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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빵곰 Mar 14. 2024

자취 10개월, 곰인형을 안고 돌아오다.

곰인형과 빵 사진 증가에 따른 스물여섯의 심리 상태에 대한 고찰

 철이 든다는 건, 사실은 철을 내려놓는 일에 더 가깝다. 나이에 비해 일찍 철이 들었다는 얘기를 많이 들어왔다. 이제야 생각하건대, 어쩌면 분수에 맞지 않는 무게를 입 꾹 참고 안 무거운 척했던 건 아닐까 생각했다.


난 참는 일을 잘한다. 필라테스나 웨이트를 할 때도 하나도 안 힘들어 보인다는 얘기를 듣는다. 어금니를 앙 다물고 숨을 헙 들이마시어 짐짓 굳은 표정을 지으면 된다. 잘 참는 것이 곧 잘하는 것으로 직결되지 않음에도 그런 말에 뿌듯해지곤 했다. 그간 힘들다는 알바를 1년 넘게 씩 하며 샌드위치 빨리 싸는 것에 뿌듯해하고, 마감 시간 내에 혼자 박스를 옮기고 마감을 하는 일들에 뿌듯해했던, 지난날들은 내가 잘 참아온 날들이었다고 생각한다. 그것으로 세상을 조금 알았다고, 조금 밟아봤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최근 정규직으로 입사를 하고 일 년 가까이 일을 해오며 복근운동의 마지막 카운트를 셈과 동시에 꽉 잡아오던 힘이 확 풀리고, 숨을 몰아쉬는 단계에 마주한 것 같다. 나는 여태껏 참아오며 조용히 카운트를 세고 있었던 게 아닐까. 물론 잘 참는 게 결국은 최고의 능력이라고도 생각한다. 그러나 문제는 이제는 나도 어떠한 한계에 부딪혔다는 것이다. 많이 참으면 참을수록 더 많은 쉼을 필요로 하는 한계. 연휴 마지막 날에 엉엉 울고 있는 사람. 학교 가기 싫다고 떼를 쓰던 어린 시절로 돌아간, 이제는 무한도전의 오프닝을 기다리던 토요일도 개그콘서트의 엔딩곡도 없는 일요일. 잘 참기 위해서는 힘을 쓰는 와중에도 숨을 쉬어야 한다. 물방울을 뽀글뽀글 내뿜는 평화로운 잠수부처럼. 어떻게 하면 더 오래, 더 잘 참을 수 있을까.     


일반적으로 내게 가장 효과적이었던 방법은 MZ놀이였다. 뭐라고 하면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정말 미안한 척하며 속으로 ‘어쩔티비’를 외치는 방법. 회사를 다니다 보면 남 탓과 내 탓의 애매한 경계들 사이에서 줄을 타게 되는데, 내 탓으로 고꾸라지는 것은 피해야만 하는 최악의 상황이다. 그래서 내 탓과 남 탓의 구역으로 한 번씩 저울질하며 균형을 잡아주어야 한다. 가령 어떠한 공격을 받았을 때에 그저 받지 않고 잘게 나눠야 한다. 무엇이 나의 잘못이고 아닌지를. 게 중에는 온전히 나의 잘못이 아닌 것도 있지만 일부 나의 잘못인 것도 있고, 온전히 나의 잘못이더라도 그 사람의 표현 방식에 문제가 있는 경우도 있다. 나의 잘못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죄송합니다를 아끼지 않는 게 나의 지론이다. 그러면 정말 진정성 있는 반성의 태도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건 너의 잘못이야 그렇지만 난 먼저 미안할 줄 아는 사람이기도 해’ 라며 온전히 내 탓으로 균형을 잃지 않는 방식. 내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어떤 사람은 조금 다른 방식을 제안하기도 한다. 이름하야 메타몽 방법인데, 친구의 말을 그대로 빌리자면 ‘뇌를 빼고 일하는 법’이다. 어쩔티비로 모든 공격을 무마시키는 것은 같은데, 나의 방법은 한 문장을 잘게 씹으면서 문장 자체의 힘을 흩트려 놓는 것이고, 친구의 방법은 문장 대신 나의 힘을 흩트려 놓는 것이다. 어떤 공격이든 흘려보낼 수 있도록. 맞다 아니다를 논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고 다만 나는 애초에 생각이 많은 사람이라 나의 방식을 찾게 된 것이라 짐작할 뿐이다. 여러 차례 비유를 들었던 필라테스로 미루어보면, 공격 자체보단 내가 정말로 집중해야 할 것에 생각을 모으고 그 이외에 것들은 숨으로 후 불어버리는 것이 좋겠다. 직장에서의 스트레스에 건강하게 대응하는 법, 그 어떤 투두리스트보다도 내가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이번 연휴 때는 퇴근하자마자 엄마 네 집에 가서 마지막까지 있었다. 옥수동 집에 있으면 적어도 돈에 대한 문제에 있어서는 숨을 쉴 수 있다. 그리고 여러 빨래나 청소나 하는 것들도. 혼자 나가 살겠다고 떼쓰던 어린 나를 떠올리며 울었다. 여전히 다시 엄마아빠의 집으로 돌아가는 일이 좋은 일인지에 대한 의문은 있다. 엄마와의 관계에 대해. 거리와 애정이 다소 반비례하는 면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러나 가족이 있다는 게 때로는 울타리가 된다는 말을 오랜 기억의 서랍에서 꺼내어 먼지를 후 불었더니 눈물이 왈칵 난다. 먼지 때문은 아니다. 눈물을 참지 못하는 어린 순간에 어른이 됐음을 실감한다. 나 혼자 사는 원룸으로 엄마와 택시를 타고 오는 길에 여의도 다리를 옆을 수놓은 아파트 불빛을 바라보며, 새삼 내가 나고 자란 서울의 무게를 실감한다. 엄마 아빠는 이 서울에서 어떻게 나 하나 누울 방을 마련했고 딸이 먹고 싶은 걸 사줄 수 있는 어른이 되었을까 생각한다. 그럴수록 엄마 아빠가 바라는 결혼이나 자녀는 더더욱 포기해야겠다고 생각하며, 당장에 돌아오는 아빠의 생일에 무엇도 턱턱 줄 여유가 없음에 무력감을 느낀다. 직장도 보내고 다 키웠다 생각한 딸은 어릴 적 하늘을 날겠다며 머리를 박는 일은 하지 않았던 조용한 아이였지만 스물셋이 넘어서야 보자기를 두르고 세상에 뛰어들었고 스물여섯 그 낮은 단차의 엄청난 중력을 느끼고는, 자기 몸만 한 곰인형을 들고 현관문에 다시 나타난 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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