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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아 Mar 11. 2022

이 작품을 설명하시오 2




재우 독일이셨군요, 작가님. 그로피우스 바우 전시는 어떻게 아시고.


문수 이야기를 부탁했을 때, 도슨트 선생께서 직접 들려주셨는데. 많이 아꼈던 사람과 이번 전시에 관해서요. 잊으셨나보군요?


'많이 아꼈던 사람'. 내가 뱉은 말이 세상을 배회하고 있는 게 맞았구나 생각하며 재우는 목이 메이는 걸 느꼈다.


문수 그보다 나를 작가라고 부르시다니. 여기서 사귄 친구는 가망이 없다고 하던데요. 사실 전시를 보러 간 건 그 친구 덕분입니다.


재우 그렇군요... 기준이야 저마다 다르겠지만. 사진을 찍은 게 다른 사람 손이 아니라면, 저는 문수님도 작가라고 봅니다.


문수 그 말은 내 손이 닿으면 그게 내 작품이라는 말인가요?


그렇게 되나. 논리를 따지자고 건넨 말은 아니었는데. 사실 '작가'라는 호칭에 대한 재우의 기준치는 매우 높았기 때문에 방금 것은 기실 가벼운 공치사에 가까웠다.


이런 짧은 안부가 오가고 며칠이 흘렀다.


'손이 닿으면 내 작품인가'하는 질문이 문득문득 떠올랐고, 그러면 재우는 저도 모르게 연관된 그림들을 머릿속으로 나열하는 것이었다.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 월터 크레인의 '미다스 왕의 손', 에셔의 '손을 그리는 손'부터 해서 인류 최초의 그림이라 공인된 손자국 동굴 벽화까지 생각이 뻗어나갔다. 바로 그쯤 문수에게 다시 문자가 왔다.


문수 내 손길이 제대로 남은 조형물이 하나 있긴 합니다.


곧이어 방주처럼 생긴 전시관 사진이 추가로 올라왔다. 문수가 정말 작가였는데 자신이 여태 못 알아본 건 아닌가 싶어 재우는 허리를 곧추세웠다. 그러나 뒤이어 올라온 문자를 보고는 긴장을 풀면서 피식 웃었다.


문수 포항에서 현장 알바 뛸 땐데... 머릿돌을 세우다 시멘트에 엄지 손가락이 찍혔어요. 감독에겐 물론 비밀로 했죠. 선생님 말대로라면, 그게 내 인생 첫 작품일 겁니다. 벌써 20년도 더 됐네요.


20년 전이라. 튼튼한 두 다리를 가진 사람들이 건축 현장에서 머릿돌을 심고 있을 때, 나는 뭘 하고 있었나. 미팅을 끝내고 사무실로 들어오던 재인에게 재우가 대뜸 물었다.


"누나, 현장 도슨트를 해보면 어떨까?"


"똑같지 뭐. 여기서 하는 거나 거기서 하는 거나."


재인이 자리에 앉으며 되물었다.


"갑자기 왜? 사람들 마주 보고 설명하는 건 불안해서 싫다고, 절대 안 할 거라고 한 건 언제고. 오디오 가이드만 할 거라며. 그래서 내가 큰돈 들여 부스도 만들어 줬구만."


"그냥. 전시장에 가본 게 너무 오래된 것 같아서."


진심을 재는 듯한 그녀의 따가운 눈총을 느낀 재우는 머리를 흔들면서 못 들은 것으로 해달라는 신호를 보냈다. 한동안 정지화면처럼 가만히 앉아 있던 재인이 벌떡 일어나 가디건을 챙겨들었다.


"잠깐만, 은지 씨한테 전화왔다. 어, 은지 씨!"


등 뒤로 문이 닫힌 걸 확인한 재인은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고 잰걸음으로 옥상을 향했다. 삐걱 소리와 함께 루프탑으로 이어지는 문이 열리자 초가을의 파란 하늘과 북악산의 푸른 윤곽이 눈앞에 펼쳐졌다.


춰 있는 파도.


한국의 산세는 늘 그런 인상을 주었다. 흙과 바위로 된, 아주아주 느리게 높아졌다 낮아지는 파도. 재인은 평생 넘길 수 없을 것 같던 아찔한 파도가 돌연 스스로 낮아지고 깊어진 것을 느꼈다. 천천히 숨을 내쉬며 난간에 팔을 걸친 그녀가 웃음이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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