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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님에미 Aug 11. 2020

매일이 모험인 삶이 있다면

아이와 함께하는 여행 그리고 일상






아이들과 함께하는 여행은 어른끼리 다니는 여행과 어떻게 다를까요? 저희 집 아이들의 첫 번째 해외 여행은 늘 생후 23개월 때였습니다. 24개월부터는 한 사람 몫의 비행기 값을 지불해야 하기에, 키울 수 있는 만큼 키우되 비행기값은 10퍼센트만 내도 되는 23개월에 여행을 떠났거든요. 첫째는 싱가포르에서, 둘째는 뉴욕에서 두 돌 생일을 맞았습니 다.


뉴욕에 갈 때 둘째 꽃봉이야 23개월이니 어쩔 수 없었지만, 일곱 살 누나 꽃님이는 뉴욕에 관한 그림책을 잔뜩 읽고 갔습니다. <배트맨>, <나 홀로 집에2> 등 뉴욕이 배경인 영화도 몇 편이나 보았습니다. 뉴욕에 대해 아는 것이 좀 있으면, “아, 여기!” 하고 그곳을 여행하는 감회가 남달라질 것 같아서요. 런던에 갔다면 <해리 포터>를 보았겠지요.





하지만 꽃님이는 뉴욕 플라자 호텔에서 “여기가 엘로이즈가 사는 곳이구나! 우와, 내가 여기에 실제로 와 있다니”라고 감동하기는커녕 어느 책에서 봤는지 기억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대신 여행에서 돌아온 후에 그 책을 보면서 “우와, 여기는 내가 갔었던 플라자 호텔이잖아!”라고 놀라더라고요.


그때서야 깨달았습니다. 아, 아이들은 자기가 주인공이구나. 남 때문에 어떤 곳에 의미가 부여되는 것이 아니라, 기준이 ‘나’구나! 어떤 장소가 의미를 갖는 것이 유명인, 유명작품 때문이 아니라 나 때문이라니!


그 후로는 여행지에 대해서 특별히 미리 알려주려고 애쓰지 않습니다. 그래도 아이들은 여행의 경험을 하나도 허투루 흘리지 않고, 자신의 세계를 넓히는 바탕으로 잘 써먹곤 하더라고요. 


여행지에서도 아이들은 어른과 다른 시각으로 여행을 합니다. 어른들은 유명한 곳, 이국적인 곳을 좋아하지만 아이들이 여행길에서 좋아하는 것은 의외로 표지판, 우리 동네와 다른 신호등 모양, 그런 것들이랍니다. 아직 아이들은 ‘이국적’이라는 느낌을 가질 만한 기존의 일상에 대한 관념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낯선 이국의 사원에는 관심 없고, 그 앞에서 흙을 파고, 개미를 보느라 넋을 잃어서 부모에게 본전 생각이 나게 하지요. 그래서 좋기도 합니다. 해외 여행을 안 가도 별 상관없거든요. 매일 일상이 모험이요, 여행인 아이들에겐 동네 큰길가만 해도 멋진 여행지니까 말이에요.



『어떤 약속』(마리 도를레앙 글, 그림/JEI재능교육)도 일상을 낯설게, 마치 여행을 온 것처럼 느끼게 하는 데에는 최고입니다. 한밤중, 자고 있는 아이들을 엄마가 깨웁니다.


“얘들아, 우리는 약속이 있잖아?”


아이들과 부모는 한밤중 숲속으로 달빛을 느끼러 갑니다. 어두워서 더욱 더 빛에 민감해지는 그림책입니다. 검게만 보이는 밤하늘이 사실은 얼마나 푸른빛으로 빛나고 있는지, 멀리 지나가는 기차의 불빛은 얼마나 처연한지, 밥상에 쏟은 깨알처럼 수수하면서도 가득한 별빛은 얼마나 마음속 깊이 박히는지요.


마지막 장을 펴면, 눈이 부십니다. 아마 아이가 태어나면 이런 일상을 살게 되겠지요. 멀리 가지 못하지만, 일상을 낯설게 보면서 그 안의 보석 같은 순간들을 발견해내는 것. 그러기까지 물론 이 책 속의 가족처럼 높은 산을 오르느라 힘들고 숨찬 시간들을 견뎌야겠지요. 하지만 괜찮아요. 솟아오르는 아침 해를 보기까지, 깊은 밤을 걸어야 하더라도 우리는, 잠시라도 놀이를 멈추지 않는, 가족이니까요.





아이와 함께 사는 일상은 모든 것이 달라지고, 또 모든 것이 달라지지 않습니다. 여행과 똑같아요. 매일 새로운 일이 벌어지고, 그 안에서 우리는 배웁니다. 원래 여행은 최고의 학교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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