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빵곰 Apr 18. 2024

교토 여행 5년 차, 다시 교토에 오다.

어깨는 무겁고 지갑은 가벼워진 채로.

 지금 일본에 있다. 그러나 노트북과 함께. 개인 노트북이 아니라 회사 노트북. 내가 글을 쓸 때 사용하는 맥북도 회사 노트북과 마찬가지로 벽돌 같지만 마치 맥북은 대리석 같고 이 노트북은 적갈색일 것만 같달까. 두 개를 들고 다닐 자신이 없어서 결국 회사 노트북으로 일을 마치고 이 글을 쓰고 있다.


 더 이상 오늘의 일을 미루지 않게 된 이유는 나머지 3일을 여행답게 보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연락이 많이 오지는 않았지만, 이번 주 안에 끝내야 할 것 같은 일들이 머리 한 구석에 잡혀 있어서 필사를 하고 있어도 그림 그리는 것처럼 내용이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교토 여행은 이번이 두 번째이고, 첫 번째는 스물한 살 때였다. 그땐 친구 둘과 함께였고, 이번엔 나 혼자. 그땐 7일이었고, 이번엔 4일. 그땐 책 한 권이었고, 이번엔 노트북과 책 세 권과 필사노트 한 권. 그땐 돈키호테에서 한 보따리를 샀고, 이번엔 오니기리로 저녁을 대신한다. 사실은 돈이 여유 있지 않은 상황에서 여행을 왔다. 다행인 것은 내가 행복을 느끼는 지점도 낮아졌다는 것이다. 예전 일본 여행에서 남았던 동전으로 말차 하나를 딱 맞게 샀다는 것에 기분이 무척 좋아지기도 했다면 조금 슬플까.


 아무튼 나의 혼자 여행은 카페 투어와 간단한 저녁, 그리고 걷기가 대부분이라고 볼 수 있다. 사실상 하루의 일과가 서울에서와 비슷함에도 불구하고 들리는 언어와 장소와 분위기가 다르다는 것만으로 아주 재미있는 소설 하나를 읽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래서 꼭 여행은 해외로 가고 싶어 진다. 단지 업무 연락을 받기 싫다는 것만이 아니라, 국내여행은 어째서인지 에세이를 읽고 있는 느낌이 든단 말이다.


 인간의 뇌도 간단한 on/off 스위치가 있었으면 좋겠다. 스위치를 끌 수 있는 건 결국 일을 함으로써 급한 불을 꺼버리는 수밖에는 없다. 무엇이 나를 이렇게 만드는지 생각했다. 그것은 세뇌와도 같이 박혀있는 걱정과 불안 아닐까. 공부를 하지 않으면 대학에 갈 수 없고, 상경계열을 듣지 않으면 취업이 어렵고. 무언가 열심히 하고 있지 않으면 도태될 것이라는 유언의 압박. 그것이 어느덧 무언이 되었지만 여전히 압박으로 자리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왜 주 4일제를 하지 않는가, 왜 주 35시간을 위해 시위하지 않는가, 성과주의를 가장하여 왜 역량이 엉덩이 싸움이 되게 하는가. 그것은 이 사회를 살아가는 이들이 어느 정도 나와 다르지 않은 배경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앉아 있는 시간으로 사람을 판단하고, 부서 내 인원 과부족의 문제를 결정하며 열정을 강요하는, 내가 유일하게 단 하나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 역시 그 지난한 배경에 뿌리내린 사람임을 깨닫는다. 잡초 하나를 뽑으려고 끙끙대다가 그 잡초가 사실은 한 행성을 잡아먹은 풀이라는 걸 깨달았을 때의 허탈함.


 스물한 살의 나보다 많이 알아서 좋은 것도 있고 많이 알아서 나쁜 것도 있다. 오늘은 많이 알아버렸으니 내일은 나 몰라라 해야겠다.


혼자 하는 여행을 주기적으로 처방합니다. 공항에서 교토로 오는 길에 창문만 바라보면서 일본 노래 플레이리스트를 틀어놓고 오는 기분이 좋았습니다. 생각을 하나도 하지 않았거든요. 풍경이 예쁘고 다르고 노래가 좋고 아니고 하는 감상만 있는 생각. 아무것도 없는 게 가장 아무게가 되는 게 여행의 묘미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이번엔 카메라 충전기가 어딘지 모르게 사라져서 어젯밤부터 서운하고 아쉬웠어요. 카메라가 없는 건 정말 없는 거더라고요. 야경에 핸드폰 카메라를 대었더니 이건 왜곡을 넘어 비하인 것 같습니다. 내일은 꼭 카메라 충전기를 어디서 구해봐야겠습니다. 부디 좋은 밤과 아침이 있길!
이전 06화 사춘기 13년 차, 꾹 닫은 방문을 열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