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들 인류는 원숭이로부터 진화했다고 배운다. 진화론을 극히 부인하는 것은 아니나, 일부의 감화로 표현하고 싶다. 종의 기원은 우주로부터 발현되었으며, 많은 민족의 시조 탄생설화에는 난생설이 많다. 오늘날로 생각해보면 캡슐을 타고 접근한 존재들이시다.
라마르크의 용불용설과 다윈의 진화론을 신뢰하는 의견을 제시하지는 않지만, 일정 부분 두 의견을 반영해보면, 신인류와 같이 새로운 유전자가 주변을 감화, 감응하여 주변도 통즉변으로 감화되었다. '리처드 도킨스'와는 다르며, 창조론도 일부 반영하였다. 자기 유전자를 잃고, 새로운 유전자에 감화되려는 이기적 유전자는 불에 달려드는 불나방 같이 퇴보•도태되어 멸종의 길을 걷는다
생물의 다양성에서 멸종은 우주의 근원 된 유전인자가 그곳과 연동하지 못하는 데 있다. 원시적 본능(이드)만을 추구하면 오히려 그러한 연동능력을 잃는다. 올바름과 전통성에 자연환경과의 교감 즉 호연지기를 키우는 화랑도 정신도 필요하다. 보이스카웃의 이점도 그러한 맥락에 있다.
함부로 교잡된 종은 유전자가 오래가지 못하고 도태• 쇠퇴하며, 멸종하는 것도 그러한 유전자가 연동할 우주 행성계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살아있는 화석과 장수하는 생물은 어떤 행생계와 연동할까? 지자기와 태양계, 별들의 리듬에 유연하게 자기의 유전자를 유지함은 근원 된 시그널에 연동하는 유전자의 우수성에 있다.
불교의 능엄경에는 오행에 대하여 언급되는데, 화생토, 토생금, 금생수, 수생목, 목생화로 상생의 기운이 발현한다. 이에는 화극금, 금극목으로 반목과 갈등, 마찰로 충돌의 개념을 내포하기도 한다. 충돌의 개념에 다른 상생의 오행이 포함되면 결함이 보충되어 화합으로 거듭난다. 유전자의 흠결이 치유되는 이치는 이에 자리한다 .
태양계에서 10개의 구성 행성은 그들만의 시그널, 픽셀, 파장을 뿜어내고 명왕성이 그 채널에 간섭을 일으켜 아름다운 태양계만의 연주를 한다. 오행의 맥은 바로 이에 있었다. 각 행성계마다 각자의 연주가 있으며, '에루화'로 표현하고 싶다. 이러한 원리에 바탕을 둔 사회경제학이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이론이다. 동시 다발의 자율성이 화합과 화목의 일관성인 일사불란으로 발전하고, 수렴과 분화를 반복하며 순환한다.
북극성의 시그널은 강요일까, 타협일까? 모든 것은 타협에 산물이다. 가장 최상의 존재도 주변과 끊임없이 교감, 감응, 감화하며, 바람직함, 전통성으로 재설정되기도 하고 주변을 바꾸기도 한다. 단지 파워나 포스만으로 교감되어 감화, 감응되지만은 않는다. 우주 에너지를 알고 이용할 수 있다고 해서 자신의 온전함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다중우주에서 작은 존재의 이면에는 어마어마함이 연결되어 있다.
작은 생명체의 분화 기원으로 그 존재를 업신여기면, 그에 의해 발현된 큰 존재들이 뿔을 세운다. 한반도의 고유성씨에는 그러함이 담겨있다.
주역과 오행, 수리를 알면 또 다른 변화의 묘미를 알게 된다. 우주와 연동된 음악으로 자신의 유전자를 발현해보는 것도 인생의 참된 가치이기도 하다. 향과 빛, 촉감, 전기, 진동도 다 그러한 면을 아우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