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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님에미 Aug 11. 2020

세상에서 가장 멀어지고 싶지 않은 타인

아이와 나 사이, 적당한 거리





임신 기간 동안 뱃속에서 꿈틀대는 아이를 느끼면서, 기분이 아득해지는 순간이 있었습니다. 어쩌면 이 아이는 나와 성별도 다르고, 혈액형도 다를 텐데, 그런 존재와 내가 한 몸이라니! 행여나 수혈할 때 혈액형이 다른 피가 섞일까 봐 자동차 뒷창에 혈액형을 써놓을 정도로 민감한 문제인데, 아예 혈액형이 다른 사람이 나의 몸속에 있는데도 멀쩡하다니! 타인과 느끼는 일체감 중에 이보다 진한 것이 있을까요? 얼굴 한 번 보기도 전에 이토록 사랑해버린 타인, 아니 어떻게 이토록 한 몸인데 타인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제가 생각해도 무서울 만큼 사랑에 빠져버린 제게, 그래도 자식과 ‘적당한 거리’를 두어야만 한다고 아기가 스스로 말해왔습니다. 한창 아기가 꿈틀대는 주수일 때, 배 한쪽에 손을 얹고 텔레파시를 힘껏 보내보았어요. 큰소리로 말해보기도 했습니다. “여길 쳐! 여길 쳐봐. 발로 뻥 차봐!” 어떤 날은 용케 제 말을 알아들었는지, 발을 제 손바닥에 쓰윽 밀어주었지만 대부분은 들은 척 만 척했습니다.



‘이렇게 쬐그마한 아이가 자기 맘대로 하네.’


실망스럽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더라고요. 그렇게 뱃속에서 아이는 제 맘대로 자랐고 저는 확실하게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아, 이 아이는, 내 소유가 아니구나. 온전한 자기 자신이구나!


저는 아이가 내 말을 듣지 않아서 속상해하는 경우가 다른 엄마들보다 확연하게 적은 편인데요, 어떻게 그렇게 ‘쿨 하게’ 아이의 생각을 인정하느냐고 묻는 이웃들에게 늘 이렇게 대답합니다.


“내 뜻대로 되는 남이 있던가요? 내 뱃속에 있을 때도 내 맘대로 된 적이 없던 타인인걸요.”


덕분에 우리는 동네에서 소문난 사이 좋은 엄마와 아이들입니다. 서로 마음대로 할 수 없는 타인이라는 것을뱃속에서부터 인정했기 때문에요.


저는 가끔 툴툴거립니다. “느네가 엄마 몸에서 칼슘 다 빼가는 바람에 애 둘 낳은 후 엄마 이가 얼마나 약해졌는지 알아? 엄마 몸에서 좋은 거 다 가져가놓고선 자기 혼자 큰 줄 아네.”


하지만 늘 고맙습니다. 제가 임신 기간 동안 제대로 챙겨 먹지도 못하고, 좋은 태교를 하지도 못했는데 엄마 사정 봐주지 않고 자기 것 챙겨가며 쑥쑥 자라준 아이들이 고맙습니다.





노인경 작가의 『숨』(문학동네)을 보노라면 우리가 완전한 자아이면서도 하나이던 시절이 생각납니다. 양수를 떠올리게 하는 물속에서 편안하고 행복하게 헤엄치는 한 가족의 모습이 엄마 뱃속의 순간을 너무나 잘 전해주네요.


“넌 엄마 뱃속에선 콩만 한 점이었어.”

“다시 들어갈 순 없겠다. 너무 커져서.”

“뱃속에서 답답하지 않았어?”
“아니. 재미있는 것 많았어.”


아이와 부모가 헤엄치며 서로의 숨이, 쉼이 되어주는 관계를 만듭니다. 우리가 아이를 낳는 것 같아도, 아이가 부모를 낳는다는 걸 아이 키운 지 20년이 되어가니 조금씩 깨닫게 됩니다.





세상에서 가장 멀어지고 싶지 않은 타인을 품고 있는 귀한 임산부들에게 응원을 보냅니다. 내 안에 있으나 내소유가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이며, 우리는 부모가 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아기뿐만이 아닙니다. 우리 역시 누구의 것도 아닌, 우리 자신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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