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외롭다
나는 글을 쓸 때 이런 식으로 풀어가야겠다, 구체적으로 계획하기보다는 '주제'를 머릿속에 던져놓고 그 주제가 어떻게 흘러가는지를 가만히 지켜보는 편이다.
어떨 땐 그 주제가 움직일 생각 없이 가만히 그 자리에 앉아 굳어있지만, 또 어떨 때는 나조차도 놀랄 만큼 이야기를 술술 풀어나가기도 한다.
처음 소설을 쓰기 시작했을 때도 그랬다. 한 인물을 머릿속에 그려놓고, 그 인물이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할지 지켜보는 일이 신기했다. 마치 내가 만든 인물이 독립적으로 살아 움직이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때로는 내가 의도했던 방향과 전혀 다른 길로 이야기가 흘러가기도 했는데, 그럴 때마다 놀라면서도 그 예상치 못한 전개를 따라가는 재미가 있었다.
이런 식으로 이야기가 흘러가면 재밌겠는데? 생각하며 주제가 몸집을 키워가는 걸 보고 있노라면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모르게 된다.
그 이야기가 너무 재밌어서, 그 이야기에 빠진 내가 좋아서 주제와 같이 놀다가 현실로 돌아오고 나면 나와 함께 있던 모든 것들이 허상이 되어 공중으로 흩어진다. 내가 방금까지 놀고 있던 모든 세계가 헛깨비처럼 사라져있다.
에세이를 쓸 때도 마찬가지다. 내 일상의 한 조각을 꺼내서 글로 만들어가다 보면, 그 순간만큼은 과거의 내가 되어 그때의 감정을 다시 온전히 느끼게 된다. 슬펐던 일을 쓸 때는 정말로 다시 슬퍼지고, 기뻤던 순간을 쓸 때는 입꼬리가 올라간다. 글을 쓰는 동안만큼은 시간여행자가 된 기분이다.
하지만 글을 다 쓰고 나면 그 모든 감정과 장면들이 다시 글자로 돌아간다. 살아있던 것들이 다시 활자가 되어 화면에 박제되어 있을 뿐이다.
그래서 글을 쓴다는 건 외로운 일이다.
혼자 이야기를 이끌어가야 하는 것도 그렇고, 누군가 대신 해줄 수도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저 엉덩이를 의자에 붙이고 앉아 끝날 때까지 이리저리 잘 굴려가며 모양을 예쁘게 잡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내 머릿속에선 분명히 예쁘게 정리된 하나의 이야기라고 생각해도 읽는 사람에게 와닿지 않으면 와르르 무너져버리는 종잇장 세계라서 더욱 그렇기도 하다.
글을 쓰는 시간은 철저히 나만의 시간이다. 아무리 가족이나 친구들이 옆에 있어도, 글을 쓸 때만큼은 완전히 혼자가 된다. 내 머릿속 세계와 나, 단둘이 마주하는 시간. 때로는 그 고독이 견디기 어려울 때도 있지만, 그 고독 없이는 진짜 이야기를 쓸 수 없다는 것도 안다.
특히 소설을 쓸 때 그 외로움이 더 깊어진다. 에세이는 그래도 내 이야기라서 확실한 기반이 있지만, 소설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일이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사람을 만들고, 그 사람의 삶을 만들고, 그 삶에 의미를 부여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느끼는 막막함과 외로움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래서 글을 잘 쓰는 작가 중에 대부분은 행복하지 않다.
현실이 행복하면 머릿속에 가상의 세계가 펼쳐질 땅이 너무 비옥해져 버리거든. 비옥한 땅에서 자라나는 이야기들은 대부분 나른하고 여유로워서 독자들이 보기에 재미있을 수가 없다.
책에 나오는 인물은 적당히 풍파를 맞으며 커야 하고, 그렇게 커서 언젠가 성장을 해야만 독자들의 흥미를 이끌어낼 수 있는데 작가가 행복하여 허상 세계의 주인공이 배가 부른 채로 나무 밑에서 쉬고 있으면 그 이야기는 아무도 읽지 않는다.
그러니까, 결국,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내야 하는 작가는 어느 정도 불행함을 마음속에 안고 있어야 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이상하게도 내가 가장 좋은 글을 쓸 때는 마음이 아플 때였다. 사랑에 실패했을 때, 인간관계에서 상처받았을 때, 미래가 불안할 때. 그런 감정들이 오히려 글에는 좋은 재료가 되었다. 행복한 날에는 굳이 글을 쓰지 않아도 될 만큼 마음이 충만했지만, 아픈 날에는 그 아픔을 어디론가 토해내야 했고, 그 토해낸 것들이 글이 되었다.
그래서 때로는 내가 불행해야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건 아닌가 하는 묘한 죄책감 같은 것도 든다. 행복해지면 더 이상 쓸 이야기가 없어질까 봐 은연중에 불행을 붙잡고 있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하고.
인간관계에 서툴고 크게 자주 상처를 잘 받는 나는 자주 외로움을 느끼고, 그 외로움을 통해 필연적인 성장을 겪곤 한다.
성장을 동반한 외로움이라는 것을 안다 해도 마음이 아픈 건 어쩔 수 없는데, 그때마다 힘이 되어주는 건 내 반쪽과도 같은 동생들이다. 나는 두 명의 친동생이 있는데, 네 살 터울, 여섯 살 터울의 동생들과 자주 어울려 다니며 놀곤 한다.
나이 차이가 있어 마냥 어리게 느껴지다가도 상처받고 휘청거리는 나를 잘 받들어줄 때면 나의 버팀목이자 지지대가 되어주곤 한다. 사람을 좋아하는 만큼 자주 상처를 받고 아파하는 내 곁에 절대적 지지를 보내주는 소중한 존재들이란. 이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존재들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동생들이 주는 따뜻함조차 때로는 글의 소재가 된다. 고마움도, 미안함도, 사랑도 모두 글감이 되어버린다. 글을 쓰는 사람의 숙명인지, 내 주변의 모든 일상이 언젠가는 글로 변환될 가능성을 품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때로는 순수하게 감정을 느끼는 것조차 어려울 때가 있다. '아, 이 감정도 나중에 글로 쓸 수 있겠네' 하는 생각이 스치면서 감정과 나 사이에 미세한 거리가 생기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하지만 그런 거리감마저도 결국은 글의 한 부분이 되어버린다. 글을 쓴다는 것은 그런 일이다.
끊임없이 자신을 관찰하고, 해부하고, 재료로 만드는 일.
외롭지만, 그 외로움 없이는 쓸 수 없는 이야기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