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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담 Mar 24. 2022

얼음 깨고 달린 센트럴파크 첫 완주 10Km

뉴욕 마라톤으로 가는길 <첫번째 대회> 조 클레이너먼 10K

뉴욕시티 마라톤(NYCM)의 참가권을 얻기 위해 9번의 경기참여와 1번의 봉사활동을 수행하는 9+1 챌린지. 2022년 첫번째 대회로 Joe Kleinerman 10K 대회에 참여한 후기입니다.


대회요약

개최일 2022년 1월 8일 오전 8시
장소 센트럴파크
거리 10Km

*특이사항 : 대회날 무지무지 추웠다 ;; 출발시각에 영하8도


지금은 세계 4대 마라톤 중 하나로 마라토너들의 버킷리스트에 반드시 올라있는 뉴욕시티 마라톤. 그 마라톤을 주최하는 NYRR의 창립자인 조 클레이너먼의 이름을 붙인 대회가 한해의 첫 경기로 올라왔다. 엄밀히 말하면 NYRR이 주최하는 1월 1일 자정 달리기가 있기 때문에 두번째 대회가 되겠지만 현실적으로는 이 대회로 한 해의 스타트를 끊고자 하는 참가자가 많았기 때문에 참가 열기도 대단했다.


하지만!

막상 1월이 되고 보니 이상기후로 날씨가 너무너무 추웠고, 아침 일찍 시작하는 달리기 대회의 특성상 불참자가 속출했다. 대회 이삼일 전부터 한파가 몰아쳤는데 정말 어찌나 춥던지 일상 생활이 힘겨울 정도였다. 아침 6시쯤 집에서 출발해야 하는데 예상기온이 영하 10도정도 되었다. 함께 달리기를 하는 런클럽에서도 이정도 날씨면 경기를 포기해도 정당하다는 의견이 오고갔다. 


하지만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달리기 대회에 참가해본 경험이 많지 않은 나는 이번 대회가 첫 겨울 대회였고, 경기가 시작되는 아침 8시 시점에 예상기온이 영하 8도였는데 얼마나 추울지 체감으로 와닿지 않아 일단 가보기로 했다. 아침에 일어나 바나나 한개와 에너지드링크를 마신 후, 언더아머 콜드기어 바지와 콜드기어 컴프레션 목티에 런클럽 유니폼(반팔)을 겹쳐입었다. 시계와 로드아이디를 착용하고, 모자와 장갑도 잊지않고 챙겼다. 거기에 윈드브레이커를 입고 가방에 물과 혹시 몰라 필요할 물건들을 챙겨 메고 깜깜한 새벽에 집을 나섰다. 결과적으로 이 가방이 정말 큰 실수였다. 


가방을 굳이 챙긴 이유는 지하철을 타고 가야하는 센트럴파크가 심리적으로 멀기 때문에 가방이 없이는 불안하기도 했고, 무엇보다도 런클럽 유니폼을 꼭 입고 달리고싶었기 때문에 겉에 입은 윈드브레이커를 벗어 가방에 넣어 맡길 심산으로 주최측에서 번호표와 함께 제공한 가방택까지 챙겨 가지고 나온 것이다. 하지만 지하철에서 내려 공원까지 조금 걷기만 했을 뿐인데 이미 너무 추웠고, 이래서야 어디 윈드브레이커를 벗을 수 있을까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그래도 어찌하랴 가방을 메고왔으니 가방은 맡겨야하고, 가방 맡기는 줄에 서서 기다리는 동안 몸은 더 꽁꽁 얼었고, 막상 내 가방을 건네줘야 하는 타이밍이 왔을때는 온몸이 꽁꽁 얼어 윈드브레이커를 벗기는 커녕 금속으로 된 지퍼 손잡이에 손도 대고싶지 않았다. 결국 나는 굳이 챙겨입은 런클럽 유니폼을 윈드브레이커 속에 감춘채, 빈 가방을 맡기고 출발선에 섰다. 심지어 가방 맡기는 줄에서 시간이 지체되어 이미 내 출발그룹은 진작에 스타트를 한 상태였다. 그래도 경기 기록은 내가 출발선을 통과한 시점부터 측정되니 당황하지 않고 뒷그룹과 함께 출발했다. 




센트럴파크에서 열리는 10km대회는 대부분 똑같은 코스라고 보면 된다. 동편 102번가 지점에서 출발해 공원 내 도로를 한바퀴 돈 다음 출발지점보다 조금 더 가서 왼쪽에서 피니쉬하는 코스다. 센트럴파크는 우리집에서는 지하철을 타고 가야하기 때문에 일부러 '한번' 가서 달려본적은 있다. 그때는 남쪽에서 시작해서 중간에 너무 많이 길을 잃고(ㅜㅜ) 가운데에 있는 큰 호수 아래에서 돌아나와 6~7km정도 달렸던것 같다. 그래서 나에게 이 대회는 센트럴파크 10k 풀 루프를 처음으로 완주한 경기이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이 센트럴파크에서 달리기 한 경험을 이야기할때 "지형이 험하고 경사가 많아 힘들다"는 말을 한다. 사실 지금은 브루클린에 살지만 과거에 센트럴파크 근처에서 5년 가까이 살았기 때문에(달리기를 시작하기 전이었다는것이 애석할 뿐) 나도 센트럴파크를 모르는건 아닌데, 지형이 험하다고? 경사가 있어 센트럴파크에? 라는 의문이 항상 들었다. 하지만 막상 센트럴파크를 달려보면, 험하다. 정말 험하고 정말 경사가 많다. 경사가 많다는 말은 경사도가 깎아지른듯 심하다는 뜻이 아니다. 눈에 보이지도 않을만큼의 완만한 경사가 쉼없이 반복된다는 뜻이다. 물론 눈으로 딱 봐도 언덕인 부분도 여러번 나온다. 걸어서 저 10km를 완주한다면 지형이 "험하다"고까지는 안 느꼈겠지만 달려서 저 코스를 완주하니 눈에 보이지 않아도 몸이 느끼는 아주 얕은 언덕이라도 반복적으로 나오는 것이 너무 고됐다. 자동차도 가다서다를 반복하면 연비가 나빠진다고 하듯이, 달리기도 일정한 속도로 계속 달리지 않으면 힘든데 겨우 언덕을 하나 넘었다고 생각하니 또 나오고 또 나오는 통에 마지막엔 화가 날 지경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기 자체는 막 너무 힘들어서 나 자신을 쥐어짜는 느낌은 아니었는데, 왜냐하면 너무 추워서 "춥다" 는 생각만 계속 들고 힘들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겨울철 런닝을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그 엄청나게 차가운 공기가 뜨거운 내 폐 속으로 들어오는 느낌은, 흡사 한겨울 노천탕의 매력과 같다고 할까. 들숨날숨을 변태적으로(?) 즐기다보면 어느새 5km 지점 타임 기록판을 밟게 되고, 평소 나는 10km를 뛸 때 물을 마시지 않지만 대회에 나왔으니 한번쯤은 물을 마시고 종이컵을 멋지게 던지는 퍼포먼스도 해봐야지 싶어 급수대에서 물도 받았다. 하지만 당황스럽게도 내가 받은것은 물이 아니라 꽁꽁 언 얼음컵이었다. 기온이 영하 8도였으니 물이 어는것은 당연한데, 당황한 나머지 테이블에 쾅쾅 내려쳐 겉면의 얼음을 깨고 뜨거운 커피를 마시듯 호호 불어 한두모금을 마셨다. 이게 그날의 가장 인상적인 기억이었다. 


너무 추워서 사진도 이것밖에 못찍었다. 딱 봐도 꽁꽁 언 땅, 그리고 공원으로 들어가는 작은 터널에 생긴 고드름


이제 출발했던 지점으로 다시 돌아가기만 하면 되는데 보통 10분정도 달리면 웜업이 되어 크게 추위를 안 타게 되지만 워낙에 날씨가 날씨다보니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추웠다. 그 와중에 참 고마운 발견이라고 한다면 사람들이 많이 뭉쳐서 달리는 그룹에 끼면 조금 따뜻하다는 점이었다. 이 추운 공원에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뜨거운 숨을 내쉬며 달리고 있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체감하는 순간. 그리고 이미 레이스를 마친 참가자들이 반대편에서 걸어오며 응원을 해준다. "금방 끝나요! 다왔어! " "이게 마지막 오르막이야!" "잘하고있어!!" 


초행길을 가면 실제로 가는 거리보다 더 멀게 느껴진다는 말이 있는데 정말 맞는말이라고 이날 여러번 생각했다. 나는 예전에 센트럴파크 서쪽 (어퍼 웨스트 사이드)에 살았기 때문에 센트럴파크의 동쪽은 많이 가본적이 없는데, 5km 지점 이후로는 동쪽을 따라 쭉 달려 올라가야한다. 지금 어디쯤인지, 앞으로 얼마나 더 가면 끝인지를 잘 모르는 상태로 왼발 앞으로 오른발 앞으로를 반복하는것은 정말로 지루하고 어떤 의미에선 조금 공포스러운 경험이다. 시내에서 달린다면 도로 표지판을 보고 몇가쯤 되었으니 앞으로 몇블럭만 가면 되겠군 하는 계산이 나온다마는, 공원 내에는 그런것이 없으니 망망한 바다에 혼자 떠있는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유일하게 의지가 되는것은 1km에 한번씩 찍히는 시계의 거리표시였다. 방금전에 확인하고도 또 시계를 들여다보게 된다. 페이스는 내 기준으로 나쁘지 않은 편이었다. 나는 운동을 평생에 해본적이 없고, 달리기도 어쩌다보니 시작하게 된 케이스인데다, 딴건 몰라도 몸이 힘들면 바로 포기하는 타입이라 목표치가 높지 않다. 이번 대회의 목표는 10km를 1시간 이내에 완주하는 것. 사실 그걸 위해 지난 4개월동안 앱이 제공하는 프로그램대로 트레이닝도 했다. 하지만 크리스마스 연휴기간에 코로나에 걸렸고, 당연히 달리기도 못했고 폐활량에 조금 손상도 입어 1시간이라는 목표는 진작에 물건너 간 것 같았다. 그래도 "대회 바이브"라는 것이 분명히 있어서, 남들이 뛰는 속도에 나도모르게 말리다보면 평소보다 조금 더 잘 뛰게 되는것도 사실이다. 이대로라면 1시간 이내에 골인 할 수 있을것도 같았다. 7km, 8km, 9km... 점점 다가온다. 그리고 마지막 10번째 비프음이 울리면서 시계에 피니쉬가 뜬 순간.


야속하게도 피니쉬라인은 아직 보이지도 않아....

나는 가민 워치를 사용하는데 GPS라는것이 원래 오차가 있다는것은 충분히 숙지하고 있지만 대회를 나가면 늘 시계가 몇백미터 정도 거리가 더 나오고 이게 은근히 엄청나게 야속하다. 시계에 찍힌 10k 기록은 1시간 6초(!! 급수대에서 얼음만 안 깼어도...) 그리고 피니쉬라인은 왼쪽 샛길로 한참 들어가야 해서 당장 보이지도 않는다. 사람 마음이라는게 간사해서 시계가 이미 10Km를 다 뛰었다고 하니 갑자기 힘이 쑥 빠진다. 그 마지막 200~300m가 지금까지 달려온 10km보다 멀다. 조금은 짜증난 얼굴로 피니쉬라인을 통과한다. 


그리고 또! 가방의 저주가 덮쳐와서 이번엔 가방을 찾기 위해 또 긴 줄에 서서 기다리는 대 참사를 겪게 되었다. 달리기 전에도 추웠지만, 이젠 땀이 식기 시작하면서 더 추웠다. 내가 두번다시 달리기 대회에 가방을 가져오나 봐라 다짐하고 또 다짐한 대회였다. 그렇게 기다려 찾은 가방 속 생수 한병이 꽁꽁 얼어있었던 것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춥다로 시작해 춥다로 끝난 1월 첫 경기, 조 클레이너먼 10K 대회였다. 

엠블럼부터가 추운 느낌이 팍팍 나는, 쌓인 눈 위의 10K 마크. 이 엠블럼이 박힌 흰색 긴팔 티셔츠가 제공되었다. 드라이핏이라서, 1월~2월엔 입고 나갈 엄두도 안나는 옷이지만 어쨌든 받았다.

바로 다음날 NYRR이 아닌 NYCRUNS가 같은 센트럴파크에서 주최한 대회는 대회 이름부터가 [프로즌펭귄]이었다. ㅋㅋ 뉴욕에서 1월에 열리는 경기는 웬만하면 신청을 하지 말자는 교훈, 그리고 다시한번 강조하지만 아무리 멀리 가도 가방은 갖고가지 말자는 교훈 얻으면서.



내 예전 10K 기록이 1:01:14 였는데 ㅠㅠ 단 3초를 줄였다는 결과와 함께

2022년 9+1 챌린지의 첫 경기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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