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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훈훈 Mar 19. 2021

아빠의 기쁨과 슬픔

#창업 #육아 그리고 #우울증

아이들은 귀엽다. 나는 아이들을 참 귀여워했다. 8년 전, 어느 광고에서 오물조물 밥을 먹는 여자 아이를 보며 그 사랑스러움에 감탄했다. 아, 남의 딸 밥 먹는 것만 봐도 이렇게 마음이 흐뭇하고 행복한데 내 자식이 생기면 얼마나 이쁘고 사랑스러울까. 있을지 없을지도 모를 미래의 딸을 상상하며 왠지 더 열심히, 바르게, 부끄럽지 않게 살아야겠다는 다짐도 했다.


한편으로는 아이들이 어려웠다. 아이들은 시끄럽다. 제멋대로다. 무례하다. 하루 종일 운다. 이런 아이들이 나는 낯설었다. 내가 귀여워했던 건 '귀여운' 아이였다. 멀리서 한 장의 사진처럼 바라보았을 뿐, 곁에 두고 아이들을 돌볼 자신이 없었다.


누군가를 보살피는 건 어른의 몫이다. 그런데 나는 아직도, 어쩌면 영원히 누군가를 챙길 수 있는 어른이 될 수 없을 것 같았다. 약한 아이를 보호할 만큼 강한 사람도 아니었다. 난 여전히 <비포 선라이즈>의 제시처럼 어른이 되는 법을 모르는 13살짜리 꼬마였다.






예상대로 육아는 자괴감을 주었다.


이제 막 세상의 빛을 본 아이는 너무나도 작고 연약했다. 세상에서 가장 깨지기 쉬운 유리로 만든 인형 같았다. 만지면 부서질까 안는 것도 무서웠다. 이 가녀린 존재는 매일같이 밤잠을 설치게 했다. 신생아는 보통 하루에 15~20시간 정도를 잔다고 한다. 그건 아이가 잔다는 거지 엄마 아빠도 같이 잘 수 있다는 얘기가 아니다. 아이는 자다 깨다, 자다 깨다를 무한 반복했다. 졸린 것 같았는데 안 자고, 자는 줄 알았는데 안 잤다. 조그마한 몸으로 오줌은 어찌나 자주 싸는지, 기저귀 값 벌기 힘들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구나 싶었다.


무엇보다 서로의 언어가 달라서 힘들었다. 아이는 당연히 말을 못 했다. 시도 때도 없이 울기만 했다. 배고플 때 울었고, 졸릴 때 울었고, 놀고 싶을 때 울었고, 기저귀가 젖었을 때 울었다. 뭔가를 하고 싶을 때 울었고, 하고 싶지 않을 때 울었다. 더울 때나 추울 때, 무서울 때 울었고, 엄마가 보고 싶을때, 이가 날 때도 울었다. 자기 팔다리에 놀라 잠을 깨며 운 적도 있다.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라는데 신생아도 몇 년만 더 빨리 말을 터득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버님, 아기침대 위 에어컨 바람이 너무 센 것 같군요. 저는 무풍을 선호합니다. 그리고 슬슬 시장하오니 약 40도로 데운 분유를 50ml 정도 부탁드립니다."


그때그때 필요한 걸 정확히 말로 해줬다면 더 쉬웠겠지만, 아이의 의사표현 수단은 '울음'이 거의 전부였다. 신생아의 욕구라고 해 봤자, 먹고 싸고 자는 게 대부분이지만 나는 그 요구사항을 빠르게 해석하고 처리할 능력이 부족했다. 육아에 익숙해질 시간이 없었다. 익숙해질 만하면 월요일이 오고 야근이 이어졌다. 아이가 몇십 분이나 울음을 멈추지 않고 날 쏘아보는 날은, 혹시 내가 정말 싫어서 이러는 건 아닌지 피해의식에 사로잡혔다.


나는 무력했다. 일은 일대로 바빠 죽겠는데, 집에 오면 쉴 새가 없고, 침대에 누워도 잘 새가 없었다. 이 조그만 녀석이 뭔데 나를 이렇게 힘들게 만들까. 종교는 없지만 신은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을 주는지 궁금했다. 종교는 없지만 신을 너무 원망한 탓인지 그는 내게 한 번도 강 같은 평화를 주지 않았다.


그렇게 죽을 고생을 몇 개월씩 한 뒤에야 고생이 고생으로 안 느껴졌다. 정확히는 '덜' 느껴졌다. 애착이 생겼고 전우애를 쌓았으며 사랑에 빠진 것이다. 입에서 아이고 내 새끼, 귀여운 우리 강아지가 절로 나왔다. 아이를 보기만 해도 미소가 걸렸고, 아이의 웃음을 따라 온 집안에 웃음꽃이 가득 피었다. 아이들은 세 살까지 평생 효도를 다 한다는데, 그 말을 그제야 이해했다. 


고된 회사생활에 돋아난 가시들도 집에 오면 눈 녹듯이 사라졌다. 아이의 애교 한 번에 조증이라도 걸린 사람처럼 웃었다. 귀여움이 죄라면, 우리 아이는 상습적 심장 폭행으로 무기징역 감이었다. 아장아장 처음 걸었을 때는 어찌나 기특하던지… 애덤 스미스가 아직 살아 있었다면 보이지 않은 손으로 박수를 치고 갔을 것이다. 아이가 다섯 살이 된 지금도 매일, 매 순간 첫눈에 반한다. 아내와 나는 아직도 이 아이의 부모라는 사실을 실감하지 못한다. 작고 소중한, 같이 살고 있는 아이. 너무 놀라운 생명체. 올망졸망한 눈망울을 굴리며 요리조리 뛰어다니는 모습이 신기할 따름이다.






8년 전의 나는 예상하지 못했다. 어릴 때 모습이 광고 속 여자아이랑 똑같은 아내를 만나서, 그 아이보다 훨씬 예쁘고 사랑스러운 아이를 낳는다는 것을. 그리고 애들은 그렇게 예쁘고 얌전하게 밥을 먹지 않는다는 것을.


아이들은 매일매일 시시각각 성장한다. 회사일로 바빴을 때, 내가 없는 순간에도 나날이 커가는 아이의 모습을 먼발치에서 볼 수밖에 없었다. 아빠로서, 내가 아이에게 줄 수 있는 건 '시간' 밖에 없다는 믿음이 날로 강해졌다. 아이가 나를 필요로 하는 순간에 언제나 있어주고 싶었다.


아이의 모든 순간을 항상 곁에서 지켜볼 수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휴직 사유가 되었다. 그 해의 끝자락에서 나는 아이가 걸을 때, 밥을 먹을 때, 잠을 잘 때, 열이 39도까지 올랐을 때, 크리스마스와 새해를 맞는 순간에도 항상 아이의 곁에 있었다. 매일 조금씩 바뀌는 아이의 표정과 몸짓, 언어를 눈에 담았다. 매일매일을 함께 했다. 앞으로도 우리에게 남은 시간, 아이의 모든 순간에 함께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 2021. totosso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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