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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훈훈 Mar 25. 2021

퇴사자와 입사자의 결혼 이야기

결혼하니까 행복해요?

아내 김토토를 처음 만난 곳은 전 직장이다. 이렇게 말하면 다들 사내 커플이었냐고 묻지만 우리가 만날 당시에 나는 퇴사자, 아내는 입사자였다. 퇴사를 며칠 앞둔 어느 날, 아내가 면접을 보러 들어왔고 우연인지 필연인지 면접자 안내 담당은 나였다. 당시 겨울이어서 따뜻한 물을 한 잔 주며 상냥히 응대를 했다. 좋은 첫인상을 심어주었을 거라고 자신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자기는 찬 물을 마시고 싶었다고 한다.


퇴사를 한 뒤 우연히 아내를 페이스북에서 발견했다. 친구 신청을 했다. 딱히 아내가 귀여워서 그랬던 건 아니다. 인간적인 호기심이었다. 아내가 있는 전 직장에 놀러 가기도 했다. 소속 강사인 아내는 이미 수업을 세 개나 끝낸 상태였는데, 함께 술 마시러 가서는 새벽 노래방까지 쉴 틈 없이 달리는 열정을 보여주었다. 1차만 끝나도 집에 가기 바쁘던 내가 그 날은 3차 노래방까지 자리를 지켰다. 딱히 아내가 예뻐서 그랬던 건 아니다. 그날따라 심심했다.


우리는 따로 몇 번을 더 만났다. 성격이 너무 다른데 신기하게 잘 맞았다. 아내가 처음으로 우리 회사에 놀러 온 날, 나는 버스정류장에서 고백을 했다. 아내가 대답했다.

"우리 이미 사귀는 사이 아니었어요?"


그렇게 1년을 만난 후 청혼했고, 반년 후 우리는 결혼했다.






나는 연애가 항상 어려웠다. 연애를 할 때마다 나의 바닥을 거듭 확인했다. 아내와는 달랐다. 그때까지 누구를 만나면서, 내가 좋은 남자라고 믿게 해 준 사람은 처음이었다. 때로는 넘치는 에너지로 나를 채워주고, 때로는 포근한 품으로 마음을 안아 주었다. '내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도 그걸 지켜보는 너'와 함께라면 괜찮을 것 같았다.


내게 결혼은 꿈이었고, 꿈처럼 먼 일이었다. 매사에 꾸밈이 없는 아내만큼이나 자연스러운 만남 끝에, 꿈이 현실이 되었다. 결혼이라는 인륜지대사를 고려함에 있어, 단 한 번의 의심도 없었다. 솔직히 두어 번 정도 의심할 뻔했었지만 '믿어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해서 믿는 것'이라는 영화 대사와 '믿음, 소망, 사랑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는 성경의 말씀이 큰 도움이 되었다. 참고로 나는 무교다.


어느 선배에게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결혼은 평생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하는 게 아니라, 가장 적절한 시기에 만난 사람과 하는 것이라고. 아마 대부분은 그럴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내 평생 가장 사랑하는 사람, 아내와 결혼을 할 수 있게 된 게 내 인생의 가장 큰 행운이 아닌가 싶다.


사실 만난 지 일주일쯤 되었을 때, 왠지 이 사람과 결혼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결혼을 예감한 순간은 있었지만, 결혼을 선택한 순간은 없었다. 나는 결혼이 아니라 아내를 선택했고 그 과정에서 결혼이 따라왔다. 단지 사랑하는 사람과 하나의 공동체를 꾸리고 싶었을 뿐인데, 운명이라는 파도에 휩쓸려 결혼에 도달한 느낌이다.






결혼하고 나면 많은 사람들이 묻는다.

결혼하니까… 행복해요?


이 질문에는 '결혼'이라는 통과 의례에 대한 당위성이 묻어 있다. 누구나 결혼을 해야만 행복해질까? 꼭 결혼을 해야 할까? 잘 모르겠다. 다만 나는 결혼을 쉽게 권하지 않는다. 결혼은 단지 제도적인 선택일 뿐 행복을 맺어주는 매개체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행복은 절차나 의식이 아니라 관계에 있다. 내가 지금 행복하다면, 그건 결혼해서가 아니라 아내라는 사람을 만났기 때문이다. 아내는 내 상한이 아니라 하한을 보고도 받아준 사람이다. 나의 가장 큰 정서적인 구멍을 채워주었다. 더 이상 관계 때문에 불안해하지 않게 해 주었다. 결혼을 한 것도, 아이를 낳는 것도 아내 덕분에 용기를 낼 수 있었다. 


결혼이 당연하지 않듯이 우리의 관계도 당연하지 않음을 알고 있다. 내가 결혼한 사람이 지금의 아내라서, 그래서 참 다행이다.



"단순히 결혼한 배우자라는 이유만으로 무조건적으로 이해하고 사랑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서로 이해받고 사랑받을 권리를 내세우기에 앞서, 서로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 되겠습니다. 이 웨딩드레스와 웨딩홀만큼 화려하지는 않아도, 소박한 일상의 행복을 하루하루 만끽하며 살겠습니다. 남의 시선을 의식하고, 명예와 부를 우선하기보다, 항상 몸과 마음이 건강한 우리가 되겠습니다. 항상 계획대로 되지 않는 인생에서, 어떤 일이 닥쳐도 이겨낼 수 있는 용기와 힘을 함께 키우겠습니다. 누구의 남편과 아내, 누구의 아빠, 엄마로 불리기보다 영원히 서로를 서로의 이름으로 마음속에 새기겠습니다. 그 무엇보다도 저희의 앞날에서 지금 이 순간 사랑하는 우리를 기억하겠습니다.


여러분께서는 지금 어떤 사람을 사랑하고 계신가요. 저희는 오늘 이 자리에서, 지금 서로를 사랑하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결혼식 날, 하객 여러분께 낭독했던 편지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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