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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빵곰 Mar 21. 2024

입사 11개월, 알바 어플을 다시 깔다.

자유롭고 싶던 스물여섯들이 자유를 버리게 된 이유.

 자취를 하던 내 스물여섯 친구가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여기, 우리 엄마에겐 아직 비밀이지만, 복귀를 꿈꾸는 사람이 또 하나 있다. 이유는 첫째도 돈이고 둘째도 돈. 속물인가 하는 생각도 들지만, 돈을 벌기는 하는데 쥐똥만큼 버는 이 나이들은 어느 정도 속물이 된다는 추정과 그래도 양심이 있으니 이런 걱정도 한다는 자기 위안으로 생각을 잠재운다.

 이런 불평을 하기 전에, 사치를 부리지 않느냐고 묻는다면 할 말이 없다. 사고 싶은 옷을 사고, 가고 싶은 여행을 간다. 그렇다고 솔직하지 못한 사람인 것은 아니다. 동시에 나는 식비로 오천 원 이상 쓰지 않으려고 쿠팡에서 산 브리또를 가져가 먹고, 돈 주는 커피는 사치, 이제는 그저 검은 물 같이 느껴지는 커피 머신 발(發) 커피를 마신다. 주말엔 끼니를 빌붙으러 엄마 집에 간다. 돈이 없어 약속을 은근히 거절하기도 한다. 그저 난 여행이나 유명한 빵이나, 눈앞에 아른거리는 옷을 포기할 수 없을 뿐이다. 사진첩의 사진을, 냉동고의 빵을, 천 뿐인 옷을 뜯어먹고 살겠다는 말이다. 그러다 약속을 은근히 거절하며 인간관계가 좁아지는 내 모습을 깨닫고, 돈이라도 벌어볼까 하는 마음에 앱 스토어에서 알바를 검색한다. 알바헤븐과 알바 괴물 두 곳 중 가장 먼저 뜨는 곳으로 설치한다. 아르바이트를 마지막으로 한 적이 언제였더라, 아직 마음만은 새내기인지라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최근 이력서를 다시 쓰다가 2년도 더 넘어버렸다는 걸 깨닫는다.

 오랜만에 다시 아르바이트를 구하려다 보니, 취업한 사람은 오히려 불완전 구직자임을 깨닫는다. 카테고리에서 단기 알바를 선택하고 기간을 하루로 선택한다. 지역은 서울… 몇몇 페이지는 쿠팡이 차지하고 그다음 페이지의 반은 배달 라이더, 다른 반은 친구와 같이 오란다. 그러다가 중간중간 하루치 서빙 알바나 행사 보조 아르바이트 등을 눌러본다. 하나는 평일 저녁에서 밤까지 행사를 준비하는 아르바이트였다. 텅 비어있는 간편 이력서에 이것저것 길게 말을 늘이는 게 귀찮아서 키워드 몇 개를 선택한다. ‘성실해요’ ‘책임감 강해요’ ‘긍정적이에요’. 그 결과 ‘책임감과 성실함은 자신 있습니다.’라는 제목의, 왠지 ‘4남 1녀로 어릴 적부터 어머님을 도와 강한 책임감을 키웠고~’라는 말로 시작하는, 너무 보편적이지만 그런 탓에 아무도 쓰려하지 않는, 기시감이 드는 이력서가 하나 완성된다. ‘간편 지원’을 하려 누르다가 이내 창을 나가버렸다.


 표면적으로는 그냥 피곤했다. 예전에 한번, 돈이 정말 없던 어느 달에, 친한 언니의 구인 스토리를 보고 행사를 주말 간 도와줬던 적이 있었다. 금요일 퇴근 후 기진맥진하며 연애 프로그램을 보다가 얼마 자지 못한 정신으로 서비스 웃음을 짓고, 팸플릿을 건네고, 기계적인 설명을 읊었다. 그렇게 이틀을 하고 다음 주 이어지는 인간관계와 일들. 약속을 두어 번 정도 나갈 돈을 쥐고 원치 않는 사람을 몇 명이나 만났던가.

 그 기억에 그만 태만해졌다.

 그 뒤에 밀려온 것은 묘한 억울함과 괜한 자존심. 어느 월요일, 주에 5일은 야근을 하는 사람들은 실적 보고에 뒤이어 ‘열심히 하지 않을 거면 우리 조직과는 맞지 않는 것 같다’라는 말을 듣는다. 기업의 자산을 검수하는 월 1회의 활동에 참여하던 직원들은 어느 달, 돈을 아끼기 위해 시작을 1시간 늦추는 대신 아침 식사 지원이 없어졌다는 메일을 받는다. 3개월에 한 번 회사로 고객을 초대하던 어느 날, 간식을 사다가 경비카드에 잔액이 없다는 얘기를 듣는다. 6개월에 한 번 개인의 성과가 실적으로 깎여 성과급에 대해 일절 언급이 없던 어느 날, 타 부서는 해외 연수를 간다는 얘기를 듣는다.

 돈은 벌기 싫은데 돈을 벌고 싶다. 열심히 일하고 돈 많이 버는 커리어우먼이 되고 싶었던 나는, 돈 많이 버는 백수가 되고 싶다는 말이나 커리어우먼이나 별반 다를 게 없다는 생각도 한다. 멋들어지는 브랜드 마케터보다 하루필름이나 코인노래방이나 엽기떡볶이 사장에 혹하기도 한다.

 이게 다 그 말 한마디 때문이고, 한 달에 한 번 주는 김밥 때문이고, 몽쉘 두 박스 때문이고, 최저시급으로 이틀 치 정도의 성과급 때문이라는 게 웃기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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