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 마음 안에도, 목 안에도 응어리가 잡히는 것 같을 때는, 시장에 가서 도라지를 한 움큼 사 온다.
소금을 문질러 빡빡빡- 씻는다. 도라지에 묻은 불순물과 함께 내 마음의 응어리도 털어져 나가 저 하수구 밑으로 씻겨 내려가는 듯하다. 몸과 손가락을 바지런하게 움직여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 중 하나를 만들어 내는 그때는, 그 과정에서부터 개운함과 쾌감이 함께한다.
도라지와 찰떡궁합인 오이 친구도 반달 모양으로 썰어낸다. 두꺼운 반달 모양- 얇은 반달 모양-. 랄라라. 환경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친환경 고춧가루로 함께 만들고, 겨울 내내 정성껏 숙성시킨, 나만의 고추장을 베란다에서 한 숟갈 가득- 아낌없이 꺼내온다.
간장, 물엿, 다진 마늘, 식초,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챔기름! (참기름은 챔~기름이라고 발음하면, 정말 그 고소한 냄새가 더 응축되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서, 나는 주로 챔기름이라고 부른다!).
갖은양념들을 넣고 조물조물 버무려 내면, 나의 최애 반찬, 도라지 무침 완성!!!!!
도라지 무침은 라면에 곁들여도 맛나고, 흰밥에 김가루 넣고 도라지 무침 넣고 쓱쓱- 비벼 먹어도 맛나고, 살짝 간이 약하게 무쳐내서 두부랑 같이 막걸리 안주로도 아주 그만이다.
아, 침 고여.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먹고 싶다. 나의 사랑 도라지.
도라지- 라는 이름조차 정말 귀엽지 않은가, 하고 생각한다. 대한민국에는 세 글자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주로 살고 있다. 그래서 세 글자로 이루어진 발음이 예쁜 단어를 마주할 때면, 나는 늘 그것을 의인화시키고 싶어 진다. 어쩐지 ‘라지야-’ 하고 부르고 싶어 지면서, 다정한 느낌이 드는 것이다. 게다가 한국에는 도 씨 성을 가진 사람들이 실제로 존재하고, 뭔가 도라지 씨는 새침하고 도도하고, 쿨하고 개운한 성격일 것만 같다. 첫인상은 쓴 것 같은데, 자꾸 만나다 보면 사실은 너무나 맘이 여리고 정이 많고 그만이 가진 향이 있어서, 빠져나오기 힘든, 날카롭되 말랑말랑한 그런 매력의 사람일 것만 같다.
나의 변태스러운 취미 중 하나는 좋아하는 말들의 어원이나 옛말 탐구인데, 현대에 쓰이는 ‘도라지’의 옛말은 ‘도랒’이었다고 한다. 15세기에는 주로 ‘도랒’으로 문헌에 표기하였고, 17세기에 ‘도라 차’라고 하여 도랒 차를 기록하였으며, 19세기부터 ‘도랒’에 품사를 바꾸지 않는 접미사 ‘-이’가 결합하여 지금처럼 ‘도라지’가 되었다고 한다. (네이버 백과 참고)
21세기에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는, 도라지의 옛말을 듣고 웃지 않을 수가 없다. 몇 년 전부터 젊은 사람들 사이에 특히 많이 쓰이는 신조어 ‘도랏’이 생각나기 때문이다. 주로 미쳤냐, 돌았냐, 라는 의미로 재미있게 말할 때 쓰이는 단어이다.
라임을 만들기 좋아하는 한국 사람들 특성을 결합하여, 도라지를 사랑하는 소모임을 만든다면 역시 그 이름은 <도랒에 도랏>이 좋겠다는 상상을 한다. 한 번쯤 만들어 보고 싶은 소모임이긴 한데, 과연 얼마나 회원 모집이 되려나.
도라지를 사랑하고, 말장난을 좋아하고,
무엇에라도 한 번쯤은 돌 수 있는 사람들이 들어왔으면 재밌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아무래도 도라지는 마치 가지처럼, 어린 사람보다는 나이 들어서 점점 더 좋아지는 음식과 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늙어서 요양원에 가게 된다면 만들어 볼까나. 모임을 만들어서 각종 도라지 요리를 함께 해 먹는 상상을 하면, 생각만 해도, 맛있고, 재밌겠다.
사실 이 글은 어젯밤 도라지 무침을 먹으면서 생각한 것과 대화들이 퍼져서 시작되었다. 나는 정말로 경제적으로 허락하는 한, 도라지를 많이 먹으려고 하는 도라지 욕심꾼인데, 어제는 하루 종일 모든 음식을 먹을 때 도라지를 곁들여 먹었다.
일단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 않고 맛있고, 목 건강 및 진해거담에도 좋은 음식이니, 미세먼지가 심했던 서울의 봄날에는 제격인 음식이라, 좀 더 열심히 먹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옆에서 지켜보던 가족이 말했다.
" 너처럼 도라지 많이 먹으면, 위부터 도라지로 가득 차고,
그다음에는 온몸이 정말 도라지가 될 것만 같아. “ ‘
” 푸하하. 진짜? 근데 나- 정말로, 나쁘지 않아. 도라지가 되고 싶어. 뿌리까지 이렇게 사랑받고, 또 여름에 피는 흰색과 보라색 꽃은 얼마나 예쁘다고? 이거 봐, 사진. 예쁘지? 내가 이 두 가지 색 꽃도, 정말 사랑하는 것, 알지? “
“ 못 산다- 그래, 네가 어느 날 느닷없이 도라지가 되어 버리거나, 혹은 죽으면 땅에 묻어서 도라지가 되도록 기도해줄게! ”
“ 와우, 진짜 고마워. 그 말, 잊지 않을게. 고마워! 고마워!!! ”
신기하게도, 느닷없이 도라지를 먹다가 죽음이 친근하게 느껴진 날이었다.
그래, 죽어서 다시 어떤 동물로 태어나는 일은 너무 무서운데, 도라지로 태어나는 건 괜찮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