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불안감'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이불 안감'이라고 생각하자
불안감을 어떻게 해결하냐는 질문을 들을 때마다 생각한다.
'해결 못해요. 그냥 불안해하면서 살고 있는데요?'
하지만 그렇게 답할 수는 없어서, 최대한 문제와 거리를 두고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며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라고 말한다. 상대방은 쉽진 않겠지만 그렇게 해보겠다고 답한다.
그 말을 들은 나는 웃으며 손을 흔들어 보내주고 집으로 돌아와 생각한다.
이 불안감을 어찌하면 좋겠냐고.
나는 불안감이 높은 사람이다. 불안감에서 오는 에너지로 성장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스무 살 때부터 홀로 살아온 나는 때때로 겪지 않아도 될 일들을 겪으며 성장했다. 곰팡이 핀 식빵을 잘못 먹고 배탈이 나거나, 신천지가 해준다는 심리 테스트를 했다가 한참 동안 시달리거나, 돈이 없어 식빵 하나로 끼니를 때우다 변비가 걸리는 일들 말이다.
샴푸와 린스는 내 돈으로 사기에는 꽤 비싼 생필품이었고, 생리대는 어찌 그리 헤프게 쓰이는지 떨어져가면 주린 배를 부여잡고 사야만 했다. 아무렇지 않게 타던 버스도 두 시간씩 걸어다니며 비용을 아꼈다.
혼자 산다는 건 오롯이 내 힘으로 먹는 것부터 자는 것, 입는 것, 공과금, 월세를 부담해야 하는 일이었고, 그건 원래도 불안이 많은 내게는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극심한 불안과 함께하는 삶이었다.
혼자 자취할 때는 고정적인 수입만 있으면 불안감이 줄어들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르바이트를 통한 고정 수입이 있어도 불안한 건 마찬가지였고, 정직원으로 일하게 되면 불안함이 희석될 거라 믿었지만 직장을 4년째 다니는 지금도 그 불안함은 여전하다.
단지 이유와 원인, 색깔과 모양을 바꾼 채 여전히 내 목구멍에 걸려있을 뿐이다.
불안해한다고 달라질 것이 없다는 걸 잘 안다. 지금 해야 할 일에 집중하는 게 훨씬 더 생산적일 거란 것도 잘 안다. 하지만 알고 있다고 해서 생각처럼 되는 건 아니었고, 불안할수록 생각은 더욱 부풀어 내 목을 조여왔다.
돌이켜보니 매번 극도로 불안했던 건 아니었고, 주기적으로 불안감이 커졌다 작아졌다를 반복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나는 대체로 새로움 앞에서 불안에 떨곤 했다. 새로운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해 혼자 겉돌거나, 회사에서 퇴사를 권유받거나, 사람들 눈에 내가 사회성 없어 보일까 봐. 그런 상상들이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지만, 실제로 그 새로움이 시작되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나는 너무나 잘 해냈다.
그 다음엔 또 다른 불안이 찾아왔다. '내가 이 일을 잘하는 게 맞나? 이걸로 밥벌이를 할 수 있을까?' 몇 년간 해왔으면 잘하는 거고 그렇게만 하면 된다고 믿어도 될 텐데, 나는 도무지 스스로를 믿지 못해 자주 두리번거렸고 주변 사람들에게 확인받고 싶어 했다.
칭찬을 갈구하는 유치원생처럼 자주 인정받고 싶어 했지만, 사회생활은 유치원과 달라 좀처럼 칭찬받을 일이 없었다. 허공에 손을 내민 것처럼 뻘쭘해져서 칭찬받고 싶은 열망을 거두고 나면 한동안 시무룩한 채로 어깨가 축 늘어졌다.
결국 말하고 싶은 건 불안함은 내일도, 내년에도, 그 후로도 쭉 계속될 거라는 점이다.
불안함은 살아남기 위한 전략과도 같은 것이고, 불안함이 없다면 금방 도태되고 말 테니까. 불안함이 없는 삶은 모든 걸 이루고 나서 장성한 자식들을 저만치 멀리한 채 귀향한 노부부가 아니라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일 테니까.
다만 그 불안함이 찾아올 때 소용돌이 한가운데서 너무 힘들어하기보다는,
한 걸음 물러서서 불안감을 객관적으로 지켜볼 수 있는 습관을 들여보자.
머리로는 잘 알지만 아직도 서툴러서 힘든 나와 함께, 노력이라도 해보자. 연습이라도 해보자.
불안감이 찾아오면 '나 지금 또 한 단계 성장하려고 이러나 보다'라고 생각하면서, 받아들이면서.
이 불안감이 아니라 이불 안감이라 생각하고 따뜻하게, 그저 멀리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