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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이지 May 24. 2024

10년 된 공황장애, 결혼 후 드러나다.

괜찮아, 네 잘못이 아니야

아침 7시 20분 출근시간

1시간 16분이 찍힌 티맵을 덤덤하게 바라보며 운전대를 잡는다.

'흠, 오늘은 좀 막히나 보네'

어제 잠을 설친 탓일까, 오늘은 30분도 채 가지 못하고 졸음이 몰려온다.

콧속까지 뻥 뚫리는 졸음껌을 여러 개를 씹어대도 소용이 없다.

허벅지를 꼬집으며, 노래를 부르고 소리도 질러대며 오늘도 무사히 회사에 도착했다.

'아.. 드디어 도착했다.'




숨이 또 안 쉬어진다.

최근에 이런 날들이 많아졌다.

단순히 피곤한 줄로만 알고 애써 넘겨왔는데 오늘은 평소랑 느낌이 다르다.

오전 근무를 하는 중에 갑자기 숨이 턱 막히더니 하염없이 눈물이 흐른다.

(정말 아무 이유 없이 눈물이 흐른다.)

'아, 병원은 가기 싫은데...' 이 상태로는 더 이상 일도, 일상생활도 힘들다는 판단이 들었다.

끝내 미루고 미뤄놨던 병원을 가기로 결심했다. 

회사 근처 정신의학과 병원 여러 곳을 재빠르게 검색을 했다. 

정신의학과는 다른 과와 다르게 예약을 하지 않거나 초진일 경우(주말)엔 접수를 잘 받지 않는다.

회사 근처 5군데를 전화를 하고 제일 빠른 날짜인 다음날로 예약을 하고 숨을 가다듬어본다.

'내일까지 견딜 수 있을까?'


한 시간쯤 지나 일반 전화번호로 전화가 왔다. 순간의 감으로 받은 전화는 병원이었다.

혹시나 취소가 나면 꼭 좀 연락 달라는 나의 간절한 마음이 통했는지 한 시간 후에 병원에 방문하라고 했다.

'휴, 살았다'.




결혼 후에 남편의 부채 말고도 다양한 사건들이 계속 터지는 걸 보며,

'기가 막히는구나'라는 표현이 절로 나왔다.

하루가 멀다 하고 말 그대로 '기가 막히는' 상황들이 생겨나고 있었다.

처음 느껴보는 감정에 오열하며 아파오는 가슴을 미어졌다.

이럴 때마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이혼해야지, 다짐하면서도 좌절하며 속죄하는 남편을 보면

나는 또다시 무너진다. 나는 저 사람을 버릴 수 있을까? 저 사람 없이 살 수 있을까?

그렇게 다시 반복되는 삶에, 살아가야만 하는 삶에 처절히 버텨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니, 잘 해결해야 하고, 잘 돼야만 한다고 믿었다.

무엇보다 이 결혼생활을 유지하고, 

남편의 병을 더 키우지 않으려면 내가 정신을 차리고 독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병들고 있는데 겉으론 멋진 딸, 착한 며느리, 회사에서는 일 잘하는 사람,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 나를 돌보지 않은 건 아니었을까?

아니면 나 스스로 외면하고 싶었던 건 아니었을까?

그렇게 나는 병들어 가고 있었다.



부리나케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상담이 시작되었다.

가슴을 움켜 잡으며 숨이 쉬어지지 않는다고, 제발 숨만 쉬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아니 애원했다.

'공황장애'라고 했다.

당분간 지속적인 치료가 필요하다고 하셨다.




결혼하고 나서 출, 퇴근으로 2호선을 탔었다.

40년 만에 처음 알았다.

'지옥철'이라는 걸 말로만 들었지 처음 보고 겪은 것이었다.

20대 때부터 자차를 이용했던 나는 대중교통에 대한 고충을 잘 몰랐었다.

하지만 '익숙해지겠지'라고 생각하며 몇 달을 더 보냈다.

어느 날 사람들로 꽉 찬 지하철 안에서 낑낑대며 이리저리 튕겨져 나가는 나의 모습에 순간, 

나 홀로 느껴지는 비참함에 왈칵 눈물이 쏟아지며 하차역도 모르는 곳에서 무작정 내렸다.

그 이후로 지하철을 타면 이유도 모른 채, 

사람들이 많아지면 불안해지거나 숨이 쉬어지지 않아 몇 번이고 역에서 내리는 일이 많아졌다.



20대에 사업을 시작해 30대 중반엔 돈도 직업도 없어진 '빈털터리 백수'가 되었다.

사업이 망하고 한동안 집에서 안 나왔던 시기가 있었다.

생각해 보면 그전, 이후로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면 지금과 같은 증상이 대부분이었다.

10년 동안 '나 몰래' 겪어왔던 공황장애를 결혼 후에야 정확히 알게 되었다.

 



무덤덤하게 질문하시는 선생님의 눈빛에서는 나는 어떤 공감도 느끼고 싶지 않았다.

아니, 하기 싫었다.

(난 너무 지쳤어요. 결국 내 얘기하라는 거잖아요. 난 하기 싫어요, 그냥 숨만 쉴 수 있게 약만 처방해 줘요.)


"남편이 왜 빚을 졌어요?"

"몰라요..."

"빚을 진 이유가 있을 거 아니에요?"

"저도 모르겠어요."

"남편의 소비습관은 어때요?"

"...."

"남편 직장은.. 일은..?"

"...."



상담은 1시간 가까이 진행되고 있었다.

나의 감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무차별하게 가슴을 후벼 파는 질문에 가슴이 너무 시렸다.


'내가 잘못한 게 아닌데 왜 나만 힘든 거야..'

'나 좀 제발 내버려 둬.. 제발'


어떤 질문엔 답을 하기 싫다고 했다.

처절하게 이 상황을 외면하고 싶었다.


여전히 무심하게 차트에 바쁘게 적어대는 선생님을 보며 빨리 이곳을 벗어나고 싶었다.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나에게 나지막이 목소리가 들려온다.


"지현 씨, 많이 힘들었겠네요, 아이 참..

이제 결혼 3개월 차라고 했죠? 가장 좋을 땐데요.

내가 오늘 이렇게 질문을 한 건 남편분이 지금 우울증 약을 드시고 있는데 우울의 척도가 높고,

금전 부분의 문제가 있기 때문에 제가 판단을 좀 하려고 많이 물어봤어요.

오늘 대답하기 힘들었을 텐데 고생했어요.

약은 1주일치 드릴 테니깐 꼭 잘 챙겨 먹고 꾸준하게 상담받으셔야 합니다.

그리고 호흡이 안 되는 건 당장은 아니지만 서서히 좋아질 겁니다."


상담 내내 아무 표정 없이 상담하던 형식적인 선생님은 마지막에 따뜻한 말로 나를 위로하셨다.

"지현 씨, 힘내세요."

결국 나는 꾸역꾸역 참고 있던 눈물을 토해내며 오열하고 말았다.






울면 지는 거 같다.

사업에 실패한 후 잘 울지 않는다.

내가 잘못한 게 아닌데, 아픈 것도 속상한데,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 우는 게 더 속상하다.

그렇게 난 마음의 병을 크게 만들고 있었다.


요즘은 '공황장애'나 '우울증'을 대중적으로도 알려져 있고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질병이라 생각해서 심각하게 생각을 하지 않지만,

절대 가볍게 여기면 안 된다.

사람마다 증상이 다 다르고, 시시때때로 찾아오는 강도가 다르기 때문에 항상 지켜봐 줘야 한다.

아프면 병원 가고 약을 먹고 치료하듯이,

마음이 아프면 마음을 돌봐주고, 끊임없이 나 자신에게 질문해줘야 한다.


나는 온전히 회복되지 않았지만 나를 위한 치료방법을 찾아가고 있다.

내가 잘못된 게 아니었다는 걸, 나도 아팠다는 걸 소리 낼 수 있는 용기를 내본다.

지금의 나에게 바로 해줄 수 있는 처방도 내려줬다.

현재는 자차를 마련해 출, 퇴근을 하고 있다.

매일 왕복 2시간이 넘는 시간을 운전을 한다.

운전을 하는 순간에도 호흡곤란이 종종 발생하지만 나아지는 중이다.

나는 점점 좋아질 거라 믿고 있다.


얼마 전 10개월 만에 지하철을 탔다. 주말 낮이라 괜찮을 꺼라 생각했다. 

'아직은 무리였나? 아니면 내가 계속 불안하게 생각하는 걸까?'

결국 두 번을 타고 내렸다를 반복하고 나서야 6 정거장(목적지)을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언젠가 사람들 시선이 두렵지 않을, 마음 편히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는 날이 오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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