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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훈훈 Dec 20. 2020

내 아이를 처음부터 사랑하진 못했지만

#창업 #육아 그리고 #우울증

그해 11월부터 2주 간의 휴가를 시작했다. 간절한 휴식을 맛보고 나니 복귀가 쉽지 않았다. 휴가의 마지막 사흘은 부대 복귀를 앞둔 이등병처럼 두렵고 떨렸다. 다시금 양해를 구하고 휴직을 결정했다.


회사를 시작한 후 처음으로, 다 내려놓고 편안한 시간을 보냈다. 소박하고 따뜻했다. 아내와 시시콜콜한 대화를 나누고 밀린 집안일을 해치웠다. 몸과 마음을 다시 회복할 방법을 찾았다. 상담 센터를 계속 다녔다. 다행히 상담 횟수가 쌓일수록 상태가 나아졌다. 상담이 끝날 때마다,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몇 년 전 도움 받은 경험이 떠올라 요가도 등록했다. 첫 수업 후 온몸이 쑤셔서 몸살에 걸렸지만, 마음 만은 상쾌했다.


매일같이 붙어 지내자 아이와 가까워졌다. 아이는 엄마 외에 애착관계가 없어서, 집에 있을 때도 엄마랑 놀기 바빴지 아빠를 따로 찾은 적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내 두 눈을 보고 '아빠'라고 부르며 안아달라고 두 손을 벌렸다. 처음이었다.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기뻤다. 처음엔 몰랐다. 내가 한 생명을 이렇게 가슴 깊이 사랑하게 될 줄은. 내게 당연한 일은 아니었다.






7년 전, 영화 <Her>를 보았다. 주인공 테오도르는 섬세한 문장으로 타인의 마음을 전하는 대필작가지만, 정작 자신은 이 대사처럼 공허한 삶을 살고 있었다.


"가끔 그런 생각이 들어요. 난 앞으로 내가 느낄 감정을 벌써 다 경험한 게 아닐까. 그리고 여기서부터는 쭉 새로운 느낌은 하나도 없는 건 아닐까."



나 역시 다를 것 없었다. 연애에 굳이 성공과 실패를 둔다면, 나는 언제나 실패에 가까운 쪽이었다. 마음이 엇갈릴 때가 많았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나를 좋아하지 않았고, 나를 좋아하는 사람은 내가 좋아하지 않았다. 누군가를 1년 이상 꾸준히 만난 적도 없다. 누군가를 만나 사랑했고 행복했지만 대개 그 순간은 오래가지 못했다. 연애를 통해 나 자신을 알 수 있다는데, 나는 늘 내 바닥을 보았다. 서른이 넘어가자, 더 이상 내 바닥을 보고 싶지 않아 졌다. 솔직히 연애라는 게 지긋지긋했다. 주변에는 항상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게 평생 꿈이라고 말해왔지만, 내 인생에 앞으로 그런 기적이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 단지 하루하루를 살았다. 그리고 아내를 만났다. 내 인생에 가장 신기하고 특별했던 인연을 그제야 만났다. 우연 같은 만남이, 기적 같은 일상이 흐른 뒤 우리에게 아이가 찾아왔다.






산부인과에서 처음으로 아이 성별을 들은 날을 잊지 못한다.

"아들이라고요? 아..."

그제야 깨달았다. 나는 아들을 키울 거란 상상을 평생 한 번도 한 적이 없다는 것을. 내 머릿속의 아이는 언제나 사랑스러운 긴 머리의 딸이었던 것이다. 나는 몰랐던 게 많았다. 내가 이토록 여아 선호 사상이 투철한 고추 차별주의자였다는 것부터. 고추를 아니 아들을 어찌 키워야 할지 막막했다. 귀갓길에 들른 편의점에서, 나도 모르게 소주병을 만지작 거리고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이는 태어났다. 아내는 30시간이나 진통을 했다. 나는 곁에서 뜬 눈으로 밤을 새우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너무 미안했다. 극심한 산고 끝에 새벽 4시가 넘어서야 나온 아이의 첫인상은 불타는 고구마였다. 신생아가 예쁘지 않다는 건 익히 들었지만 생각보다 너무 못생겨서 당황했다. 부모라고 해서 아이를 처음 보자마자 마법처럼 사랑에 빠지진 않는다는 걸 그때는 몰랐다.


아이는 아주 작았다. 신기하고 귀여웠다. 보호해 주고 싶다는 강력한 의무감을 느꼈다. 하지만 자신 있게 사랑한다고는 말할 수 없었던 것 같다. 당시 너무 잦은 야근 탓에 눈길을 둘 새가 없다는 게 핑계다. 나는 왜 아이를 보면서 사랑보단 의무감을 먼저 떠올릴까. 나는 나쁜 아빠일까. 마음이 무거웠다. 그때는 몰랐다. 부모가 내 아이를 사랑하게 되는 시기는 다 다르다는 것을. 배우 이보영은 '마더' 종영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내 몸이 너무 힘드니까 솔직히 아기가 예뻐 보이지 않았다. 영화에서 본 것처럼 아이를 안았는데 왜 눈물이 안 날까 싶었다. 그런데 한 달, 두 달, 세 달 아이를 키우면서 너무너무 예쁘더라. 낳는다고 생기는 모성애 이상이 키우면서 생기는 모성애란 걸 알았다."


무거운 배를 열 달이나 안고 고통 속에 아이를 낳은 엄마도 모성애를 바로 느끼진 못한다. 첫눈에 반하듯 사랑을 느끼는 부모도 있지만, 아이가 한참 성장한 뒤에야, 어쩌면 평생 사랑을 느끼지 못하는 부모도 있다. 


내가 내 아이를 사랑하게 된 건 시간이 좀 흐른 뒤였다. 처음 사랑에 빠진 때가 언제인지는 모른다. 나를 보고 처음 웃어준 순간인지, 내 손을 잡고 걸음을 시작한 순간인지, 나를 아빠라고 다정하게 불러준 그 때인지.


그 찰나에 스며든 한 줌의 사랑이, 어느새 내 안을 가득 채웠다. 






휴직 후 맞은 주말 아침, 첫눈이 왔다. 아이를 안고, 창밖으로 수북이 쌓인 눈을 바라보았다. 아이는 생전 처음 보는 눈을 보며 방긋방긋 웃었다. 나를 보는 아이의 두 눈에 새하얀 평화가 가득했다.



"항상 집에 와서 내게 당신의 하루를 얘기해줄 수 있어요? 말이 너무 많다던 직장 사람, 점심때 셔츠에 묻은 얼룩을 말해 줘요. 아침에 했다가 잊어버린 웃기는 생각도 말해 줘요. 사람들이 얼마큼 미쳐있는지 우리가 얼마만큼 웃어넘길 수 있는지 말해줘요. 혹시, 집에 늦게 들어와서 내가 자고 있다면 내 귀에 속삭여줘요, 오늘 했던 작은 생각 하나도. 당신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사랑하기 때문이에요. 당신 곁에 있어서, 당신의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어서, 참 행복해요."


영화 <Her>의 주인공 테오도르의 편지 중


Ⓒ 2020. totosso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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