가 근무하면서 은연중에 이야기했던 복권이 생각났다. 로또가 당첨되었으면 좋겠다는 사람들의 말이 떠올랐다. 그래서 로또보다 가볍지만 나의 마음을 보여줄 수 있는 수단을 고민하였다. 그러다가 찾은 것이 "즉석 당첨 복권"이었다. 구매 가격도 낮고 너무 높은 당첨금액도 아니어서 서로 부담이 없을 것 같았다. 그리고 구매한 가격은 1000원이지만, 1등에게는 5억까지도 준다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내가 구매한 가격만 천원인 거지, 사실 마음으로는 5억을 주고 싶어."라는 말이 잘 전해지는 것 같아서.
메시지 카드 한 장과 같이 포장을 해서 준비했고, 마지막 근무가 다가올 때 같이 일했던 사람들의 사물함에 넣어두었다. 생각보다도 더 좋아해 주었다. 다행이야.
이때, 내가 생각보다 주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임을 알았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중요한 내용을 깨달았다.
모두 내가 선택한 것.
내가 퇴사를 결정한 가장 큰 이유는 아마 내가 선택할 수 없는 삶에 대한 답답함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즉석 당첨복권을 구매하면서, 혹시 내가 5억에 당첨되면 어떻게 하지?라는 상상을 했다. 정말 진지하게 고민했다. 5억으로 뭘 할까를. 그리고 생각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을 하겠지." 나는 퇴사를 앞두고 새로운 알바를 구했다. 마지막 2주 동안은 총 4곳에서 일했다. 일하고 있던 패스트푸드점, 올해 초 일하기 시작한 카페, 새로 일하기 시작한 카페, 새로 일하기 시작한 빵집. 아마 5억에 당첨되어도 패스트푸드점은 예정된 퇴사를 할 것이고, 계속 그곳들에서 일을 하는 아르바이트생일 것이다. 그리고 그 5억은 부모님을 드리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해외 인턴십을 가고 싶은 것은 맞지만, 그 돈은 내가 모은 돈으로 가겠다고 다짐했으니까. 결국 이렇게 여러 곳에서 일하는 알바도 내가 선택한 것이었다. 모든 것은 내 선택에 대한 결과였다.
난 선택할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학교도 내가 선택한 것. 일도 내가 선택한 것. 이 삶도 내가 선택할 것. 이 생각이 시작되고 끝을 맺으면서 난 번아웃을 지나쳤다.
그리고 마지막 근무 날이 되었다. 시원섭섭했다. 뭔가 애증이랄까. 너무 힘들었고 다시는 보기 싫지만, 또 그리울 것 같은 공간에서의 마지막이었다. 이런 내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날도 근무는 힘들었다. 보통의 날들과 같았다. 다만 다른 것이 있다면, 다들 내 퇴사를 언급해줬다는 것? 그리고 이곳에서 사귀었고 먼저 퇴사한 지인들이 나를 찾아와 주었다는 것이다. 이 날 내 마지막 근무라고 먼저 언급을 했다. 그리고 오늘 와주면 좋겠다고. 그랬더니 정말 찾아와 주었다. 음료도 주고, 빙수도 주고, 선물도 주고. 모두들 나를 보러 와주었다. 그게 또 감동이었다.
난 1년 조금 넘은 시간 동안 같이 어울렸던 사람들과 혼자만의 전우애? 같은 것이 있었다. 그게 나 혼자만의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공유하고 있었나 보다. 같은 감정을.
"이 말을 꼭 전하고 싶었어요.
1년 동안 저를 살펴봐주시고, 챙겨주신 여러분들께 무한한 감사를 드립니다."
실수해서 눈물 쏙 빼게 혼나도 보고, 정말 이유 없이 진상한테 욕도 먹어보고, 그 과정을 처리하면서 눈물, 콧물 다 빼던 20살의 내가 안쓰럽기도 하고, 그 시기를 잘 견뎌낸 내가 기특하기도 하다. 아직도 알바 처음 시작해서 울면서 집에 가던 그때가 생각난다.
나는 번아웃을 경험했고, 지나쳤다. 덕분에 더 나아갈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