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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빵곰 Mar 28. 2024

입사 1년 차, 자소서를 다시 쓰다.

벚꽃의 산타 클로스를 기다리다.

  신입 공채가 하나 둘 올라오고 있다. 요즘 내 카카오톡 광고 창은 ‘적극 채용’ 중인 수십 개의 회사가 차지하고 있다. 적극 채용 중인 회사가 이렇게나 많은데 취업에 좌절하는 이 역시 넘쳐나다니 사회의 모순이다. 취업에 성공한 나 역시 다시 취업 시장에 뛰어들었으니 그럴 만도 하다.


 두 개의 자소서를 썼고, 한 번의 인성 테스트를 치렀다. 서류 하나 통과했다고 마치 회사에서 짝사랑이라도 하는 것처럼 작은 가능성에 행복회로를 돌린다. 고백 멘트를 상상하듯 퇴사 면담을 상상하고, 신혼 여행지를 상상하듯 퇴직금으로 퇴사 여행지를 가늠해 보고, 신혼집 상상하듯 이상적인 주거지를 따져보기도 한다. 그렇다고 실제로 고백을 한다거나 하다못해 선톡을 하는 것도 아니다. 아직 그럴 정도는 아니다. 그냥 그런 재미가 있다는 거다.


지난번에 전달받지 못한 자료를 준비하지 못했다고 억울한 소리를 들은 날, 같은 팀 주임님께서 다운되어 보여서 “에이 이거는 전달 못 받은 업무인데 괜찮아요”라고 했더니 주임님이 그만두려는 거 아니냐고 콕 찌른다. 괜히 식은땀을 흘렸는데 곧이어 “안 잡아요, 얼른 도망가요”라고 하셨다.

 자소서를 쓰게 된 데에는 온전히 내 의지만 있는 건 아니었다. 온전히 나의 의지가 되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말이 뒷받침되었다. 매일 점심시간 들은 "젊으니까 빨리 도전해 보라” 는 말, “도망가”라는 말. 그 말들이 나를 툭툭 치더니 내 발을 움직이게 했고, 노트북을 다시 들게 했고, 손가락을 움직여 자소서를 쓰게 했다. 매일 누가 야근하는지 살피는 그이는 직원들에게 자신의 회사가 마치 공포영화 속 괴물처럼 도망가야 할 존재가 되었다는 걸, 짐작이나 할까.


 오늘 자소서를 쓰고 있는 동기와 같이 점심을 먹으면서 우리가 자소서를 쓰는 이유에 대해서 얘기했다. 단순히 일이 많다는 것 때문이 아니다. 지금 우리는 자소서로 그런 투정을 쓰고 있는 게 아니다. 지난 글에서 말했듯이 말 한마디, 김밥 하나, 몽쉘 두 박스, 이틀 치 최저시급 정도 때문이다. 일을 더 시킨 만큼의 대우를 해주고 있는가. 열 시까지 일한 것에 대해서는 인당 8000원 정도의 야근 식대가 전부고, 추가 근무에 대해서는 시간으로도 돈으로도 보상받지 못하고 많은 사람들은 일을 하고 있다.


 받은 만큼만 일 하는 게 왜 부정적인 뉘앙스로 비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문장의 앞 뒤를 바꿔보면 “일한 만큼 받는다”가 되고 그것은 너무도 당연한 말이기 때문이다. 한 때는 내가 자소서를 쓰는 행위가 내 마음을 뜨게 만들까 봐 걱정돼서 공고를 일체 보지 않았다. 그러나 그건 나의 에너지를 이 회사에 쓰겠다는 최소한의 애정이 있기에 가능했고, 이제 온전히 나 스스로를 믿게 되면서 그런 걱정도 하지 않았다. 나 자신을 위한다면, 나 자신을 위해 새로운 기회를 탐색하고, 나 자신을 위해 현재에 충실한 것도 동시에 가능하기 때문에.


 자소서를 쓰면서 그 회사에 대해 내가 생각하는 마케팅 전략들을 적는데 한편으론 다행이었고, 한편으론 걱정이었다. 다행인 것은, 여전히 내가 이 백지 위에 특정인의 취향을 신경 쓰지 않고 오직 상품과 브랜드만을 위한 마케팅을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걱정이었던 것은 어딘가로든 자소서를 갖고 들어가면 결국엔 누군가의 빨간 펜으로 퇴직서가 되어버릴까 하는 것. 그러니까 결국 자소서는 언젠가 퇴직서가 되어버리고야 마는 존재인가에 대한 회의감.


 그럼에도 나는 닿지도 않은 기회를 차 버리는 헛발질은 하지 않을 것이다. 이번 주에도 하나의 자소서를 쓸 것이고 회사 메일이 아닌 개인 메일함을 수시로 들여다볼 것이다. 나는 언제가 됐든 영원히 자소서가 퇴직서가 아닌 자서전이 될 수도 있다는 희망을 가졌으면 한다. 산타가 없는 게 현실이라도, 영원히 산타를 믿는 아이가 있다면 적어도 12월 24일만큼은, 어쩌면 그 힘으로 나머지 363일도 더 행복할 테니.



부쩍 날씨가 좋아진 것을 느낍니다. 조금은 쌀쌀하지만 이젠 겉옷을 입지 않고도 출근을 하게 됐어요. 집과 가까운 역을 지나쳐 공원을 한 바퀴 돌고 집에 가기도 합니다. 공채 시기를 누가 정한 것인지는 몰라도 계절의 영향이 어느 정도 있다고 생각해요. 추워서 어디 놀러 다니지도 않고 곰곰이 생각하다 보니 불쑥 기회를 잡아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날씨가 따뜻해지니 현실의 괜찮은 구석을 찾아버리는, 너그러운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아직은 쌀쌀함이 있는 탓에 마냥 너그러워지기보단 새로운 설렘과 긴장이 더 연상되네요. 불쑥 사계절이 여름인 나라의 이직률은 적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모쪼록 너그러운 마음이거나 떨리는 마음이거나 더 나아질 우리의 봄을 기다려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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