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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님에미 Aug 11. 2020

작고 여린 것을 지키고 싶은 마음

모성애의 진실


아이를 키우며 내가 미쳤구나 싶었던 순간, 베스트 3.


첫 번째, 모유만 먹는 딸의 아기똥풀꽃 샛노랑 똥을 보면서 생각했습니다.


‘카레 맛일까?’


두 번째는 한 시간 넘게 보채다가 간신히 잠든 아기를 보면서 너무나 사랑스러워 깨워서 웃는 걸 보고 싶다고 생각한 순간.


세 번째는? 딸아이는 엄마가 화장실에 들어가 문을 닫는 것을 유난히 무서워했어요. 같이 들어가거나, 문을 열고 볼일을 봐야 했는데 언젠가는 후배가 놀러 왔다가 제 모습을 보고는 질겁해서 자기는 절대로 아이를 못 낳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던 어느 날, 첫째가 제가 화장실에 가도 순순히 보내주었습니다. 화장실에서 무심코 ‘이제 둘째를 낳아도 되겠어’ 생각하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내가 미쳤구나, 하나 있는 아이도 이렇게 감당하지 못하면서 둘째라고오오? 결국 저는 둘째 아이를 낳았습니다. 미쳤어, 미쳤어~.




결혼하기 전, 한 번도 아기가 예쁘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기에(귀찮고 시끄럽다고 생각한 적이 훨씬 더 많았답니다!) 임신 기간 내내 나처럼 모성애가 없는 사람이 엄마가 될 수 있을까 무서웠습니다. 아이를 낳고서야 알았습니다. 모성애는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아이를 키우면서 만들어진다는 것을요. 금방 태어나 퉁퉁 부은 아기를 보면서 신기하긴 하지만 괴상하다고 생각했던 제가 똥을 찍어 먹어보고 싶다고 생각할 정도로 사랑에 빠질 줄이야 누가 알았겠습니까?



낮밤이 바뀐 아기를 돌보느라 힘든 순간을 겪으면서, ‘내가 왜 아이를 낳았을까, 나 같은 건 엄마도 아니야’ 자책하는 시간들을 지나면서 어느 순간 깨달았습니다. 어느새 내가 내 아이뿐만 아니라 어리고 약한, 세상 모든 것들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 있다는 것을요. 모성애는 구체적인 내 아이에 대한 감정에서 세상으로 번져나간다는 것을요.


모성애는 자연스럽게 생기지만, 그냥 생기는 것이 아니라 어려움을 겪고 이겨내는 작은 순간들이 모여서, 때론 체념과 슬픔이 모여서 생긴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세상 사는 게 다 그렇지”라며 마냥 시큰둥했던 제가 엄마가 되고 나서 처음으로 뉴스를 보면서 울기 시작했습니다. 머나먼 나라의 전쟁 뉴스를 들으면서 얼핏 지나간 화면에 비친 아이들 때문에 눈물이 나고, 텔레비전 프로그램 사이에 하는 이웃돕기 캠페인을 보면서 대성통곡을 하기도 합니다.


엘리베이터에서 처음 본 아기와 눈이 마주치면 웃음을 짓거나, 생판 모르는 아기 엄마에게 “몇 개월이에요?” 물어볼 때, 식당에서 우는 아기 소리가 시끄럽기보다 ‘왜 우는 걸까?’ 걱정되는 순간. 길 가는 아이도 달리 보이고, 이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이 걱정되어 일회용품을 쓸 때마다 문득 망설이게 될 때. 엄마가 되기 전과 후의 제가 얼마나 달라졌나를 생각합니다.


제가 살아가는 세상도 달라졌습니다. 더 마음 아픈 일이 많고, 더 사랑할 것이 많은 세상. 훨씬 더 깊고 다채로운 색깔의 세상입니다.





『엄마와 복숭아』(유혜율 글, 이고은 그림/후즈갓마이테일)에도 엄마가 나옵니다. 향긋한 복숭아를 바구니에 담고 아기를 만나러 오래된 숲으로 가는 사람 엄마 앞에 으르렁대는 엄마 사자가 나타납니다. 


너를 잡아먹어야겠어!
나는 배가 고프거든.
배 속에 있는 조그만 아기 사자들과 함께 먹어야 하니까
두 배로 배가 고프지.
뜨거운 태양이라도 꿀꺽 삼킬 정도야!



엄마는 다리가 덜덜 떨리지만, 용기를 내어 말합니다.



쉿!
그렇게 무서운 말을 하면
우리 아기들이 깜짝 놀라잖아.



그리고 함께 복숭아를 나눠 먹지요. 그새 엄마 사자는 눈빛이 순해집니다. 사람 엄마가 원래 용감한 것이 아니라 다리가 덜덜 떨리는 데도 애써 말하는 장면, '내 아기가 놀라잖아'가 아니라 '우리 아기들이 놀란다'고 사자네 아기까지 같이 걱정해주는 대목에서 제 콧등이 찡했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용기를 내어가며, 내 아기뿐만 아니라 서로 아기의 엄마가 되어가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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