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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훈훈 Dec 07. 2020

발가락을 하나 잃었다

#창업 #육아 그리고 #우울증


"발가락 하나 잃은 거라고 생각하면 된다. 대중목욕탕에 가지 않는 한 다른 사람은 모른다. 나만 알지. 다시 생겨나는 일은 없을 거다."


정신과는 후기를 남기지 않는다, 전지현



발가락을 하나 잃었다. 그 사실을 두 달이 지나서야 깨달았다. 어느 순간부터 걷는 게 무척 불편했다. 특히 일 생각으로 가득 찬 출근길이 죽을 만큼 길고 힘들었다. 나는 이렇게 힘든데 주변 사람들은 몰랐다. 발가락은 손가락이 아니기 때문이다. 맨발로 다니지 않는 이상 보일 리가 없었다.


차라리 다리가 부러졌다면 좋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깁스라고 하고 있었다면 눈에 띄지 않았을까. 만원 지하철에서도 자리를 양보받고, 높은 계단에선 누군가 부축을 해주고 내 짐을 들어주었을지도 모른다. 동료들은 안쓰러운 눈빛으로 응원의 메시지를 깁스 위에 적어 주었겠지.


하지만 발가락은 손가락이 아니었다. 나의 아픔은 보이지 않았고, 설명하기 어려웠고, 증명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 이건 나의 오랜 우울증 이야기이다.






내가 만약 자서전을 쓴다면, 2017년의 사건들로만 3분의 1이 가득 찰 것이다. '다사다난'이란 말로 턱없이 모자란 한 해였다. 그 해에 나는 처음 면허를 땄고, 차를 샀고, 집을 구했고, 결혼을 했고, 아이를 키웠고,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고, 첫 연구 논문을 썼고, 퇴사와 창업을 했다. 이 모든 일이 한 해 동안 일어났다. 보통 사람들은 평생 겪지 않거나, 수년에 걸쳐 일어나는 일이었다. 하나같이 중요했다. 잘 해내고, 잘 버티고 싶었다. 하지만 처음 하는 일은 다 서툴렀다. 하나같이 시간과 감정이 많이 드는 일이었다. 나는 많이 소진됐고 조금 고장이 났다. 


긴장하고 있던 탓일까? 눈코 뜰 새 없던 당시에는 괜찮았다. 아니 괜찮은 줄 알았다. 하지만 창업을 준비하던 다음 해 1월, 잠시 휴식기가 생기자 팽팽하던 고무줄이 끊어지는 느낌이었다. 그제야 처음으로 지나온 날들의 무게를 실감했다. 이제 시작하는 작은 회사를 책임질 경영진이자 남편, 아빠로서 살아간다는 자각이 들었다. 그제야 내가 감당해야 할, 한 생명과 한 조직의 무게를 느꼈다. 처음으로 두려웠다.


특히 몇 주 간의 휴가 동안 육아를 책임져 보니, 아빠라는 역할이 너무 어려웠다. 아이가 태어난 후 몇 달은 온통 회사 일로 바빴기에휴가 기간에 처음으로 아이와 함께 24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이제 갓 100일 된 아기를 먹이고 씻기고 재우는 법 모두 낯설었다. 고된 육아는 자괴감을 불러왔다.


이렇게 서툴고 부족한 나도 좋은 아빠가 될 수 있을까?


나 자신을 의심했다. 창업 또한 쉽지 않았다. 결국 나는 한 회사의 경영진이자 한 가정의 남편과 아빠로서, 무엇 하나 제대로 하고 있지 않은 것 같았다. 혼란스러웠다.


남들은 부러움과 응원의 시선을 보냈다. 나는 결혼과 출산, 창업까지 한 번에 이룬 사람이니까. 내 생각은 달랐다. 이제 '이룰 꿈'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그저 어린 시절부터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게 꿈의 전부인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제 인생에 이룰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내가 이룰 건 없고 지킬 것만이 아주 크게 남은 건 아닐까. 허무했다.






어느덧 잠깐의 휴가는 끝이 나고, 공동 창업한 동료들과 본격적인 일을 시작했다. 익숙한 동료들과의 낯선 하루하루가 쌓였다. 회사에 대한 기대는 갈수록 커졌다. 우리가 낸 채용 공고에 부끄럽지 않은 회사를 만들고 싶었다. 처음에 생각지도 못한 여러 가지 사업들도 늘어났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어서 시작한 회사인데, 생존하려면 '해야 하는 일'을 해야 하는구나 싶었다. 이해해야 했고, 받아들여야만 했다. 최선을 다했지만 최선이 아닌 것 같은 날이 계속됐다. 멈추는 법을 몰랐다. 아무도 가르쳐 준 적이 없었다.


그저 좋은 회사를 만들고 싶었는데, 사무실 시간이 길어질수록 아이나 아내와도 멀어져 갔다. 영등포에서 김포까지, 길고 긴 퇴근길을 지나 하루의 끝에 닿으면, 내가 오늘도 무언가 잘못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일이 오지 않기를 간절히 바랬다. 그리고 그 날이 찾아왔다.


Ⓒ 2020. totosso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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