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임신이 아닐 수도 있어요”라는 말
임신확인서를 받다
임신확인서를 받던 순간, 기분이 이상했다.
“축하드립니다.”라는 말은 없었고, 선생님은 담담하게 말했다.
“5주 차로 보입니다”
초음파 화면에는 작은 점 하나.
그게 아기집이라고 했다.
아직 심장은 뛰지 않았다.
나는 기쁜 건지, 혼란스러운 건지 알 수 없었다.
머릿속은 물음표뿐.
“진짜 임신 맞는 걸까?
피검사 결과까지 기다려야 하지 않나?
왜 벌써 임신확인서를 주신 거지?”
확신이 없던 나는
선생님이 말한 ‘일주일 뒤에 다시 오세요’를 무시하고
일주일 후 분만병원에 예약 없이 찾아갔다.
분만병원은, 전쟁터였다
내가 정한 병원은 후기도 좋고 선생님도 친절하다는 곳.
하지만 예약은 불가능.
진료를 받으려면 오픈런이 필요하다는 블로그 글들이 넘쳐났다.
그래서 병원 오픈 30분 전에 도착했는데...
내 앞에 23명.
그날 대기시간은 3시간이었다.
“대한민국 산모들 다 여기 온 거야…?”
대기실에서 기다리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자연임신이세요? 시험관이세요?”
접수 전 문진표를 작성할 때, 간호사가 자연스럽게 물었다.
“자연임신이세요? 시험관이세요?”
“자연임신이요.”
대답을 하자, 돌아온 말은
“아직 극초기라, 임신이 아닐 수도 있어요.”
나는 순간 얼어붙었다.
‘뭐라고요?’
‘아직도 임신이 아닐 수도 있다고…?’
난임병원에선 임신확인서까지 받았는데
여기선 다시 아니라고 할 수도 있다니.
그 말 한마디에
내 안에 남아 있던 불안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몸은 분명 변해가고 있는데,
마음은 아직 아무것도 믿을 수 없었다.
3시간 뒤, 두 번째 초음파
드디어 내 차례.
담당 선생님은 분만병원에서 인기 많은 분이었다.
기본 대기만 2~3시간 걸린다는 소문은 사실이었다.
진료실에 들어서고 간단한 문진 후
바로 초음파에 들어갔다.
의사 선생님이 말했다.
“7주 차네요. 아직 작지만 아기집은 잘 보입니다.”
나는 그 말에 안도하면서도
머릿속으로 간호사의 말이 다시 떠올랐다.
“임신이 아닐 수도 있어요.”
이건 확실한 임신이 맞는 걸까?
A4 한 장 가득, 걱정과 질문들
진료를 기다리며
궁금한 것들을 A4 한 장에 빼곡히 정리해 갔다.
질문은 대부분
“임신해도 괜찮을까요?”였다.
위고비 주사 맞았는데 괜찮을까요?
커피는 마셔도 되나요?
네일 해도 돼요?
유산 위험은 언제까지 높은가요?
사우나 가도 돼요?
무알콜 맥주 마셔도 돼요?
열 가지가 넘는 질문에, 선생님은 성의 있게 하나하나 답해주셨다.
“임신 전에 했던 건 괜찮아요.
위고비도,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그 말에 안심이 되면서도
마음 한구석엔 여전히 ‘정말 괜찮을까…’ 하는 의심이 남았다.
해야 할 게 너무 많다
임신 초기엔 기쁜 마음에 정신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현실은 정반대였다.
해야 할 일이 태산 같았다.
✔ 바우처 카드 신청
✔ 단축근무 신청서 준비
✔ 우체국 태아보험 무료 가입
✔ 태아보험·실손보험 비교
✔ 엽산/영양제 리스트 정리
✔ 관할 보건소 산전검사 및 임신선물 받기
정말, 몸은 가만히 있는데
머리는 쉴 틈이 없다.
2주 뒤… 아이는 괜찮을까?
지금 나는 6주 차.
선생님은 “2주 후에 다시 오세요”라고 했다.
하지만… 그 ‘2주’가 너무 무섭다.
맘카페를 보면
7~8주 사이에 유산되는 사례가 너무 많다.
나는 고령산모, 아니 초고령산모다.
불안은 당연한 걸까?
양가 가족에게 말하다
임신 사실을 알린 건 그 주 주말,
마침 부모님들과 함께 식사를 하던 자리였다.
“사실… 저희… 아기가 생겼어요.”
그 말에 시아버지는 눈시울을 붉혔고,
친정엄마는 손을 꼭 잡아주셨다.
짧은 순간,
그 자리는 울음바다가 되었다.
오늘도, 나는 엄마가 되어간다
아직은 아무 느낌도 없다.
입덧도 없고, 배도 안 나오고.
그런데 병원에서 돌아오는 길,
남편이 내 손을 꼭 잡았다.
그 손이 따뜻했다.
‘나, 진짜 엄마가 되는 걸까?’
이제부터 나는,
나를 믿는 연습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