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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님에미 Aug 11. 2020

내가 곰이 되어도 사랑할 거야?

임신한 아내를 위한 남편의 말 공부





연예인들은 임신을 해도 배만 뽈록하게 나오던데, 저는 배보다 등이 먼저 투실투실 둥그래졌어요. 임신 기간 동안 배가 트는 것이야 그렇다 쳐도 엉덩이와 허벅지는 왜 튼 걸까요? 그래도 사실은 좋았습니다. 평생 이렇게 다이어트 걱정 없이 먹고 싶은 것 다 먹고, 눕고 싶은 대로 다 누워도 되는 때가 오다니요. 물론 적당한 운동을 해야 한다지만 평소 느끼던 다이어트 죄책감에 비하면 이건 아무것도 아니지요! 고맙다, 아가야!


하지만 어느 날 배꼽이 불룩 튀어나왔을 때의 느낌은 잊을 수가 없습니다. 태어나 처음 보는 제 배꼽의 끝을 하염없이 내려다보다 깨달았지요. 아, 내 발가락이 보이지 않는군. 임신으로 인한 몸의 변화를 제법 즐기고 있던 저로서도 어쩐지 슬픈 아침이었습니다. 튀어나온 배꼽 옆에 난데없이 긴 털 하나가 있어서 더 낯설고도 슬펐습니다.





“그래서, 내가 이렇게 한 마리 곰같이 변했어도 사랑하느냐고 물었어.”

운 좋게도 저는 같은 개월 수의 임산부 친구가 두 명이나 있었어요. 친구 남편의 대답은 이랬대요.


“곰이면 괜찮게? 돼지랄까.”

그날 돼지곰의 손바닥 스매싱 맛을 보여주었다더군요.

다른 친구는 펑펑 울었습니다.


“희망이(친구 아가의 태명) 아빠는 내가 비록 이렇게 뚱뚱해졌어도 날 사랑한다더라.”

사랑한다는데 왜 울었냐고요?


“‘비록 뚱뚱해졌어도’라고 하잖아! ‘비록’이라니. 내가 뚱뚱하다는 얘기잖아!”

친구야, 우리는 뚱뚱해진 것 맞거든. 호르몬의 파도 위에서 감정기복이 심했던 세 임산부들은 퉁퉁 부은 발을 서로 주물러주며 남편 흉을 보았습니다. 



나중에서야 이 그림책을 보았습니다. 『행복한 질문』(오나 리 유코 글, 그림/북극곰). 여자가 자꾸 남자에게 묻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까 내가 시커먼 곰으로 변한 거야. 그럼 당신은 어떡할 거야?”
“그야... 깜짝 놀라겠지. 그리고 애원하지 않을까? 「제발 나를 잡아먹지는 말아줘.」 그런 다음 아침밥으로 뭘 먹고 싶은지 물어볼 것 같아. 당연히 꿀이 좋겠지?” 


“그럼 당신이 눈을 뜨니까 내가 작은 벌레로 변해서 당신 코 위에 앉아 있는 거야. 그러면 어떡할 건데?”

“아하! 여행을 떠나면 되겠다. 비용이 반으로 줄 테니 말이야. 당신을 위해 작고 예쁜 침대도 만들어줄게. 그리고 살며시 입 맞추는 연습도 해야겠다. 행여나 당신이 다치면 안 되니까.”


임신한 아내가 두툼한 팔로, 잔뜩 여드름 난 얼굴로 변한 자기 몸 때문에 속상해하고 짜증내거나 걱정할 때, 남편은 어떻게 대답해야 하는지 모범답안이 여기 있네요! 남편을 시험하지 말고 진작 읽어주고 가르칠걸 그랬어요. 그러곤 말해줄걸 그랬어요.


“센스꽝 농담만 해대는 남편이라서, 당신을 더, 더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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