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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이지 May 17. 2024

결혼식을 앞둔 1주일, 두 번째 파혼위기를 마주하다.

빛대신 빚

남편에게는 빚이 있다.


결혼을 약속하고 재정상황을 공유했을 때도 빚은 없다고 했다.

오히려 모아둔 돈이 있다며 안심시켰다.

하지만 그 모든 건 거짓말이었고, 남편의 거짓말을 모두 알아버린 나는 첫 번째 파혼을 했다.


그로부터 1년 뒤, 무슨 인연인지 우린 일주일 뒤면 결혼식이다.

결혼식 한 달을 앞두고 신혼살림을 꾸렸다.


신혼집으로 이사 간 아파트는 28층이다.

알콩달콩해야 할 신혼집 28층 베란다 난간을 붙잡고 “뛰어내리면 죽겠지?”라는 생각, 아니

'죽고 싶어' 떠들어대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을..

그것도 똑같은 거짓말에 또 속았다는 사실이 나를 더 절망하게 했다.

아무리 울어보고 소리치고 숨이 안 쉬어지도록 또 울어봐도 괜찮아지지 않는다.

울다가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베란다 난간에 몸이 걸쳐있는 내 모습을 보고 남편이 방으로 서둘러 들여보낸다.

몇 시간 후엔 엄마랑 마사지를 받기로 약속을 했는데 큰일이다.

내 숨소리만 들어도 기분을 느끼는 사람이 바로 우리 엄마다.

현재 새벽 5시. 밤새 울었나 보다. 몇 시간이라도 자야 엄마가 눈치를 덜 챌 거 같다.


마사지를 받고 나오며 엄마는 내 눈치를 이리저리 보신다.

이런 나를 그냥 지나칠 리 없는 분이시다.

“무슨 일이야, 무슨 일 있잖아?”

아직 결혼식도 올리지 않은 내가 벌써 철이 든거지, 어른이 된 척이 되고 싶은 건지 출가한 이후로 엄마한테 힘든 얘기는 하고 싶지 않았다.


“현수가, 또 빚이 있대..”

“흥, 그럴 줄 알았어, 생각보다 빨리 터졌네, 맘 편하게 신혼여행이나 갔다 와서 알면 얼마나 좋아”

“뭐?”

“난, 걔가 빚이 더 있을 거라 생각했어, 별로 놀랍지도 않다, 얘”

“….”


너무 아무렇지도 않은 엄마에 반응에 밤새 울었던 난 맥이 빠져버렸다.


엄마는 작년 파혼했을 때도 같은 반응이었다.

“걔 월급에 무슨 돈이 있다고 그렇게 많은 데이트 비용을 쓰니?

모아둔 돈이면 다 쓴 거고, 아니면 다 빚일 거야, 현수 걔 분명 빚이 더 있을 거야 확인해 봐”


엄마 말이 100% 적중이었다.

연애시절 하루가 멀다 하고 좋은 레스토랑이며, 비싼 선물을 했던 기억이 머릿속에 사-악 지나친다.

내가 너무 그를 믿은 것인지, 아니면 그의 사정을 알면서도 외면하고 싶었던 걸까?

나 자신이 너무나도 원망스럽다.


“기분이 많이 안 좋겠네, 딸, 엄마가 맛있는 거 사줄게 가자!”

“싫어, 그럴 기분 아냐, 밤새 잠도 못 자고, 울었어.”

“에휴.. 속상해서 우야노, 우리 딸”

“나, 결혼식 안 할래.. 신혼여행도 취소하고, 다 안 해”

“그래, 니 하고 싶은 대로 해”

엄마 앞에서 아무렇게나 감정을 쏟아낸 채로 다시 집으로 왔다.


다음날 부모님께 연락을 받고 본가로 갔다.

“이혼해”

평소에 말씀이 거의 없으신 아빠의 단 한마디 말씀이었다.

엄마가 힘들게 입을 떼셨다.

“아빠랑 어제 상의했는데, 아빠는 결혼식 당장 취소하고, 이혼하래.

근데 지현아, 6일 뒤면 결혼식이야.

어차피 이혼할 거면 남들 다하는 결혼식도 해봐야지.

그리고 너네 유럽 간다며, 지금은 취소도 안되는데, 아깝잖아.

지금까지 수고한 너한테 선물하는 나 홀로 여행이라고 생각하고 갔다 와! 현수는 없다 생각하고, 어때?”


역시 우리 엄마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어차피 이혼할 거 다 해보고 이혼해라고?

‘그래, 유럽여행 엄청 가고 싶었는데, 웨딩드레스 이쁘게 입고 사진 찍고 짐꾼 한 명 데리고 간다고 생각하고, 나를 위해 유럽 다녀올 거야.. 그리고 한국 오자마자 이혼할 거야.

뭐,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네.’

그렇게 1주일을 남겨둔 결혼식은 엄마의 나름 합리적인 설득에 파혼위기는 일단 무마되었다.




나는 이혼가정이다.

지금은 너무나 좋은 아버지를 만나 내 인생 반이상을 함께 하고 계신다.

우리 엄마는 내가 16살 때부터 너는 팔자가 세서 서른 살 넘어서 결혼해야 한다고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얘기하셨다.


그런 내가 40살이 되도록 결혼을 안 하고, 엄마 핑계 나이 핑계 대며, 본가에서 빌붙고 사는 게 꼴 보기 싫었는지 작년에는 집에서 나가라고 통보를 하셨다.


그래도 결혼할 생각은 안 하고 오피스텔을 알아보고 있으니 마지막으로 이런 말씀을 하셨다.

“지현아, 결혼은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야, 더 늙기 전에 웨딩드레스 입어봐”

“그리고 살다가 아니면 이혼하고 와”


참.. 아이러니하다. 30살 전에 결혼하면 딸은 엄마팔자 닮아 이혼하는 팔자니 뭐니 이야기할 때는 언제고 아무리 자식이지만 남의 인생 결혼하고 잘못되면 이혼하고 오라니.


나는 내 입으로 종종 이런 말을 자주 한다.

시대를 잘 타고 태어났다고. 예전 같으면 30대 때는 결혼 못한 노처녀로 낙인찍히던 시대였다면 지금은 30대에 결혼하지 않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는 시대니 깐 말이다.


지금 내가 40살에 결혼을 해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다만 남 걱정 많으신 분들은 나의 2세를 먼저 걱정해 주겠지.

20살에 결혼을 해서 이혼을 한 가정도 보았고, 50살에 결혼해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도 많이 봤다.

28살, 내 친구들의  많은 결혼소식이 들려왔었다. 30살은 ‘3’ 자라 싫고, 29살은 아홉수라나…

얘네들은 이런 걸 도대체 어떻게 알고, 미리 다 계획을 한 거야? 그땐 정말 대단해 보였다.

28살에 결혼한 친구들아! 잘 살고 있지?


그럼 언제 결혼하는 것이 기준이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이 잘 사는 것인가?

정말 이 질문에는 답이 있을까?

늘 그래왔던 것처럼 난 남이 정해준 기준대로 살지 말고 나답게 살기로 살자.

그래 40살 넘어서 결혼해도 이혼할 수도 있지, 일단 신혼여행 갔다 와서 결정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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