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사장의 그 얼굴 >

by 톨슈


6월의 어느 날이었다. 후드득후드득 떨어지는 빗줄기 옆으로 초록 산이 잔망스럽게 익어가고 있었다. 그녀는 작은 주방에서 아파트 5일장에서 사 온 뼈다귀 해장국 봉지를 꺼냈다. 3인분에 12000원. 가게에서 사 먹는 것과 비교하면 뼛덩이도 작고 살코기도 덜 붙어있다 해도, 충분히 합리적이고 납득이 가는 가격이었다. 가성비가 좋았다. 뚝배기채로 가게에서 먹는 뜨끈한 뼈 해장국을 떠올려보면 더욱 침이 꼴깍 넘어갔지만, 그녀는 혼자서 편안하게 푸짐히 먹을 수 있는 안락함과 합리성을 택했다.


집에 있는 것 중 제일 커다란 대접에 뼈해장국의 반 통을 덜었다. 그녀는 매사에 효율을 중요시하는 사람이었다. 친구들 사이에서 그녀의 별명이 김합리일 정도였다. 그녀는 가성비가 떨어지는 소비를 싫어했고, 계획한 일이 자신이 용인 가능한 범위로 굴러가는 일상을 사랑했다.


팔팔 끓인 뼈 해장국을 한 스푼 떠서 국물을 맛보았다. 뜨겁고 빨간 국물이 그녀의 목구멍을 지나 위장을 덥혔다. 순간, 그녀는 확 하고 다가오는 열기에 어지러움을 느꼈다. 환기가 필요해. 창가에 맺히는 빗줄기를 보며 그녀는 창문을 반쯤 열었다. 습했다. 오늘도 어제처럼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었다. 비를 보며 해장국을 먹고 있자니 어느새 그녀의 몸에는 점점 더 습기가 더해졌다. 몸의 온도는 먹을 것이 들어와 조금씩 조금씩 더 올랐다. 술은 안 마셨지만 마치 소주를 한 병 마신 것처럼 얼굴이 화끈거리는 것 같았다.


이내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힐 때쯤, 그녀는 큰 대접 한 그릇을 싹 비웠다. 그녀는 다시 한번 생각했다. 오늘은 유독 덥고 습한 날이라고. 이번 여름에는 제습기를 구매해야 할까 잠시 생각했지만, 공간을 차지하는 것과 가격을 생각했을 때 합리적이지 않은 선택이라고 느꼈다. 그녀는 자신만의 원칙을 지키며 무언가를 선택하고 결정하는 그녀의 삶이 만족스러웠다. 정교하게 잘 짜인 편물 같은 인생이었다.


오늘따라 그런 생각을 하는 그녀의 이마가 조금 더 뜨거운 것 같기는 했다. 왜 이렇게 덥지? 그녀는 읊조렸지만 응답해주는 이는 없었다.

오직 그녀가 잡고 있던 숟가락만이 그녀가 평소와 다름을 눈치채고 있었다.





몸의 허기가 채워지니 정신적 허기가 달리는 걸까. 그녀는 문득 어제 공사장에서 본 남자를 생각했다. 아니 사실은 창밖의 비를 보는 시늉을 했을 뿐, 밥을 먹는 내내 그의 모습을 떠올렸다. 전날 오후 6시. 여름이 다가오는 푸른 내음과 함께 동네에는 갑작스럽게 소나기가 쏟아졌다.


동네 신축 건물 공사현장에도 비가 대차게 내렸다. 여자는 도서관에 가는 길이었다. 혼자 남아 남은 자재를 정리하는 듯 보이던 한 남자가 공사장의 정문 가까이로 모습을 드러냈다. 남자는 정문 바로 앞 컨테이너 박스로 물건을 옮기는 듯했다. 옆 건물 도서관으로 들어가려던 여자는 무심코 나타난 그의 존재에 공사장 앞에서 자신도 모르게 걸음을 멈췄다. 그는 무거워 보이는 장비를 들고 있었음에도 천천히 꿋꿋이 걷고 있었다. 무섭게 꽂히는 빗줄기 따위는 자신에게 아무 해도 입히지 못한다는 듯, 걸어가는 남자의 표정이 덤덤했다. 안전모 아래로 얼핏 비추는 그의 표정은 방향을 달리 보면 무언가 결심을 한 듯, 결연하기도 했다. 비가 오는데 우산도 안 쓴 그의 걸음걸이는 보통보다 빠르지 않았다. 오히려 느리다고 표현하는 게 맞을 터였다. 내리는 비를 한 방울 한 방울 다 놓치지 않고 맞겠다는 결심이라도 한 걸까, 여자는 그가 궁금했다.


그의 걷는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새까맣게 그을린 팔뚝. 노동으로 다져진 딱 벌어진 어깨. 단단해 보이는 그의 가슴팍과 종아리가 서서히 앞으로 뒤로 흔들렸다. 기다란 나무토막을 든 하얀 장갑 위로 드러난 그의 핏줄 서너 줄이 그녀의 마음속 어딘가에 각인되었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나이를 정확히 가늠하기 힘든 얼굴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나이가 많아 보이지는 않았다. 그녀와 비슷한 또래이거나 그녀보다 두어 살 적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의 난해한 것들을 꽤나 통과해온 사람처럼, 그의 눈빛에서는 체념과 회한이 느껴졌다. 그래서일까.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체념이 가득한 앙다문 입술 사이로 무언가를 말하고 싶어 하는 게 느껴졌다. 도톰한 입술과 매끈한 코를 타고 무언가 그녀만이 알아들을 수 있는 이야기가 새어 나올 듯했다.


적당히 그을린 피부에 작고도 날렵한 얼굴. 세상의 평범한 기준으로 봐도 볼수록 잘 생긴 편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녀가 더 자세히 남자의 얼굴을 응시하려는 찰나, 남자는 얼굴을 반대 방향으로 돌렸다. 아- 여자는 아쉬웠다. 할 수만 있다면 빗방울인지 땀방울인지 모를 그의 얼굴에 맺힌 물방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그녀의 머릿속을 스쳤다. 대롱대롱 그의 얼굴에 매달려 그의 피부 냄새를 맡고, 그 얼굴의 끈적함 감촉을 느껴보고 싶었다. 잠시였지만 어디선가 본 듯한 얼굴 같았다. 아니 어쩌면, 여자가 늘 보고 싶어 했던 얼굴 같았다. 그 순간, 그녀의 심장 소리가 그녀 자신의 귓가에도 리드미컬하게 드럼 소리처럼 울렸다.




어제를 회상하던 그녀의 마음 어딘가에서 툭- 하고 댐이 터진다. 그녀의 심장이 뇌를 이기고 무언가를 결심하는 떨림을 느낄 수 있었다. 시계를 보았다. 5시 55분. 그는 오늘도 이 가느다란 비를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맞고 있을까. 세상의 슬픔을 다 씹어먹은 매력적인 얼굴로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해내고 있을까.


어디서 나왔을지 모를 욕망이 그녀의 마음속에서 꿈틀거렸다. 그의 얼굴을 한 번 더 보고 싶다. 괜찮다면 달려가 그의 얼굴을 양손으로 부여잡고 그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었다. 그녀는 그릇을 설거지통에 내던지면서 서둘러 슬리퍼에 발을 끼워 넣었다. 그가 보고 싶다. 오로지 그녀의 머릿속은 그 생각으로 가득 찼다.



철컥 -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 위로 한 여자가 뛰어가는 소리가 겹쳐졌다.


그것은 그녀의 인생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일, 가장 비합리적인 행동이었다.









PS.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자신의 이상형의 얼굴이란 것을 상상해봅니다. 그러나 어떤 연예인들의 이름을 두어 개 언급하며 그 이미지를 대략적으로나마 표현할 수 있을 따름이죠. 자신의 이상형과 완벽히 일치하는 듯한 소름 끼치는 얼굴을 실제로 마주한 자가 세상에 몇이나 될까요? 그녀는 그 여름, 그 얼굴을 공사장에서 만났을 거라 믿어요. 부러워라. 소나기가 오고, 공사장을 지나는데 저에게는 이런 상상과 꿈이 스미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