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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훈훈 Mar 23. 2021

아빠의 세계

나 같은 사람도 좋은 아빠가 될 수 있을까?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데미안


아이가 태어나면서 아빠인 나의 세계는 부서졌다. 그런데 알을 깬 사람은 내가 아니었다. 나는 가만있었는데 아이가 내 알을 마구 깨부숴서 어쩔 수 없이 밖에 나가 아빠로 거듭나야만 했다.


아이의 탄생은 나의 일상과 세계관을 바꾸었다. 임신 중엔 대선 주자들의 공약집에서 육아 정책 페이지부터 눈에 들어왔다. 아이를 키우면서 우리가 살 집을 보는 조건이 바뀌었고, 집보다는 주변 환경을 먼저 살펴보게 됐다. 아침에 일어나는 시간과 밥을 먹는 시간, 밤에 잠드는 시간이 바뀌었다. 조용하고 한가로운 주말은 영원히 사라졌다.


내게 '아빠'라는 정체성이 추가되었다. 특히 10명 남짓한 작고 젊은 회사에서, 유일한 아빠인 나의 정체성은 더욱 도드라졌다. 직원 중에 나이가 제일 많은 것도 서러운데 나 혼자 아버지라는 게 조금 고독했다. 밖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 아이가 있다고 하면 다들 놀라는 눈치였다. 아마 타고난 동안 때문일 것이다(아님 말고) 아빠라는 걸 밝히자마자, 자리에 있는 모두가 육아라는 화제에 빨려 들어갔다. 육아 밖에 없는 내 근황을 신나게 떠들고 나서도 종종 후련하지 않은 기분이 들었다. 어느새 '나'보다 앞에 붙은 '아빠'라는 이름표가 어색했다. 아빠라는 새로운 사람이 된 게 아니라 나라는 사람을 조금 잃은 기분이었다. 언제부턴가 누가 묻기 전엔 먼저 애아빠라고 말하지 않게 되었다. 내 이름은 아직 아빠가 아니니까.


아빠라는 새 옷에 몸을 서서히 맞출 때쯤, 다음 고민이 찾아왔다. 흔히 연애를 할 때도 내가 먼저 좋은 사람이 되어야 좋은 짝을 만날 수 있다고 하는데, 양육도 부모 먼저 좋은 사람이 되어야 아이도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나 같은 사람도 좋은 아빠가 될 수 있을까? 답을 찾기 위해, 가장 가까이에서 아버지의 역할을 내게 가르칠 수 있던 사람을 기억했다. 좋은 아빠라는 가능성에 물음표가 떠올랐다.






아버지는 옛날 사람이었다. 가장의 권위를 내세웠고 고압적인 리더였다. 성격도 아주 급해서 비위를 맞추기 힘들었다. 한 자리에 오래 머무르는 걸 못 견뎌해서, 상견례 때도 중간에 나오려고 하셨을 정도다. 나도 나이가 들고 다른 집의 사정도 들여다보면서 아버지에 대한 감정이 조금 변하긴 했다. 분노보다는 이해에 가깝고, 이해보다는 연민에 가까워졌다.


상대적으로 보면 여느 가부장적인 아버지 중 하나일 뿐이었다. 우리 아버지 세대의 평균 정도랄까. 하지만 나에게 아버지란 하나뿐이기에 내 기준은 절대적이었고, 상대적으로 행복한 유년기를 보낼 수는 없었다. 나와 아버지 사이는 언제나 로또 번호처럼 안 맞았다. 외모도 성격도 어머니의 영향을 많이 받은 나와 너무 달라서 이해하기 힘든 존재였다. 누나와 가까웠고, 형도 없었기 때문인지 나는 손윗남자를 어려워했다. 어른, 특히 남자 어른 공포증이 있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러기엔 너무 어른이 된 내 나이가 부끄럽다.


아버지에게 나는 아들로서 충분한 사랑을 받아보지 못했다. 좋은 아빠가 되고 싶다면, 나는 분명 내 아버지와 달라야 한다. 아들에게, 내 아버지가 해주지 못한 것을 해주어야 하고, 들려주지 못한 말을 들려줘야 하며, 물려주지 못한 것을 물려줘야 한다. 나는 내 아이에게 같은 결핍을 대물림하고 싶지 않다. 그건 너무 불공평하니까.






나는 어떤 아빠가 될 수 있을까. 모르겠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아빠와 아이의 생각이 같을까. 아직은 모르겠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내 인생을 돌이켜 봤을 때 적어도 이런 아빠가 되리라는 다짐은 해볼 수 있다.


나는 '남자'의 역할을 구분하고 강요하지 않는 아빠가 될 것이다. 나도 어릴 때는 남자답게 살고 싶었다. 그래야 할 것 같아서, 진정한 남자가 되는 법에 몰두했다. 성인이 된 지 한참 뒤에서야 그런 우직한 길을 가도 될 만큼 세상이 단순하지 않다는 걸 인식했다.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의 수만큼 많은 길이 있을 뿐이다. 지금의 나 역시 남자에 대한 편견과는 거리가 있다. 나는 남자인데 키가 크지 않고, 남자인데 강하지 않으며, 남자인데 눈물이 많고, 남자인데 술을 못하며 담배를 안 한다. '남자'로 시작하는 문장 자체를 싫어한다. 아이에게 말해주고 싶다. 남자다울 필요는 없다. 그냥 너 다우면 된다. 너는 단지 '남자'로 규정지을 수 없는 더 큰 가능성의 인간이며 다른 사람들도 모두 그렇다고.


나는 자립심을 키워주는 아빠가 될 것이다. 독립적인 성인으로 자랄 수 있도록 충분한 바탕을 만드는 것이 부모의 가장 큰 과제이다. 내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 중 하나는 '독립'이었다. 독립을 통해 늦게나마 밥벌이와 집안일의 고단함을 깨우치고 부모님께 더 감사함을 표할 수 있었다. 아이가 성인이 되었을 때 충분히 제 앞가림을 할 수 있도록 학교에서 배우지 못하는 것들을 가르치고 싶다. 요리는 물론 다양한 식재료의 특성과 보관하는 법, 빨래와 청소하는 법, 각종 계약 시의 주의사항, 시기적절한 성교육까지.


나는 아이보다 아내를 더 사랑하는 아빠가 될 것이다. 세상에 좋은 아빠는 많지만, 좋은 아빠이면서 좋은 남편인 경우는 드물다. 결혼 후 오랫동안 ○○ 아빠, ○○ 엄마라는 이름표를 달고 살기 때문인지 부부 둘만의 관계는 소홀해지기 쉽다. 부부가 서로 사랑하지 않았다면 아이도 없었을 텐데, 막상 아이가 생기면 부부보다 아이가 우선이 된다. 보호자로서의 책임은 기본이되, 아빠와 엄마의 관계가 단단해야 가정이라는 공동체를 오랫동안 지킬 수 있다. 부부는 아이가 세상에서 처음으로, 가장 가까이에서 보는 연인 관계이다. 부족한 서로를 아끼고 채워주는 관계의 소중함을 아이도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 나는 항상 믿고 있다. 좋은 남편은 반드시 좋은 아빠가 된다.


자식은 부모를 선택할 수 없다. 나에겐 비극이 된 이 명제가 아이에겐 다르기를 소원한다. 그럴 수만 있다면, 아이가 다음 생에도 선택하고 싶은 아버지가 되고 싶다. 내가 가진, 자식으로서의 결여를 아버지로서의 잉여로 채우고자 한다. 아빠로서, 나의 세계는 그렇게 완성된다.


Ⓒ 2021. totosso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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