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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빵곰 Apr 11. 2024

사춘기 13년 차, 꾹 닫은 방문을 열다.

 각자 사춘기가 오는 시기나 방법들이 다를 것이다. 나 같은 경우엔 13살 때 사춘기가 한 차례 왔었고, 가출한 적은 없다. 대신 나 때문에 엄마가 잠시 집 밖을 나간 적은 있었다. 반나절이었던가 하룻밤이었던가. 무엇 때문이었는지도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나의 사춘기 표출 방법은 방문을 꽝 걸어 잠그는 것이었다. 딱히 말이 많은 편도 아니었지만 더욱더 말을 없애는 방식으로 반항심을 표출했었다.


 두 번째 사춘기는 코로나가 있었던 스물둘 정도에 찾아왔다. 나는 여전히 말을 안 했지만 온갖 짜증은 다 냈다. 영문 모를 눈물도 흘렸다. 나는 그제야 비로소 그 눈물을 거슬러 거슬러 방 안에 틀어 박혀 있었던 아무에게도 보이지 못했던 눈물에 이르렀다.


 우리 가족은 모든 다툼을 침묵으로 마무리하는 습성이 있었다. 우리 가족이라 봤자 엄마와 아빠 그리고 늘 침묵으로 일관하는(적어도 인간의 말에 있어서는) 강아지 한 마리뿐이지만. 그러나 침묵이 무(無)의 의미를 지니는 것은 어떠한 소리도 새어나가지 않는다는 가정 하에서다. 그렇지 않으면 침묵은 아주 무서운 다른 메시지를 보내고 있기도 하다.

 어릴 적 내가 한창 잠에 빠져들 무렵 엄마와 아빠는 싸우기 시작했다. 나는 그 소리에 깬 잠을 다시 부르기 위해 베개로 귀를 틀어막곤 했다. 아침엔 무표정과 침묵이 있었다. 무표정과 무음일 수 있기 위해서는 그날 밤 내가 어떠한 소리도 듣지 않았어야 했다. 그 세월이 반복되자 나는 숨기는 게 익숙해졌다. 숨기고 나니 아무렇지 않은 듯했다. 친구가 온다고 아무렇게나 쓰레기를 쑤셔 박은 방처럼. 그런 세월이 결국엔 스물둘 늦은 사춘기의 말로를 맞았다.


 그 이후로 나는 베갯속으로 숨어버리는 나를 경계한다. 사랑이든 일이든 회피하지 않는 것만으로 인생의 많은 일들이 편해진다. 일을 하다 보면, 괜히 하기 어려운 부탁이라 매일의 투두리스트에 남아있는 일들이 있다. 그런 일들은 오늘이건 내일이건 하기 어렵다. 오히려 점점 어려운 부탁이 된다. 그런 나를 끌어 앉혀 메일을 보내게 하고, 전화를 하게 하는 것만으로 많은 가능성이 열리게 된다.


 혹은 사랑에 있어서도, 며칠이 지나도 호감이 생기지 않는 소개팅 상대에게 오늘 밤 메시지를 보내고 자 버리는 것, 그것 만으로 뇌의 한 구석이 맑아지고 마음 한 구석이 홀가분해진다. 그리고 언제나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 찝찝한 결과는 일어나지 않는다.


 아무리 운수 나쁜 날이라도, 매일매일은 그런 나를 베개맡에서 일으키는 데에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스물여섯이라도 여섯 살의 나를 안고 살아갈 수밖에는 없고, 꼭 걸어 닫은 방문 뒤의 나를 달래줄 사람은 결국 그 방 안에 있었던 단 한 사람, 나뿐이라는 걸.



저번 주말 러닝을 하러 나가는 아침에, 보자기 같은 가방에 책을 두 개, 필사 노트를 한 권, 노래 연습할 악보를 몇 장 챙겨 넣다 멈칫했습니다. 과연 이걸 메고 진정 뛸 생각이냐고 스스로에게 물었는데, 그래도 끝나고 카페에 가서 핸드폰만 하다가 한 시간도 채 안 돼 나올 모습을 상상하니 꼭 이렇게 챙겨야만 하겠더라고요. 그래서 다짐했죠. 이게 난데, 이런 난데 내가 짊어지고 살아야지 하면서 가방을 끙 둘러멨습니다. 생각보다 뛰는 게 어렵진 않았어요. 우리의 여러 모습들 중엔 좋아하는 모습과 싫어하는 모습이 있지만 어쩌겠어요. 그것 없인 내가 아닌 걸요. 그저 안고 메고 달래며 살아가야 하지 않겠어요. 그리고 우린 우리 스스로를 그렇게 괴롭히지 않더라고요. 나라는 모습들은 어딘지 연결돼 있어서 부정적으로 생각하면 토라져버리고 긍정적으로 생각해 버리면 순순해지나 봐요. 오늘도 여섯 살의 나를 달래며 사는 스물여섯의 하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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