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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훈훈 Apr 11. 2021

도넛인간

"나는 도넛으로 태어났다."


"서른 살이 되면서 나는 내가 도넛과 같은 존재라는 걸 깨닫게 됐다. 빵집 아들로서 얻을 수 있는 최대한의 깨달음이었다. 나는 도넛으로 태어났다. 그 가운데가 채워지면 나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이다."


청춘의 문장들, 김연수



서른 즈음에 만난 이 문장을 오랫동안 가슴에 묻었다. 가운데가 빈 도넛처럼 마음 한 구석이 텅 빈 사람. 책 제목처럼 그때까지의 내 청춘을 관통하는 문장이었다.






세상에 유복하고 화목한 가정들이 존재한다는 이야기를 TV에서 보았다. 그에 비해 우리 집이 넉넉한 형편이 아니란 건 별로 체감하지 못했지만 화목하지 않다는 건 피부로 느껴졌다. 어머니는 억척스레 가정을 지켰지만 혼자 힘으로 두 자식을 건사할 만큼 강하진 못하셨다. 각자의 삶으로 고단했던 우리 가족은 섬처럼 떨어져 있었고 유대감은 그 거리만큼 먼 이야기였다. 하굣길을 지나 집에 다다르면 곧장 내 방으로 도망쳤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누워서 본 천장은 언제나 검은색이었다.


'잘못 태어났다'는 생각이 내 유년기를 지배했다. 내가 태어났어야 할 곳은 여기가 아닌데, 뭔가 잘못된 것 같았다. '우리 부모님은 지구가 아닌 다른 별에 계실 거야.' 하굣길에 노을이 물든 하늘을 보면서 생각했다. 심지어 중학교 때까지 그랬다. 그 시절 외계인의 이미지는 <별에서 온 그대>의 도민준 같은 게 아니라 <아기공룡 둘리>의 꼴뚜기 외계인 정도였는데 무슨 생각이었는지 모르겠다.


이다음부터는 불우한 유년 시절에 이미 정해진 뻔한 미래다. 나는 나 자신을 사랑하지 못했다. 자기 연민이 취미요, 자기혐오가 특기였다.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나는 나로부터 도망치고 싶었지만, 도망칠 곳은 나 자신밖에 없었다. 남에게 사랑받고 싶다면 자기 자신부터 사랑하라는 말이 참 싫었다. 누군가를 억지로 사랑해본 적이 있나? 그게 되던가. 받고 자란 사람의 한가한 잔소리로 여겼다.


마음의 빈 곳을 채우기 위해 이곳저곳을 기웃거렸다. 집에서 증명받지 못한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해야 한다는 강박으로 10여 년을 보냈다. '일'은 나를 증명하는 아주 효과적인 수단이었다. 일을 좋아한다고 생각했다. 매일을 인생의 마지막 날처럼 여기며 최선을 다하는 내가 자랑스러웠다. 성장하는 내가 좋았다. 하루만큼 성장하면, 하루만큼 미숙했던 어제의 내가 싫었다. 일하는 나로서 여러 조직을 경험했다. 소속감은 언제나 달콤했다. 나를 필요로 하는 누군가를 위해 기꺼이 헌신했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고 싶어서, 하기 싫은 일도 어떻게든 해냈다. 


휴직 기간 중 받았던 상담에서 이런 소견을 들었다.

"맡은 일에 과도한 책임감을 느끼는 타입이다. 항상 무리하게 자신을 몰아 붙인다. 스스로가 정한 기준 값이 너무 높아서, 성취에 대해 남들이 칭찬해도 본인은 만족하지 못한다. 완벽주의 성향을 내려 놓고 적극적으로 휴식을 취해야 한다."


나는 쉬는 법을 몰랐다. 직장 생활이 10년 가까이 계속되자, 일을 하지 않는 순간의 나는 낯설어졌다. 일을 오래 쉬면 불안했다. 한 번은 열병이 나서 나흘이나 연차를 낸 적이 있다. 밤낮없이 몸이 아픈 것보다 쓸모없는 사람이 된 것 같은 무력감이 더 힘들었다. 일을 잘하는 것보다 잘 쉬는 게 더 어려웠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나, 아무것도 되지 못한 나도 괜찮다고 스스로에게 말해줄 수 없었다.


우울증을 얻은 뒤엔 정상적으로 일을 하기 어려웠다. 업무 속도는 느려지고 코앞에 닥친 마감 기한은 숨통을 조여왔다. 일을 통해 나를 증명했는데 이렇게 되고 나니 나를 지탱할 힘이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내 삶에서 '일'을 떼어내면 뭐가 남을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인생이 어렵고 복잡한 건 인정받을 대상이 너무 많아서라고 한다. 집에서는 부모, 회사에선 상사, 밖에선 친구와 애인, 수없이 많은 그들의 기대를 다 충족할 수 없기 때문에. 나의 경우, 연이은 결혼과 출산, 창업이 방아쇠를 당겼다. 대상이 너무 많아진 것이다. 내가 속한 모든 곳에서 항상 쓸모 있는 사람이 되려고 애를 썼지만, 오래도록 닳고 닳은 나는 더이상 쓸데가 없었다.






휴직의 끝 무렵, 가장 바닥이었던 시절에 쓴 일기를 꺼내보았다. 온통 죽고 싶다는 말 뿐이었다. 소파에 리모컨 던지듯 아주 쉽게 삶을 내던질 수 있던 시기였다. 선택할 수 있는 것도 선택하고 싶은 것도 없던 날들이었다. 그리 멀지 않은 과거에 두고 온 나를 나직이 바라보았다. 그래도 그 긴 터널 속을 꾸역꾸역 걸어왔구나. 어떻게든 버틴 내가 대견했다. 그래도 이렇게 살아서, 살아남아서 오늘을 또 만든 나를 칭찬해주고 싶었다.


이미 닳고 닳은 내게도 인생의 꿈이 하나 있다면, 그건 살아있는 것이다. 어떻게든 살아만 있다면, 나를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돌아갈 수 있다. 더 이상 누군가에게 내 존재 가치를 증명할 힘이 없대도, 너는 이미 존재 만으로 가치 있다고 그들이 대답해줄 것이다. 어떻게든 살아만 있다면, 우리는 다음을 꿈꿀 수 있다.


이제 성장하지 못해도 좋다. 정체해도 좋다. 퇴보해도 좋다. 나는 앞으로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나는 그냥 나 자신이 되고 싶다. 이렇게 가운데가 빈 나로 살아남아서, 다시 한번 오늘을 만들고 싶었다.



"물고기는 자라서 물고기가 되고 고양이는 자라서 고양이가 된다. 물고기도 고양이도 살아있어서 귀엽다. 나도 간신히 자라서 내가 되었다. 나도 살아있는 날 귀여워하고 싶다. 살아있으니까."


살아있으니까 귀여워, 조제


Ⓒ 2021. totosso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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