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하고 싶은 일만 하며 살고 있나?
2023년 12월 29일 금요일
맞아, 참 행복한 2023년이었지.
치앙마이 두달살기가 끝나갈 무렵은 2023년의 끝자락이었다. 한국에 살았다면 친구들과의 약속, 길거리 크리스마스 장식들과 연신 울려 퍼지는 캐럴덕에 연말느낌이 났을 테지만, 12월의 해가 쨍쨍한 태국에서는 대형 크리스마스트리를 봐도 연말 느낌이 도무지 나질 않았다. 마음이 뒤숭숭하던 참에 집 앞 쇼핑몰 광장에서 12월 31일 새해맞이 카운트다운 행사가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됐다. 쇼핑몰까지 불과 5분 거리였기 때문에 우리는 8주년 기념으로 산 커플 잠옷을 입고 행사장으로 향했다.
쇼핑몰 앞 넓은 광장에는 23년의 마지막을 조금이라도 붙잡아보기 위해 모인 사람들로 북적였다. 사람들의 마음을 음식으로 달래주기 위한 노천 상점은 다 둘러볼 수 없을 만큼 많았다. 우리는 이미 배부른 상태였지만 뭐라도 먹으면서 이 시간을 붙잡아보기로 했다. 기나긴 대기 끝에 꼬치와 쏨땀, 맥주를 샀다. 하지만 테이블 역시 모두 만석. 하는 수 없이 근처 길바닥에 앉았다. 그렇게 태국 치앙마이 한 쇼핑몰 야외 바닥에 앉아 북적거리는 사람들 속에서 쏨땀과 맥주를 마시며 우리의 하고 싶은 일하며 살기 5개월간의 여정을 돌아봤다.
먼저 짝꿍의 5개월을 돌아보자. 짝꿍의 퇴사 후 하고 싶은 일은 '쓰고 싶은 글을 마음껏 쓰며 돈 벌기'였다. 주로 두 가지 카테고리의 글을 썼는데 첫 번째가 IT 테크, 두 번째가 커리어다.
처음에는 브런치와 같은 플랫폼에 테크 관련 글을 올렸다. 그러다 하나 둘 기고 제안을 받았고 덕분에 매달 정기적으로 연재하는 기고처들이 생겼다. 글로 돈 벌기 그리 어렵지 않다는 생각을 하던 즘에 한 기고처와 계약이 종료되었다. 짝꿍은 기고처와의 첫 이별을 겪고 약간 힘들어했던 것 같았다. 하지만 그때 일을 계기로 자신만의 연재처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지금은 IT 뉴스레터를 직접 만들어 발행하고 있다. 세상에 나쁘기만 한 일은 없다고 했지 않던가. 뉴스레터 발행은 짝꿍의 '쓰고 싶은 글로 돈 벌기' 여정을 단축시켜 주고 있다.
짝꿍은 테크 관련 글을 쓰기 이전부터 커리어 상담 오픈 채팅방을 운영하고 있었다. 자신이 경험한 이직 노하우를 가지고 무료 상담을 해주었다. 짝꿍의 진심이 통했는지 오픈 채팅방에는 사람들이 점점 모였고 덕분에 온라인으로 이력서 첨삭과 이직 과정을 돕는 이직 챌린지 모임을 진행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커리어 관련 전자책을 두 권 작성해 크몽에서 판매하고 있다. 처음엔 관련 커리어 전자책 경쟁자가 너무 많다고 생각했지만 매달 몇 권씩 팔리는 것을 보면 정말 신기하다.
짝꿍의 버킷 리스트는 중 하나가 동명이인 중 가장 유명한 사람이 되는 것인데, 그 발판으로 자신의 이름을 네이버 인물 사전에도 등재했다. 짝꿍은 버킷 리스트에도 한 발짝 다가서며, 글 쓰며 돈 벌겠다는 자신의 하고 싶은 일을 완벽하게 해내고 있다.
나의 퇴사 후 하고 싶은 일은 말 그대로 '하고 싶은 일만 하기'였다. 하고 싶은 일 첫 번째는 하루종일 책 읽기. 그 바람대로 정말 매일 책만 읽으며 살았고 덕분에 퇴사 이후 6개월간 151권의 책을 읽었다. 독서 기록을 남기기 위해 도서 블로그를 운영했고, 뭐라도 도전해볼까 싶어 네이버 인플루언서가 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회고 열흘 후 바람대로 네이버 도서 인플루언서가 되었다.)
책을 읽기 시작하자 덩달아하고 싶은 일들이 늘어났다. 그중 하나가 '그림 그리기'였다. 그림 에세이를 워낙 좋아했던지라 나도 그려보고 싶다는 마음이 꿈틀거렸다. 초등학생 때 꿈은 화가였지만 나이가 들면서 선 하나를 그리는 것이 무서워졌다. 그래서 한참을 망설이다 용기 내 인스타 계정을 만들고 그림일기 100일 챌린지를 시작했다. (챌린지는 100일 완성 후 조금 연장해 180일로 마무리되었다.) 그림일기와 더불어 과거 기록했던 일기를 모두 모아 N 년 일기장도 만들고 있다.
책을 읽다 보니 무언가 쓰고 싶은 마음도 생겼다. 내 삶을 하나의 실로 꿰어낸 글을 쓰고 싶었다. 자연스럽게 브런치에 글을 쓰기로 했다. 브런치 작가 신청을 위해 3개의 글을 썼고 그중 하나가 이 브런치 북의 '프롤로그_ 돈이 없어서 해외에 삽니다'다. 그 글이 발판이 되어 지금까지도 주 2회 브런치 북을 열심히 연재하고 있다.(브런치에 글 20개를 올렸을 즈음 여행 크리에이터로 선정되는 신기한 일도 있었다.)
마지막으로, 나는 우리 집 재무부 장관으로서 돈 관리에도 열심이었다. 책 읽는 것을 좋아하니 책을 읽으며 투자 공부를 했다. 우리의 작고 소중한 돈을 불릴 방법을 궁리했다. 여행 초기 여러 방법을 적용한 끝에 지금은 돈이 돈을 벌어다 주는 아주 소소한 기쁨을 누리고 있다.
우리는 초보 러너가 되었다. 3km만 뛰어도 다리가 후들후들 거리던 시기를 지나 5km를 거뜬히 뛸 수 있게 되었다. 10km 마라톤을 완주하겠다는 목표를 세우며 달렸다. 더불어, 유튜브로 수영을 배웠다. 덕분에 물먹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이번 여행은 짝꿍과 나의 첫 해외여행이었는데 정말 감사하게도 서로 여행 스타일이나 삶의 패턴이 정말 잘 맞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서로의 좋은 배우자를 넘어 가장 친한 친구이자 자극이 되어주는 동료이자 든든한 여행길 동행을 얻게 되었다.
5개월간의 삶을 회고해 보니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잘 해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여행길에 올라 여러 번 방황하며 길을 잃을 뻔했으나 결국 중심을 잡고 우리를 가장 행복하게 만들어줄 삶을 선택해 나갔다. 2024년을 위한 카운트 다운을 목청껏 외친 후 집을 돌아가는 길, 우리는 생각했다.
맞아, 참 행복한 2023년이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